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지역주의 망령 부르는 박근혜와 추미애

극약처방으로 재기 모색

등록 2004.04.05 15:55수정 2004.04.0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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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새 대표 박근혜와 민주당 선대위원장 추미애. 둘 다 탄핵역풍을 맞아 추락한 당의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그 자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무리 사정이 급하기로서니 망국적인 지역주의 망령을 다시 불러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 극약처방을 쓰고 있다.

먼저 살펴볼 게 있다. 두 여성은 당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죄를 했다. 말인즉 그랬다. 그리고 박 대표는 절에 가서 108배를 하고 성당과 교회를 찾아 고해성사, 참회예배를 했고, 추 위원장은 3보1배의 고행을 치렀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죄라는 건 말만 번지르르 하고, 108배나 3보1배에 진정성은 깃들어 있지 않다.

박 대표는 차떼기를 사죄한다며 천막당사로 옮기는 이벤트로 국민의 기억력을 테스트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아무리 탄핵사유가 충분하고 또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고 해도 국민의 여론을 충분히 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는 게 고작이었다. 국민들이 탄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것이다.

추 위원장은 두 번에 걸쳐 기자들 앞에서 절을 올리며 사죄한다고 했으나 알맹이는 빼놓았다. 역시 탄핵에 대한 사과는 없고 한민공조라는 수단이 잘못되었다는 점만을 강조한 것이다. 그것도 지도부의 잘못이라고 애매하게 표현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사과하지 않았다.

추 위원장은 3보1배에 나서면서도 "죄송한 마음으로 왔습니다. 민주화를 지켜온 (광주에) 피땀을 흘린 민주 자존심에 큰 상처를 드리고 민주당을 지키지 못한 점 반성하고 사죄한다"고 했다. 추상적이다. 김현종 선대위 수석부대변인도 "3보1배에는 한·민공조에 대한 포괄적 사과·반성과 함께 민주당의 새 출발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역시 탄핵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수단에 대한 사과·반성이란 얘기다.

더 큰 문제는 당을 살리겠다는 수단이 지역주의를 조장한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이 차떼기와 탄핵으로 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상황에서 박근혜를 대표로 선택한 것부터가 지역주의에 의존하자는 발상이었다. 박 대표는 당원들의 그런 의중을 정확하게 실행에 옮기고 있다. 박 대표는 3월 28일 첫 지방 방문지로 광주를 선택하여 의례적 방문을 다녀온 후 29일에는 울산, 그리고 31일에는 충청권 표심잡기에 나섰다.

충북선대위 발족식에서 송광호 의원은 "어질고 훌륭한 육영수 여사를 잊으면 안 된다. 아버지의 정치철학, 어머니의 어진 성품을 이어받은 박 대표를 중심으로 총선에서 승리하자"면서 충북 옥천이 고향인 육영수 여사를 들먹여 지역주의를 자극했다.


박 대표는 4월 1일 대구와 부산에서 본격적인 유세를 시작했다. 소위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텃밭으로부터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전략이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박 대표 등장 이후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었다. 지역주의 망령이 자발적으로 꿈틀대고 있는 마당에 기름을 부으러 간 것이다.

박 대표는 그 다음날인 4월 2일에는 마산, 창원, 김해, 양산, 진해 등 경남지역을 훑었다. 그는 이주영 후보(창원을) 출정식에서 "창원은 아버지가 관심을 가지고 계획하신 곳으로 항상 남다르게 생각해왔다"며 박정희 향수와 지역주의를 자극했다.


지역주의 선거는 추미애 위원장이 한술 더 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상기시키기 위해 선대위 출정식을 임진각에서 치렀고, 그의 곁에는 DJ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이 있었다. 작년 당 대표 경선 때 출마선언을 전주에서 했던 추 위원장은 틈만 나면 DJ를 들먹이고 있다. 박근혜를 나무랄 일도 아니다.

추 위원장은 자신의 존재이유요, 민주당에 남아 있는 명분이었던 개혁(공천)이 물거품이 된 이후 속죄의 뜻으로 한다는 3배1보의 장소로 광주를 택했다. 지역주의를 자극하여 재기하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이다. 그러나 정작 속죄의 알맹이는 없고, 아직도 배신감에 사무쳐 자신이 탄핵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그렇게라도 해서 껍데기만 남은 민주당을 살려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민주당은 아직도 평화개혁세력의 중심일까? 누구를 위해서 그 고행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추미애를 두둔하는 한화갑 의원은 DJ와 상의해서 민주당을 재건하겠다고 한다. DJ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박 대표 선출 이후 한나라당의 지지층이 급속히 결집하면서 차떼기 이전의 수준으로 지지율이 회복된 마당에 민주당도 호남의 동정표가 결집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말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탄핵을 철회한 후 실질적인 새 출발을 다짐하면서 되살아나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이런 게 정치인가?

지역주의 정치 및 선거를 청산해야 하는 역사적 시점에서 두 당은 매우 퇴행적인 작태를 저지르고 있다. 그 결과 무덤 속으로 들어가던 지역주의 망령의 흩어졌던 뼈가 이어지고 살이 다시 붙고 있는 중이다.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만이 지역주의의 최후 발악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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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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