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꽃보다 아름답지 않다

[태우의 뷰파인더 13] '어두운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다

등록 2004.04.02 11:29수정 2004.04.0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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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대학을 갓 졸업한 후 한동안 드라마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내 감정과 주장이 중요했던 내게 드라마를 쓰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만큼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포용력을 가지는데 서툴렀기 때문이었고,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진실한 마음을 가지면 아무도 그 진실을 외면하지 못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 진심이 통할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진심 따윈 아주 우습게 여긴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선생님께 내가 쓴 드라마를 보여드렸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선생님의 내공은 단연 최고였다. 더구나 선생님은 권위적이지 않았고, 간절한 소망을 품은 후배들에게 금싸라기 같은 조언을 해주는데 인색하지 않는 분이셨다.

드디어 내 습작의 품평회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선생님은 내게 짤막하지만 강렬한 말 한마디를 해주셨다. 선생님의 말씀은 길었지만 단 한 문장만이 내 심장에 아로새겨졌다. 그 문장이 바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까?”였다.

당연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우물쭈물하는 나를 향해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지 않아. 절대 아름다울 수 없어. 꽃이 사람보다 훨씬 아름답지.”

나는 그 말을 얼른 납득할 수 없었지만 숨겨둔 뜻이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왜 선생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지 않다고 하셨을까?


김태우
서른을 넘어 사회를 경험하면서, 각자 다른 가치와 논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뒤섞이면서 나는 이제 선생님의 말에 숨겨진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 그래서였어. 그래서 선생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거였어.

세월이 흘러 다시 펴본 내 습작의 결정적인 약점은 갈등이 약하다는 거였다. 나는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내 드라마 속 인물들은 격렬한 갈등 없이 그저 알맞은 내 주관에 의해 적당한 갈등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정말 좋은 드라마를 쓰려면 다른 사람도, 때때로 꽃보다 아름답지 못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엄연한 등장인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거야. 꽃보다 아름다운 생각만을 언제나 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사람도 아니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나는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사람이 얼마나 강자 앞에서 비굴해지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간사해지고, 약자 앞에서 혹독하게 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매도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더럽고 추악한 본질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울러 눈치챘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가상세계의 컴퓨터에 의해 존재하는 비밀요원이 인간의 사악함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비밀요원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 친화적으로 살아가지. 하지만 단 한 생명체만은 자연을 파괴하면서 생명을 유지해. 그게 바로 바이러스야”라고 주장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그 비밀요원은 인간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바이러스’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 말이 수긍되었다. 밀림의 왕인 사자도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는다. 모든 동물도 마찬가지다. 오직 인간만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 아무리 배가 불러도 끊임없이 사냥에 나서고, 자연을 파괴하면서 그들의 논리를 주장한다.

사람에겐 ‘어두운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의 종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선생님께서 말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욕망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 꽃은 최소한 햇살과 공기와 바람만을 취하며 아름답게 피어나 세상에 기여하지만, 사람은 욕망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김태우
하지만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소망해야 한다. 그래야 ‘꽃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을 지라도, ‘꽃처럼’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늘 경계하는 마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어두운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니까. 하지만 그 경계의 마음을 지키며 나아갈 때, 사람은 비로소 꽃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꽃처럼' 아름답기를 희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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