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에 읽는 시(2)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시

등록 2004.04.12 09:27수정 2004.04.1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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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꽃
마종기


그날 밤은 보름달이었다.
건넛집 지붕에는 흰 박꽃이
수없이 펼쳐져 피어 있었다.
한밤의 달빛이 푸른 아우라로
박꽃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박꽃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네.
아버지 방 툇마루에 앉아서 나눈 한마디,
얼마나 또 오래 서로 딴 생각을 하며
박꽃을 보고 꽃의 나머지 이야기를 들었을까.
--이제 들어가 자려므나.
--네, 아버지.
문득 돌아본 아버지는 눈물을 닦고 계셨다.

오래 잊었던 그 밤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내 아이들은 박꽃이 무엇인지 한 번 보지도 못하고
하나씩 나이 차서 집을 떠났고
그분의 눈물은 이제야 가슴에 절절이 다가와
떨어져 있는 것이 하나 외롭지 않고
내게는 귀하게만 여겨지네.


연대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마종기는 현역 군인 신분으로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한다. 그가 미국으로 강제 출국되기 전날 밤, 동화작가이기도 한 아버지 마해송과 나누는 조국에서의 마지막 밤 풍경이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아래서 먼 이국 땅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는 죄 없는 아버지의 애틋함이. 정작 할 말은 한 마디로 나누지 못한 채 아들을 떠나 보내야 하는 아버지의 눈물이. 흰 박꽃에 스며들어 칼로 벤 듯 아프다. 마해송은 그 해 뇌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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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사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2년째 광주교사신문 12면에 주제가 있는 여행 꼭지를 맡아 집필하고 있다. 또한 광주과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있으면서 학교도서관 운동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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