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호랑이 이야기 13

은행나무로 가는 길 2

등록 2004.04.14 04:30수정 2004.04.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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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노란 가방이 된 백호를 등에 매달고 한참을 걷던 바리가 말했습니다.

“ 아무거나 변할 수 있다면, 자동차 같은 걸로 변하면 안돼? 저 산을 넘어 가야한다는데, 너무 힘들잖아.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 넌 분명히 운전을 못할 거구, 난 기사 아저씨는 만들 줄 몰라.”

바리는 물어물어 장승이 말한 그 은행나무에 찾아왔습니다. 은행나무 주변으로는 돌탑이 쌓여있던 것처럼 돌들이 수북이 쌓인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바리 또래의 아이 몇 명이 달라붙어 줄기를 끌어안아야 할만큼 나무줄기가 굵었습니다. 뿌리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있는게 아주 오래된 나무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백호는 그 나무 주위에 흩어져 있는 돌들을 입으로 가져와 차곡차곡 모아서 나무 주변에 쌓아놓기 시작했습니다. 백호를 따라 돌들을 모으던 바리가 물었습니다.

“ 나무도 아까 그 장승 아저씨 아줌마처럼 간지럼을 태우는 거야? 이 나무는 뭐하려고? 이런 나무는 우리 보육원 뒤산에도 많단 말야”

“ 이 나무는 인간들의 세계와 신들의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문과 같은 거야. 그래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내곤 했었어, 그렇게 제사를 지내면 이 나무의 문을 통해서 여러 신들이 나와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늘에 전해주곤 했지. 그런데 이 문이 수백 년간 열리지 않았을텐데, 잘 열릴 수 있을까 모르겠네.”


바리가 말했습니다.

“ 이게 문이면, 문고리는 어딨어??


호랑이는 말 없이 돌들만 앞에 수북히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바리는 돌 모으기를 멈추고는 자기도 간지럼을 태우려는 듯이 은행나무 줄기 여기 저기를 만지작 거렸습니다.

" 간지럼 태워도 아무 일이 안 일어나는데……너 여기 문을 어떻게 여는지 알기는 아는거야??"

대답 대신 호랑이는 나무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기만 했습니다. 그러더니 다음과 같은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세차......"

나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 나무님 나무님 문을 열어주소서“

그러자 나무잎사귀가 파르릇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부는 것같이 약하게 떨리기만 했습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해진 바리는 얼른 호랑이 곁에 섰습니다.

“ 삼가 생각하건데 나무님은 중요한 자리에 계시는 존령님이십니다.”

호랑이가 이 이야기를 마치자 나무줄기에서 갑자기 우두둑 소리가 났습니다. 바리는 너무 놀랐습니다. 나무줄기가 마치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줄기를 쭉 뻗으면서 내는 소리였습니다. 가지에 조금 달려있던 은행잎들은 그냥 바스락 거리기만 할뿐 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 받들어모시오니……… 저희들을 보살펴 주옵소서.”

호랑이가 그런 이상한 말을 해대고 있는 동안 나무는 기지개 켜기를 순식간에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땅 속에서 묻혀있던 은행나무의 잔뿌리들이 하나 하나 흙을 파고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 재앙을 멀리하고……… 상서로움이 깃들도록……… 저희 모두가 정성을 앞세우고…..”

전부 나무의 손이 된듯 하나 하나 움직이던 뿌리들은 눈이 달렸는지 주변에 모아놓은 돌을 뿌리로 휘감아 호랑이가 쌓아놓은 돌탑 옆으로 주섬주섬 모으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리는 넋이 나간 듯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제수로 삼아……… 이자리에 섰습니다”

호랑이가 그런 주문을 외우고 있는 사이 은행나무의 잔뿌리들은 착실하게 돌들을 모아서 커다란 대문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것을 보는 바리는 입을 다물줄 몰랐습니다.

“ 백두산 호랑이가……… 인사 드리옵나이다.”

호랑이는 비로소 주문을 외우기를 마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돌 쌓기를 마친 은행나무의 뿌리들은 거짓말처럼 다시 흙을 파고 땅 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줄기는 아주 미묘하게 파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백호는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는 바리의 엉덩이를 머리로 밀면서 말했습니다.

"자. 들어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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