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종대와 나, 그리고 용서" | | | 임은순(전 세종대 관광경영학과) 교수 양심선언서 전문 | | | | 저는 세종대학교의 전신인 수도여자사범대학 호텔경영학과에 1977년 입학하여 졸업 후, 동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석사는 이승윤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논문을 썼고, 박사는 주명건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한국관광에 대한 일본인과 미국인의 관광수요함수 추정'이라는 논문을 써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학위 취득후 1987년 9월부터 세종대학교 관광경영학과에 전임강사로 임용되었습니다. 모교에 임용되자마자, 1987년 가을부터 재단과 학생들간의 마찰로 수업거부, 농성 등 학교가 정상 운영되지 못하다가 1988년 9월 세종대 유령교수문제가 동아일보에 게재되자 교수들은 교수협의회를 조직하였습니다. 모교를 지키자는 마음으로 저도 교수협의회에 가입했습니다.
88년 11월, 학교의 중요한 분들 8명이 서명한 합의각서가 만들어지고 직선총장을 선출하는 등의 과정을 겪으면서, 1989년은 교정에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직선총장이 물러나고 재단측에서 총장을 임명하면서 1989년 10월부터 단과대학별로 교수협의회 탈퇴압력을 받았고 저는 번민 끝에 마지막으로 탈퇴하게 되었습니다. 탈퇴서에 동의하지 않은 몇 분은 그후에 해임 또는 재임용탈락을 하였습니다. 결국, 1990년 봄 휴업령, 교수해임, 재학생 유급이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학내문제는 서서히 가라앉았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학생지도, 강의, 연구활동을 충실히 했고, 한국관광학회지 '관광학 연구'에 실린 저의 논문이 심사위원들로부터 우수 논문으로 평가를 받아 1996년 2월 한국관광학회에서 제정한 '우수 관광논문상'을 최초로 수상하였고, '관광조사분석론'이라는 책을 저술 출판하였습니다. 저는 1990년 9월 조교수로 승진하였고, 1996년 8월에 재임용기간이 만료가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1996년 1학기 학사 일정이 끝난 7월 29일경. 당시 교무처장이었던 유양자 교수로부터 재임용탈락 되었으니 학교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유 처장께 가서 '연구 실적이나 강의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아는데, 재임용 탈락 이유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어보니, 당시 교무처 직원이었던 박해일 선생이 옆에서 '교수로서의 품위손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품위손상이냐고 물으니, '잘 알지 않느냐? 교수협의회에 가입했었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유양자 처장께서 당시 부총장이었던 신현주 교수님을 찾아가라고 해서 부총장실로 가니 '학교에서 1년 동안 미국에서 지낼 경비로 2만불을 줄테니 사표를 제출하고 미국으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여기서 과연 교수가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교수의 본분인 연구와 강의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교수협의회는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 제반사태에 교수들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창구라고 믿고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탈퇴했던 것인데, 6년이 지난 지금에 해고의 사유가 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며칠 후 저는 학교로 가서 '돈은 필요없고 1년 동안 휴직으로 처리해주면 그동안 다른 학교에 지원해서 학교를 옮기겠습니다. 만일에 다른 학교에 교수로 임용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세종대로는 다시 오지 않겠으니까 1년만 휴직으로 처리해 주십시오'하고 간곡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유 교무처장과 신현주 부총장께서는 학교에 말을 잘해 볼테니 사표와 휴직계를 둘다 써오라고 했고, 다음 날 저는 사표와 휴직계를 써서 유양자 처장께 가니 사표의 내용을 읽어보시고, '그동안 교수로 재직하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추가하라고 해서 그렇게 고쳤습니다.
이어 부총장실로 가자 신현주 교수께서는 어떤 것이 사표냐고 저에게 물으시더니 사표만 받으시면서, '어서 미국으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미국으로 떠날 마음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불과 며칠동안 일어난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너무나 일방적이었고 힘들었습니다. 주변에 상의를 할만한 분도 없어 저는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본교 출신 교수로서 세종대에 누구보다도 애정과 열의를 갖고 일했던 나에게 이 어른같은 분들이 이럴 수가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1996년 8월 29일자로 제 급여통장에는 당시 환율로 계산한 2만불에 상당하는 금액인 1700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이 돈은 제가 원했던 것도, 합당한 것도 아니었기에 7년 이상 간직해 왔던 급여통장의 사본을 여기에 공개합니다.
제 이야기를 하다보니 실명으로 거론된 세분께 혹시나 누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러나, 언젠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마음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세종대를 떠난 후 신앙생활을 하면서 '용서'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며, 저 또한 저에게 갈등과 아픔을 주셨던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역사에 대해 가정을 할 수는 없겠지만, 세종대학교가 1989년에 교수협의회를 해체시키지 않고 교수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 왔다면 지금의 재단갈등도 발생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부모 자식간의 재단 경영권 다툼으로 그 분들은 얼마나 힘들 것이며, 우리 세종대학교는 얼마나 상처를 입겠습니까?
또한, 세종대의 역사에서 저와 같은 아픔을 갖게 되는 분들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기를 기원하고, 제 모교인 세종대학교가 더욱 좋은 대학이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2004. 4. 7.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