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평화가 머무는 JSA

[탐방]분단의 최전선에서 한반도 평화를 꿈꾸다

등록 2004.04.24 18:08수정 2004.04.2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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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자유로를 따라 공동경비구역(JSA)으로 떠난다. 한강 하구를 따라 길게 쳐진 자유로변 철책은 2004년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반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느덧 1시간을 달려오면 '통일의 관문'이라고 적힌 대형 철조 건물 앞에서 무장을 한 군인들이 정지 신호를 한다. 민간인 통제선(민통선)을 들어가는 관문인 통일대교에는 '판문점 9.5㎞'라는 표지판이 선명하다.


a 공동경비구역(JSA) 인근 상황도

공동경비구역(JSA) 인근 상황도 ⓒ 박신용철

민통선을 지나 판문점 입구인 캠프 보니파스에 도착한다. 주한미군 기지 중 유일하게 유엔사 산하에 소속된 부대인 캠프 보니파스(유엔사 경비대대)는 군사 분계선을 기준으로 개성에서 12㎞, 서울에서 40㎞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JSA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JSA ballinger 홀에서 공동경비구역에 대한 브리핑을 받아야 한다. ballinger 홀 왼편에는 세월의 풍파에 낡은 노란색의 군사분계선 표지판(0094)이 붙어 있고 왼편에는 1976년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미루나무 도끼만행사건(AX. MURDERS 18. AUG 76. 한국 정부는 반공 교육의 일환으로 북한군의 '도끼 만행 사건'으로 명명하고 있다)의 현장 흑백 사진이 붙어 있다. 이곳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조인 당시로 시간이 멈춰있는 듯했다.

캠프 보니파스와 세계에서 가장 값 비싼 나무

미군은 부대나 건축물의 이름에 그것과 관련된 이들의 이름을 붙인다. 그렇다면 '캠프 보니파스'는 어떤 사건과 관련 있는 것일까? 반공 교육을 받은 한국 국민이라면 '북한군의 도끼 만행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정확한 내용은 떠오르지 않더라도 말이다.

미루나무 가지치기라는 아주 사소한 사건이 한반도 전쟁 발발 직전까지 몰고 갔던, 일명 '도끼 만행 사건'의 현장이 바로 유엔사 경비대대인 캠프 보니파스가 경비를 서고 있는 제3초소 인근이다.


현재 JSA 내에는 군사 분계선이 존재하고 있지만 1953년부터 1976년까지만 해도 군사 분계선이 없어서 남북 군인들이 왕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76년 8월 18일 사건으로 모든 것은 달라진다.

a JSA내 제3초소에서 바라본 전망. 왼편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유엔사 관할 초소와 북측 초소가 보인다.

JSA내 제3초소에서 바라본 전망. 왼편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유엔사 관할 초소와 북측 초소가 보인다. ⓒ 박신용철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경 유엔군 경비대대(미군 장교 2명,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 사병 4명 등)와 한국인 노무자 5명이 JSA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 제3초소(유엔군 관할) 부근에 있는 미루나무의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미루나무가 무성해져 제3초소 앞에 위치한 북한측 초소 3곳에 대한 관측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엔사 측이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시작하자 북한측 군인들이 "나무 자르는 작업을 중지해라"고 요구했고 유엔군은 "통상적 작업"이라고 맞섰다.

북한군의 작업 중지 요청에도 불구하고 유엔사가 가지치기 작업을 강행하자 오전 11시경 북한군 사병들이 트럭을 타고 와 몽둥이와 도끼 등을 유엔군측 군인들에게 휘둘렀고 경비중대장 보니파스 미군 대위와 소대장 바레트 미군 중위가 이마에 중상을 입어 피살되는 등 정전협정 이후 23년만에 JSA내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게 됐다.

