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딧줄을 필리핀으로 떠나보내는 날, 가족과 함께 돼지갈비를느릿느릿 박철
지금은 경제적인 형편이 좋아져 가끔 과일을 사다 먹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그림에 떡에 불과했다. 나는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사도 양을 많이 주는 쪽을 택하는 편이고, 아내는 양보다는 질을 더 선호한다. 나는 과일을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다. 주면 먹고 안 주면 말고 정도이다.
이상하게 어려서부터 단 음식은 싫었다. 유년시절 가난하게 살았지만 포도, 자두, 살구, 복숭아 등 이웃의 인심으로 맛은 보고 자랐다. 그러나 육류는 거의 구경하지 못했다. 그래서인가 나는 과일보다 육류를 더 좋아한다.
이것 때문에 아내와 가끔 다투기도 한다. 아내는 육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외출이라도 할 것 같으면 “포도 좀 사다 주세요… 딸기가 먹고 싶은데 딸기 좀 사다 주세요”하고 늘 과일 타령이다. 아이들 셋은, 나를 닮아서 과일보다는 육류를 좋아한다. 아이들이나 내가 “오늘 고기 사다 구워먹읍시다”하고 말하지 않으면 아내가 고기를 사오는 일은 거의 없다.
아내는 이불속에서도 과일 생각을 한다. 그만큼 과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아내에게 “그럼 과수원집 아들에게 시집을 갈 것이지, 가난한 목사에게 시집을 와서 만날 과일타령이야”하고 농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과일을 좋아하는 여자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19년 전 정선에서 살 때였다. 신혼 초였다. 아내가 아기를 가졌는데 몸이 너무 약해 두 번 유산을 했다. 가난하고 작은 시골교회였지만 우리 부부는 행복했다. 교회에서 받는 생활비로는 두부 한 모 사먹을 여유가 없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나물을 뜯으러 다녔고, 나는 산으로 고사리를 뜯으러 다녔다. 그때 아내가 뜯은 미나리를 몇 가마 분량은 먹었을 것이다.
가난한 것 말고는 생활에 아무런 불편이나 유감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여보, 고기가 먹고 싶어요!”하고 말을 하는 것 아닌가. 눈치 없이 과일이 먹고 싶다는 얘기는 가끔 했지만 “고기가 먹고 싶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처녀 적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를 먹어본 적이 있었나 보다. 칼질하는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는 말은 몇 번 들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