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호랑이 이야기 16

측간신의 집 1

등록 2004.04.21 04:25수정 2004.04.2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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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이상한 주문으로 만들어준 그 돌문 앞에서 바리는 그냥 말없이 서있기만 했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이세상과는 다른 뭔가 엄청나게 이상한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아 겁이 났습니다.

바리 엉덩이를 밀던 백호가 물었습니다.


“ 안 들어갈거야?”
“ 어, 엇 잠시만"

그 사이 백호는 바리를 지나 그 돌문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백호는 그냥 반대편쪽으로 나와있기만 할 뿐, 바리가 있는 쪽에서도 빤히 보였습니다. 백호가 서있는 곳이라고 뭐 특별히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분명 그 은행나무들의 뿌리들이 돌을 하나 하나 집어서 돌탑을 쌓는 것을 보았는데, 백호가 장난을 치는 것일리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 안 들어올래? 무서워할 거 하나 없어, 거기서도 내가 보이지?”

백호가 하는 말에 바리는 발을 들어서 돌문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한발짝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나지막한 산들이 바리를 보고 힘을 내라는 것처럼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발짝


앞을 쳐다보았습니다. 백호가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발짝

옆에 서있는 돌문이 바리가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며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살금살금 걸어서 문을 완전히 통과해 나왔지만, 영화에서 본 것처럼 신기한 일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 뒤에 은행나무도 그대로 보이고, 주변 마을도 그대로였습니다.

바리가 백호 쪽으로 다가가자, 그 돌탑이 갑자기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뭐야, 이거, 아무런 차이도 없잖아.”

바리가 볼멘 소리로 짜증을 부리자, 백호가 말했습니다.

“ 그럼 신들이 무슨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알았어? 신들은 항상 우리와 같은 자리에 계신다구, 그냥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이지. 신들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은, 우리도 신들을 볼 수 있다는 것 뿐이야, 마을을 지켜주는 신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우리의 부탁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마을마다 서있던 저 나무가 바로 그분들과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일을 했었어.”

“ 우리는 다른 사람들 눈에 안 보여?”

“ 너는 보이지, 너는 신이 아니니까, 그 대신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아서 가방으로 변하지 않아도 돼.”

바리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산도 그대로고 나무도 그대로고, 집들도 그대로였습니다.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파리떼들고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뭔가 다른게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 멀리서 날아다니는 것 같은 그것은 파리가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멀리서 바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덟 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주변으로 무언가 나풀거리고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선녀들이 날개옷을 입고 저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와아”

진달래 선녀를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날개옷을 입고 날아오는 선녀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살랑살랑 봄바람에 옷깃이 날리는 듯 그렇게 가늘게 흔들리는 날개옷을 입은 선녀들은 공중에 떠있는 것만 다를 뿐 차라리 저 위에서 우아하게 산책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선녀들은 그렇게 날아서 바리와 호랑이 앞에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 호호 네가 바리로구나,”
“ 안녕, 백호야, 오랜만이다. 호호호.”

학교를 끝마친 중학교 언니들인양, 선녀들은 백호를 보자 까르륵 웃으며 재잘대기 시작했습니다. 백호가 말했습니다.

“이 언니들은 팔선녀들이야. 인사 드려라.”

바리는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날개옷을 가까이서보니 진달래 선녀가 입었던 옷에 덧대어져 있는, 어깨와 머리 위로 나풀나풀 날리는 얇디얇은 천이었습니다. 선녀들에게선 하나 같이 다 좋은 향기가 났습니다.

“안녕 , 내 이름은 도라지라고 해, 너 바리 맞지?”
“호호, 듣던 바대로 아주 똘망똘망하게 생겼구나, 저 백호 무섭지 않니?”

다른 언니들이 또 까르르 웃었습니다.
바리가 물었습니다.

“언니들도 산신 할아버지랑 같이 일해요?"

도라지 언니 옆에 있던 다른 선녀가 말했습니다.

“ 아니,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선녀들이야. 바리 친구들이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다거나, 친구들로부터 선물을 받는다거나, 생일잔치에 갔을 때, 출근하는 아빠한테서 뽀뽀를 받았을 때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우리들 때문이지.”

그 뒤의 다른 선녀가 말했습니다.

“ 아주 슬픈 일이 있어서, 울고 있을 때 눈물을 멈추고 다시 웃을 수 있게 해주지.”

또 다른 선녀가 말했습니다.

“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깔깔 대고 웃을 수 있는 것도 다 우리들 때문이란다.”
“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뭔지 알게 해주는 게 우리들이 하는 일이야. 즐거운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몰래 뒤로 다가가서 우리들의 웃음을 불어넣어준단다.”

선녀들 모두 목소리가 아주 맑고 명랑했습니다. 게다가 말을 한마디 하면 맑은 웃음소리가 펴져나오는게, 그 웃음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몰랐습니다. 그 언니들과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도, 바리는 벌써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도라지 언니가 백호에게 물었습니다.

“ 백호야, 백두산에서 산신 할아버지하고만 살다가 이곳에 오니 좋으니?”
“ 인간계를 보니 좋긴 하지만, 얼른 일을 마치고 백두산에 돌아가야해. 우리 도와주러 온거 맞지?”

도라지 언니가 다시 말했습니다.

“ 우리는… 그냥 저 멀리서 있다가, 누군가 이 곳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이길래 반가워서 달려온것 뿐이야. 저 은행나무 문을 통해서 누가 들어오게 되면 순간 반짝 하면서 밝은 빛이 나거든. 아무라도 이 돌문을 지나서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몰라.”

그 반짝하는 빛이 선녀들한테는 보였는가 봅니다. 백호가 말했습니다.

“ 우리들은 집안가신들의 기를 모으러 지금부터 부지런히 다녀야 하거든. 좀 도와줄 수 있어?"
“ 알다시피 우리는 옥황상제님의 허락 없이 이곳을 함부러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많이 도와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우리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지?”
“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신이 누군지 말해줘,”

도라지 언니는 다른 선녀들과 종알종알 이야기를 한참 하더니 다가와 말했습니다.

“저 산 두 개 넘으면 거기에 측간신이 살아. 측간신이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신이야.”
“측간신이 뭐에요?”

바리가 선녀에게 물었습니다.

“ 화장실을 지켜주는 신이셔.”

호랑이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화장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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