당시 유엔군 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 리차드 스틸웰은 '데프콘3(예비 경계 태세)'를 발동했다. 한국 전쟁 이후 데프콘3가 발동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김일성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도 '북풍 1호(준전시 상태)'를 선포해 전쟁 태세를 갖출 것을 명령했다.

a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나무가 있던 자리. 미루나무 한그루의 가지치기 시비가 한반도를 전쟁직전까지 몰고 갔다는 사실에서 한반도의 불안정한 평화를 엿볼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나무가 있던 자리. 미루나무 한그루의 가지치기 시비가 한반도를 전쟁직전까지 몰고 갔다는 사실에서 한반도의 불안정한 평화를 엿볼수 있다. ⓒ 박신용철

이 사건은 미국 워싱턴 포드 행정부에 전달됐고 결국 문제가 된 미루나무를 제거하기로 결정됐다. 작전명 '폴 버니언 작전'으로 명명된 미루나무 제거 작전은 1976년 8월 21일 오전 7시 데프콘2(공격 준비 태세)로 격상시킨 채 감행됐다.

이 때 미국 본토에서 핵 탑재가 가능한 F11 전투기 20대, 괌에서 B-52 폭격기 3대, 일본 오키나와 공군 기지에서 F4 24대가 한반도로 이동했다. 또한 미7함대소속 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중무장한 순양함 5척과 함께 동해를 거쳐 북한 인근으로 향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교전 상황을 대비해 '우발 계획'이라는 작전 계획을 수립해 북한과의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개성에 대한 초토화작전과 인민군의 궤멸, 나아가 확전시 개성과 연백 평야 탈환을 계획했다. 특히 북한의 전차 부대가 남진할 경우 핵 전술 사용도 고려했다고 한다. 남한군도 특전사 64명과 1사단 수색대가 참여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당시 김일성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충돌을 회피하라는 명령을 내려 군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고 미루나무는 군사적 충돌 없이 제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북한군과 유엔군 사령부는 제446회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JSA내 군사 분계선을 설치하고 서로 넘나들지 않도록 합의했다. 양측은 군사 분계선 설치 후 남측에 설치한 북한 초소 4곳을 철수했고 남측도 마찬가지 조치를 취했다. 이로써 JSA 내에 군사 분계선이 설치되게 된 것이다.

a '돌아오지 않는다리'-79년 8월 18일 북한군 사병들이 트럭을 타고 넘어왔던  다리로 북한군의 통행로였다. 도끼만행사건 이후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통해 출입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돌아오지 않는다리'-79년 8월 18일 북한군 사병들이 트럭을 타고 넘어왔던 다리로 북한군의 통행로였다. 도끼만행사건 이후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를 통해 출입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 박신용철

주한미군 사령부 공보과 관계자는 "미군들은 그때의 미루나무를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나무'라고 부른다"며 "나무 하나 자르기 위해 항공 모함까지 동원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를 만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당시는 전쟁 직전까지 갔다. 북측에서 총을 한발이라도 발사했다면 전쟁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은 이 사건을 계기로 유엔사 경비대대 부대명을 '캠프 보니파스'라고 칭했다. 지난 2002년 2월 20일 방한한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이 경의선 복원 현장인 도라산역 방문 직전, 서부전선 주한미군 부대를 방문해 '북한 등 악의 축 국가에 대해 응징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부대 또한 캠프 보니파스였다.

"우리는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우리는 언젠가는 남북한간의 화합의 토대 위에 한반도의 안정이 이룩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반도의 안전은 한·미간의 위대한 동맹 관계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의 군사력 및 동맹관계는 매우 굳건하며 이러한 힘이 바로 한반도 평화의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으로 인해 한국 국민들이 느끼는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우리 군사력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2002년 2월 20일 부시 미국 대통령의 도라산역 연설문 중에서


이제 소위 '도끼 만행 사건'으로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미루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작은 동판만 남아 있을 뿐이다.

a 도라산역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친필사인이 된 철로 목책이 전시되어 있고 연설문 전문도 게시되어 있다.

도라산역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친필사인이 된 철로 목책이 전시되어 있고 연설문 전문도 게시되어 있다. ⓒ 박신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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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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