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등 같은 양반네 집 구경하세요”

강릉 선교장(船橋莊)을 찾아

등록 2004.04.06 15:52수정 2004.04.0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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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선교장
강릉 선교장우동윤
흔히 만석꾼 부자나 지체 높은 양반님네의 집을 고래등 같다고 표현한다. 사실 고래란 것이 그리 귀족스런 외모를 갖고 있지 못하니 이 말은 단지 규모를 비유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이밖에도 대궐 같은 집이라느니 99칸이라느니 하는 말로 잘 사는 양반님네의 집을 표현하기도 했다.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부자가 된 흥부의 집이 그랬고, 흥부의 형 놀부의 집이 그랬을 것이다. 이 말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표현한다기 보다 하루하루 고된 삶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이룰 수 없는 소원이 담겨 있을 것이다.


선교장 입구에 세워진 장승들
선교장 입구에 세워진 장승들우동윤
강원도 강릉에 가도 이에 못지 않은 대궐 같은 기와집이 있다. 1965년 국가문화재로 지정됐고, 20세기 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된 바 있다고 입구의 안내판이 전하고 있으니 어지간한 부잣집이 아니었나 보다.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인 1703년 처음 세워져 10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후손이 기거하며 중건에 중건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양식의 처마가 독특한 열화당
러시아 양식의 처마가 독특한 열화당우동윤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이 처음 이 자리에 터를 잡고 집을 지은 후, 이내번의 손자인 이후가 순조 15년인 1815년에 사랑채를 지었고, 그 다음 해에는 바깥마당의 연못 위에 활래정(活來亭)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활래정은 이후의 증손자인 이근우가 중건했다고 한다.

바깥마당 남쪽에 작은 연못과 활래정이 있다
바깥마당 남쪽에 작은 연못과 활래정이 있다우동윤
바깥마당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니 곳곳이 공사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 쇠락하기 마련이고, 2천원이라는 적지 않은 입장료를 받고 있는 만큼 쇠락한 건물을 관람객들에게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본전 생각이 나 더 꼼꼼히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채를 둘러싼 담 옆에 서있는 벚꽃나무
안채를 둘러싼 담 옆에 서있는 벚꽃나무우동윤
남자 어른이 기거하며 손님을 맞이했던 사랑채를 이 집에서는 열화당이라고 부른다. 건물 앞 처마 같은 것이 하도 특이해 몇 번이나 다시 쳐다봤는데 역시 러시아 양식이라고 한다. 구한말 이곳을 찾은 러시아 공사가 지어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건물 앞 안내판에 적혀 있다.

여자들이 기거했다는 안채와 동별당, 서별당 등이 맞닿아 있고,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도 서 있다. 곡식 등을 저장해 뒀다는 창고도 웬만한 집 한 채만 하고, 부엌 역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대규모 식당의 주방 못지 않게 크다. 역시 고래등 같은 양반집이라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것도 마치 미로찾기를 하는 양 복잡하다.


안채에서 바라본 바깥마당
안채에서 바라본 바깥마당우동윤
사람 냄새 없이 그저 크고 넓게 지어진 집만을 보려니 지루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고, 또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입구의 안내판에는 단지 선교장에 대한 일반적인 사실들만 설명돼 있을 뿐이다.

집은 보수를 통해 옛 모습을 지켜나가겠지만 옛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건물과 함께 그 속에 얽힌 옛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다면 보다 기억에 남는 알찬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장독대
장독대우동윤
안채
안채우동윤
선교장에 핀 봄꽃
선교장에 핀 봄꽃우동윤
선교장 곳곳에는 장승이 서있다
선교장 곳곳에는 장승이 서있다우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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