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호랑이 이야기 18

측간신의 집 3

등록 2004.04.28 05:34수정 2004.04.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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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야, 겁낼 것 없어, 인사 드려라."

백호가 바리의 등을 돌려 세웠습니다. 바리는 다시 한번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흙집 한가운데는 키 큰 아주머니가 온통 검은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었고, 머리카락은 한올 한올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고 있었고, 벽과 천정 여기저기에 연결되어 그 아주머니는 거대한 그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리를 휘감았던 그 검은 실은 바로 그 아주머니의 머리카락이었던 것입니다.


바리는 정신이 나갈 뻔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안녕…. 하세요….. 바리라고 해요..."

백호가 바리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 이분이 바로 측간신이셔."

바리는 백호에게 속삭였습니다.


“ 저…. 저 머리카락들은 다 뭐야......”

순간 측간신은 거친 소리로 말했습니다.


“ 내 집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이런 식으로 함부로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없어, 600년 동안 저 문을 통해서 우리집에 들어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백호가 말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바리가 아직 어립니다. 그나저나 이 여의주에 측간신님의 기를 받아 돌아오라는 어명을 받았습니다.”

“ 여의주? 올해는 왜 도깨비들이 돌아다니지 않고 호랑이가 저런 계집애하고 같이 돌아다니고 있는게야?"

“ 요즘 다른 호랑이들이 어떤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들어서 아시지 않습니까요? 저는 그 호랑이들과는 달리, 백두산 산신님을 모시고 있는 호랑이입니다.”

측간신은 깔깔깔 웃었습니다.

“ 그 호랑이 새끼 몇 마리들이 일월궁전에 들어가서 해와 달을 빼앗아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는 것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바리는 그 측간신이라는 아주머니가 기분 나쁜 소리로 깔깔대고 웃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 아줌마, 빨리 기를 이 여의주에 담아주세요. 그래야 빨리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단 말이에요."

측간신은 갑자기 웃기를 멈추었습니다.

“ 내가 너희들을 도와주워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뭐가 있지?"

바리와 호랑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 지금까지 살아오던 것하고 도대체 무슨 차이를 기대할 수가 있단 말이야, 난 항상 이렇게 뒤처진 곳에서 혼자서 지내야만 했어. 다른 신들처럼 떳떳이 내 얘기를 하지 못하고, 이렇게 외진 곳에서 천대받으며 살아왔단 말이다, 그런데 그 호랑이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나에게도 무언가 이익이 생기나? 나 같이 냄새나는 변소를 수호해주는 신도 부엌이나 재산을 수호해주는 다른 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냐는 말이다. 사람들이 내 앞에도 제물을 놓아주고 다른 신들처럼 똑같은 대우를 해줄 것이냐고!”

측간신은 화가 단단히 난 듯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방안이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 아무도 측간신님의 존재를 경시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 너희들이 그 여의주의 기를 모아서 마지막에 찾아가게 될 그 조왕신에게 물어보거라. 과연 그의 생각도 그러할지. 그가 나를 얼마나 증오했었는데 내가 그 조왕신의 증오 때문에 구석진 곳에서만 지내야했어. 수백 년 간 이 머리카락에 얽매여서 밖을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었어. 그 사이에 사람들은 나를 얼마나 두려워하게 되었는지 알아? 너희들은 알아? 사람들이 너를 두려워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도 다른 신들처럼 제사도 받고 존경도 받고 싶었다구. 난 너희들에게 잡귀에 불과해. 아무도 나를 신으로 인정해 주지 않아. 그런데 내가 누구 좋으라고 이 세상 구하려고 그 잘난 여의주에 기를 불어넣어주나. 다 죽어버리자구. 이 좁은 집 바깥으로 벗어나고 싶다구! 난 그게 더 좋아!”

그러고는 큰소리로 웃기만 했습니다.

바리는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측간신을 업신여긴다는 말인지, 누가 일부러 이렇게 외진 곳에서 살게 했다는 말인지, 도저히 알아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 측간신이 백호와 바리의 부탁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힘든 고생을 하기로 작정하고 길을 떠났는데, 처음부터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습니다.

“ 죄송해요. 측간신님. 제가 일부러 놀라게 해드리려는 것이 아니었어요. 문고리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측간신님이 기를 이곳에 넣어주시지 않으면, 우리 엄마 아빠하고 친구들은 그렇게 나쁜 호랑이가 되어서 계속 사셔야 돼요. 누가 측간신님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잘 말씀해 드릴게요. 저 호랑이랑 신들을 전부 만나고 다닐 거에요. 그때 잘 말씀 드릴게요. 측간신님 미워하지 말라구요. 그 조왕신님이라는 분한테도 말씀 드릴게요. 측간신님이 우리를 제일 먼저 도와주신 분이라 아주 좋은 아줌마라구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빨리 이 여의주에 기를 불어넣어 주세요. 어머니하고 어버지하고 만나면 화장실 청소도 잘 하고, 깨끗하게 사용할 테니까. 제발요.”

바리의 눈에서는 끝내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측간신의 머리카락은 그 때에도 쉬임 없이 벽들과 천장을 왔다갔다하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바리가 이야기할 때마다 가끔씩 바리 곁을 왔다갔다하는 머리카락들도 있었습니다. 집안 가득 드리운 그물처럼 드리운 채, 측간신의 머리카락은 조금도 쉬지 않고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측간신이 표정을 바꾸며 말했습니다.

“ 꼬마야, 너 내 머리카락들이 보이니?
“네.”

바리는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습니다.

“ 나의 수많은 머리카락 한올 한올이 너희들이 살고 있는 인간세상의 화장실에 들어가서 너희들이 하는 짓을 다 보고 있다. 화장실에서 나쁜 일이 생기지는 않는지, 무슨 악령이라도 나타나지는 않는지. 난 화장실을 지켜주고 있는 수호신이야. 이 머리카락은 하루에도 수 백 개씩 새로 생기고 없어지고 한단다. 내 유일한 낙이 있었다면 나의 이 긴 머리카락들을 하나 하나 세어보는 것이었는데, 도저히 끝이 나질 않아, 나의 머리카락이 도대체 몇 개인지 알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측간신을 말을 잠시 멈추더니 말했습니다.

“ 내 기를 그 여의주에 넣어주마, 그 대신 조건이 하나 있다.”

‘ 조건이라뇨?”

백호가 놀라 말했습니다.

“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만들어 준다면야 나도 기꺼이 너희들을 도와줄 수 있다. 내 이 머리카락이 전부 몇 올이나 되는지 알아봐 준다면 내 그 여의주에 기꺼이 나의 기를 불어 넣어주지. 알기 전엔 다시 내 집 안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라.”

그러면서 백호와 바리를 다시 그 긴 머리카락으로 휘어감아 밖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흙집의 문은 바로 닫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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