한복은 죄인들이 입는 옷이 아니다

추미애 선대위원장의 3보1배 유감

등록 2004.04.05 12:25수정 2004.04.0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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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오마이뉴스 머리기사엔 “‘힘내라’ 음료수는 받았지만… 민심은 '글쎄'”라는 제목이 보인다.

“민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 개혁을 주창했던 '추다르크'는 '칼'을 대신해 하얀 운동화에 개량 한복을 입고 80년 5월 민주화 함성이 가득했던 그 광장에 섰다. 3일 오후 4시 44분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장은 광주 금남로 상무관 앞에서 참회와 사죄의 3보1배를 시작했다.

추미애 선대위장은 3보1배를 시작하기에 앞서 '참회의 변'을 밝혔다. 추 선대위장은 "민주화를 지켜온, (광주에) 피땀을 흘린 민주 자존심에 큰 상처를 드리고 민주당을 지키지 못한 점 반성하고 사죄한다"면서 "종아리를 걷어붙이고 어떤 매를 때리더라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사죄한다면서 3보1배를 시작했다는 기사이다. 안타깝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세대 대통령 후보로까지 존경받던 인물이 이렇게 고역의 3보1배를 해야만 하는가? 나도 탄핵통과 이전까지는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사람이었었다. 누가 그를 이렇게까지 만들었는가? 자신인가, 민주당인가, 호남인들인가,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인가?

그는 3보1배를 하면서 개량한복을 입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개량한복이 아니라 생활한복이다. 기자는 적절한 낱말 선택을 하여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입은 생활한복은 한복을 현대생활에 편하게 입도록 변화를 준 옷이다. 역시 한복의 일종인 것이다. 그런데 겨레문화운동을 하는 나로선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서 기쁘기는커녕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추 위원장과 정치인들에게 한 마디 고언을 던지려 한다.

3보1배는 해보지 않은 그 어떤 사람도 그것이 얼마나 고된 행군인지를 안다. 웬만한 체력으로는 견디지 못할 뿐더러 탈진의 상태까지 도달할 수밖에 없는 큰일이다.

그런데 그 3보1배를 하면서 추 위원장이 생활한복을 택했다는 것은 한복이 그런 일을 하기에도 좋은 참 편한 옷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다. 한복은 품이 큰 옷이기 때문에 서양옷처럼 몸을 조이거나 제약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들에게 육체적인 자유를 한껏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옷이라는 것이다.

한복을 입은 정치인은 추 위원장이 처음이 아니다. 해방 직후 우리 겨레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구 선생님은 늘 두루마기차림이었다. 그 뒤론 정치인들의 한복입기를 보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들이 재판을 받고 구속되면서 하얀 한복을 입었다.


이 세기의 사건은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두 전직 대통령들이 나란히 쇠고랑을 찬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이면서 겨레문화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생겨났다. 한 번도 한복을 걸쳐보지 않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서 세계인들은 한복을 수인복으로 착각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지나친 우려일까?

그런데 이번에도 추 위원장은 사죄를 하면서 죄인의 모습으로 여지없이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평상시에도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보여줬었던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굳이 이런 기우는 일어나지 않으련만….


한복은 죄인들이 입는 옷이 아니다.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이 담긴 아름답고, 품격 있고, 편하기 그지없는 훌륭한 옷이다. 세계에 자랑스러운 옷이란 얘기다. 그런 옷을 한갓 죄수복으로 격하시키는 행동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다니 이것이 어찌 겨레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으로서의 도리일 것인가?

나는 지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취임식 전과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 전에도 청와대에 정책건의를 한 바 있었다. 겨레문화에 대한 애정을 호소하고, 최소한 취임식이나 외교사절 접견, 큰 행사 때만이라도 두루마기를 입어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때와 노벨평화상 수상식 때 두루마기를 입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지금도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최근 노 대통령의 한복 입은 모습이 간간이 보이지만 그것도 허리가 아파서와 탄핵통과 이후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성정치인들을 보면 평상시 의정활동을 할 때엔 대부분 검정 양복 차림이다. 자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 검정 양복, 그것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누구이던가? 물론 대다수의 회사원들이 검정 양복을 입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차떼기를 하는 검은 정치인들과 폭력을 일삼는 조폭들이 즐겨 입는 것이 거의 검정 양복 일색이다.

그러면서 이런 때 사죄의 모습을 취할 때만이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지엽적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치인들의 겨레문화 의식이 참 저급하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여!
총선을 맞아 개혁을 부르짖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정치인들이여!

제발 죄인의 모습을 취할 때가 아닌 좋은 일이 있을 때 한복을 입어 달라. 평상시에도 아니 큰 행사 때만이라도 한복을 입는 민족자존심이 있는 행동을 취해 달라. 검은 정치인, 조폭들이 즐겨 입는 검정 양복을 버리고, 우리 겨레를 자랑스럽게 할 한복을 입어 달라. 이젠 정치인들이 나라와 겨레를 진정으로 위하는 분들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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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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