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서른을 넘어 사회를 경험하면서, 각자 다른 가치와 논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뒤섞이면서 나는 이제 선생님의 말에 숨겨진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 그래서였어. 그래서 선생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거였어.
세월이 흘러 다시 펴본 내 습작의 결정적인 약점은 갈등이 약하다는 거였다. 나는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내 드라마 속 인물들은 격렬한 갈등 없이 그저 알맞은 내 주관에 의해 적당한 갈등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정말 좋은 드라마를 쓰려면 다른 사람도, 때때로 꽃보다 아름답지 못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엄연한 등장인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거야. 꽃보다 아름다운 생각만을 언제나 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사람도 아니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나는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사람이 얼마나 강자 앞에서 비굴해지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간사해지고, 약자 앞에서 혹독하게 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매도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더럽고 추악한 본질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울러 눈치챘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가상세계의 컴퓨터에 의해 존재하는 비밀요원이 인간의 사악함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비밀요원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 친화적으로 살아가지. 하지만 단 한 생명체만은 자연을 파괴하면서 생명을 유지해. 그게 바로 바이러스야”라고 주장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그 비밀요원은 인간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바이러스’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 말이 수긍되었다. 밀림의 왕인 사자도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는다. 모든 동물도 마찬가지다. 오직 인간만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 아무리 배가 불러도 끊임없이 사냥에 나서고, 자연을 파괴하면서 그들의 논리를 주장한다.
사람에겐 ‘어두운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의 종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선생님께서 말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욕망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 꽃은 최소한 햇살과 공기와 바람만을 취하며 아름답게 피어나 세상에 기여하지만, 사람은 욕망의 화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