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군대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시간과 관련된 우스개’가 있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흘러간다”는 이 말은 군 생활이 힘들고 적막하게 느껴질 때 주로 회자된다.
아무리 지금 이 순간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시간은 흐르고 있으며, 제대 날짜가 다가오고 있으니, 희망을 가지라는 뜻이 이 우스개에 담겨있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군대라는 집단’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방의 의무라는 확실한 대의명분이 있긴 했지만,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였고, 월급이라고 손에 쥐어지는 돈은 ‘차라리 한푼도 주지 말지’라는 원망을 품게 만들 정도의 초라한 금액이었다.
군대 내에서도 민주화의 열풍이 불어, 사병들 사이의 구타와 기합은 점점 줄었다. 과도기에 놓인 군대는 혼란스러웠다. 군 생활을 하고 나면 ‘진짜 남자가 된다’ 혹은 ‘철이 든다’는 말은 내 경험에 비춰보면 그저 우스운 농담이었다.
저돌적인 마초가 인정을 받는 군대 내의 분위기는 인간의 개성과 사고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었다. 상병하복의 체계에 순응하고, 이성적인 행동을 마비시킨 채 그저 명령에 열심히 순응하는 인간만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군 생활을 하며 시간의 속성에 대해 절실히 느꼈다. 수첩에 제대 날짜가 며칠 남았는지 하루, 하루가 지날 때마다 세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제대의 그 날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하긴 어떤 병사인들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겠는가.
하지만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은 제대의 막막함 때문에 불안했다. 분명 같은 템포로 움직이고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간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휴가를 나가면 친구들은 “너, 또 휴가 나왔냐?”며 속도 몰라줬고, 상병을 달았다고 하면 절반이나 남아있는 군 생활을 두고 “야, 이제 다 했네”라며 염장을 질렀다.
조금씩 군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시간을 견디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등병에서 일병으로, 일병에서 상병으로, 상병에서 병장으로 진급을 했고, 마침내 말년 휴가까지 다녀왔다. 그런데도 제대를 한다는 사실이 실감되지 않았다. 정말 내가 다시 민간인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