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CD

<나의승의 음악이야기 52> 베이시스트 모그 (이성현)

등록 2004.04.22 11:22수정 2004.04.2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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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듣다가, "음악 죽인다"라는 말을 중얼거려야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탱고 블루(Tango Blue)'라는 음악이었다. 결국 음반 속의 '슬리브'를 꺼내 읽어야 한다.

[A]


1. Tango Blue
탱고는 둘이 추는 춤이지만 왠지 혼자 추는 것보다 더 쓸쓸해 보인다. 너무 아름다워서인가?

2. I just want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던 시기에 이 곡을 썼다. 그 당시 나와 함께 연주를 많이 했던 Claudia가 전반부의 멜로디를 가져와 이 곡을 쓰게 됐다. 원래는 보컬도 들어 있다.

3. Quiet Rain 조용히 적시는 빗소리는 고된 삶을 축복해 주는 선율이다.

4. Don't imagine 때로는 상상하지 말아야 될 것이 내겐 너무 많다.

5. Etude 그동안 내가 연습할 때 녹음해 보았던 트랙을 묶어 만들었다.


8. Sad But True 슬프지만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슬픔에는 이유가 있다. 나의 허름한 뉴욕 아파트에서 이 곡을 혼자 녹음 할 때가 가끔 생각난다.


[B]


1. Desire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은 결국 욕망하는 기계인가? 나의 시간이 욕망의 굴레에서 만이라도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2. Confession 내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는 수많은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의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든 곳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그곳에서 항상 나를 구해 주었던 것은 짧은 고백이었다.

3. Smile 난 나의 미소를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볼 수 없는 그 풍경의 기억은... 그러나 아직도 가끔 나를 미소짓게 한다.

4. How insensitive 조빔과 시나트라가 다정히 연주하는, 오래된 텔레비전 쇼의 한 장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미지 중 하나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축음기와 두 거장의 모습을 회상해 본다. 녹음하기 8시간 전에 비제의 '카르멘'에서 모티브를 얻어 탱고 스타일로 편곡했다.

5. Cause We've Ended As Lovers 미치도록 사랑해 본 사람이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또 다른 내가 그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이 곡은 내 젊은 날의 사랑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거울이다.

6. Another Day 미지에 대한 상상과 동경은 삶에 대한 가장 좋은 감상이다.

7. Fallen 추락과 타락은 내겐 죽음과도 견줄 수 있는 공포이다. 내게 날개가 있다면, 여기서 나를 끌어올릴 수 있을 텐데….

8. Alon Again 어느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나는 또 다시 외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들 때에 나는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9. Once 한때 당신과 나는… 지금 당신과 나는… 또 미래의 당신과 나는… 슬픈 질문이지만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한다. 지금은 브로드웨이 쇼에서 배우로 더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Hoon Lee가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10. Compass 살아가는 길은 있는데 왜 거기에 나침반은 없을까?

a

'모그'는 이런 글들을 CD의 인쇄물에 남겨 놓고 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의 마음을 조금 읽을 수 있다. 더불어서 그는 음악과 더불어 끊임없는 생각들을 해 왔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어느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인간이 결코 배울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감성'과 '직관'이다" 라고…. 그러므로 '감성과 직관'은 타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지나치지도 않고, 꾸밈도 없는 음악과 글을 통해, 차분히 흐르고 있는 감성으로부터, 우리는 그의 '감성과 직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CD의 인쇄물에 남아있는 재즈칼럼니스트 권오경씨의 글을 부분이나마 옮겨 본다.

우리나라 '음악동네'가 워낙 터가 좁은 까닭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거나 화제가 떠돌면, 금세 입 소문을 타고 귀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베이시스트 '모그'(본명 이성현)의 등장 때도 그랬다. "굉장한 놈이 나타났다." "국내 최고의 테크닉을 가졌다."는 등의 찬사가 그의 곁을 따라 다녔다.

그 소문도 잠시, 찬사를 채 확인하기도 전에 '모그'는 한국을 떠나 다시 뉴욕으로 갔다.

드디어 그가 돌아 왔다. 예의 바르게 빈손도 아니다.

'Desire'라는 데뷔앨범을 선물로 가지고 왔다.

"영혼 깊숙한 곳에 머무는 베이스의 따스한 울림"이라는 음반 홍보 문구처럼, Desire의 밑바탕은 베이스의 저음을 십분 활용한 감미로운 음악들이다.

베이스라는 악기의 한계를 장점으로 바꾼 모그의 손놀림이 정말 놀랍다.

열 네살 때, 베이스를 시작한 '모그'는 '스텐리 클락'이나 '자코 패스토리어스' '마커스 밀러'같은 베이시스트들의 음악을 듣고 프로 뮤지션을 꿈꿨다.

미국 친구들이 부르기 시작한 '모그'라는 별명은 '정글북'의 주인공 '모글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모그'역시 음악적 감각을 뉴욕의 언더 신에서 익힌 것이다.

뉴욕의 클럽과 공연장을 누비며 왕성한 활동을 했던 그는 록 밴드와 펑크 재즈밴드를 거쳤고, 김덕수 사물놀이나 무용가 안은미와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72년생, 서른 세살, 예수님의 나이와 비슷한 지금 그는, 무겁고 목이 긴 '베이스'라는 이름의 신무기를 들고 한발씩 쏘기 시작했다.

stage name(예명)='모그'. 그의 총알에 마음을 적중 당한 세계의 음악 애호가들이 하나 둘 쓰러지는 모습을 예견해 본다. 그들은 N군처럼 외마디 말하며 고개를 떨굴 것이다. "음악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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