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뫼산 정상 부근 백제시대 구수산성 터의 일부 성벽 모습
"우리 두야리두 옛날 일제 때 징용 끌려간 사람들이 있구, 일본 놈들 군대루 끌려가서 남양군도까지 가서 전쟁을 헌 사람두 있슈. 그리고 6∙25사변 때 군대 간 사람, 인민군 치하에서 강제로 부역을 헌 사람들두 있지유.
또 월남에 가서 전쟁을 한 사람들두 있구…. 그런디 한 사람도 죽거나 다치지를 않었슈. 그게 다 퇴뫼산이 우리 마을을 잘 보듬어주는 덕분이지유. 이것은 옛날 으르신들이나 지금의 우덜이나 똑같이 노상 허는 생각이유."
"예,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나는 깊은 감동을 안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초등학교 동창인 주민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 산의 소유주가 옛날에 서울 사람으루 배낀 것두 원인 중의 하나여. 이 산이 계속 우리 두야리 사람 소유루 있었으면 오늘 같은 사단이 생기지 않었을 텐디….
옛날 읎이 살던 시절에 자식새끼들 갈치면서 먹구 살다보니께 가랭이 찢어지는 헹편에서 산을 팔지 않구 배길 수가 있었간…."
자신의 아버지나 가까운 누가 퇴뫼산의 소유주였던 것이 아님에도, 그 친구의 음성에는 어떤 회한 같은 음결이 묻어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마을회관 마당에서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잘 삶아진 돼지수육과 새우젓, 김치 그리고 집에서 만든 따끈따끈한 두부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나는 마누라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막걸리를 여러 잔이나 마셨다. 차 운전대는 마누라에게 맡기면 될 일이었다.
행사에 참석한 내게 거듭 감사를 표하는 주민 한 분이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농산물 수입 개방 때문에두 앞으루 우리 농민들의 생활이 더 어려워질 텐디, 골프장 때문에 살기가 더 힘들어질 것 같유. 군청에서야 일년 세수(稅收) 6억 원이 더 가치 있는 일일 테지먼, 우덜은 고된 농삿일 숙이서두 골프장에서 골프나 치며 사는 팔자 좋은 사람들을 맨날 보구 살어야 헐 테니, 우리 농민들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더 고달프겄슈. 안흥에다가 골프장을 짓는 일은 우리 농민들 따위는 아예 안중에두 읎다는 뜻이지유, 뭐. 안 그렇대유?"
나는 말문이 막히는 심정이었다. 안흥 골프장 건설은 이미 두야리 퇴뫼산 훼손 문제만을 안고 있는 상황이 아닌 셈이었다.
퇴뫼산 훼손이 주민들과 출향인들에게는 '고향 상실'이라는 확대된 의식으로 연결되듯이, 안흥 골프장 건설이 주변의 농민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지레 감지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그리고 지금은 어떤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가치 못지않게 정신적인 가치나 문제도 깊이 고려해야 하는 시대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실감하면서 취기 속에서도 크게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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