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어날 때 야반도주 한 그녀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54>공장일기<33>

등록 2004.04.28 13:15수정 2004.04.28 19:1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모란이 피어날 때면

모란이 피어날 때면 ⓒ 이종찬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두)


창원공단 조성으로 여기저기 파헤쳐져 온통 황토빛에 파묻힌 목동마을. 불도저와 포크레인에 의해 초라하게 찌그러진 목동마을은 금세라도 폭삭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서너 평 남짓한 텃밭에는 노란 장다리꽃과 막 떡잎을 내민 호박이 보란 듯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녀 친구의 낡은 슬레이트집 월세방 마당에는 그녀 친구의 애틋한 짝사랑을 이루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모란이 함초롬히 피어나고 있었다. 모란이 피어나고 있는 비좁은 마당가에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빨랫줄에는 그녀 친구의 하얀 작업복과 빨간 스카프가 걸려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목단(모란)만 보지 말고 퍼뜩 방문 좀 열어보라니까예. 내는 시방(지금) 살이 떨려 죽것거마는."
"…"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그때 그녀는 두 손으로 양 볼을 감싸안은 채 걱정이 주렁주렁 담긴 눈빛으로 내 행동만 살피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녀와 모란꽃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떨리는 손으로 그녀 친구의 월세방 문을 옆으로 스르르 밀쳤다. 순간 그녀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버렸다.

이부자리가 가지런히 펴진 그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방안에는 천으로 만든 간이 옷장 하나와 카세트 한 대가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손사래를 치며 아무도 없다는 표시를 하자 그제서야 그녀가 방 안을 들여다보더니 서둘러 들어갔다.


"가시나 이거 이랄 줄(이럴 줄) 알았다니깐."
"와예?"
"카세트 한번 틀어보까예? 가시나 이기 요새 머슨(무슨) 노래로 듣고 있는강."
"…"


그녀가 카세트 스위치를 누르자 이내 "창가에 서면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 하는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노래가 끝나자 또다시 같은 노래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그 테이프 양면에는 그녀의 말처럼 온통 '창밖의 여자'라는 노래만 녹음되어 있었다.


"근데 하얀 저기 뭐지예?"
"오…오데예?"
"베개 옆에 있는 그거예. 머슨(무슨) 쪽지 같기도 한데..."
"옴마야~ 가시나 이기 참말로 일을 치뿐(친) 거 아이가."
"뭐…뭐라꼬 씌어 있습니꺼."
"…"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읽어내리던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서 이내 굵은 눈물 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혹시 그녀의 우려처럼 저 쪽지가 그녀 친구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라도 된다는 말인가. 근데 그녀의 표정과 행동으로 보아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인자 다 끝났어예."
"그…그기 머슨 말입니꺼?"
"한번 읽어보실랍니꺼?"


그 하얀 쪽지에는 깨알처럼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파란 볼펜을 꾹꾹 눌러 쓴 듯한 그 쪽지에 담긴 내용은 대략 이랬다.

휴일도 없이 잔업을 하며 공장에 다니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고. 그리하여 이젠 지칠대로 지쳤고, 쥐꼬리보다 적은 월급으로는 한 달 먹고살기도 빠듯하여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고. 그래서 벌써부터 이곳을 떠나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고.

그런 어느 날, 같은 공장 생산부에 다니는 그 사내가 갑자기 자신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사내는 자신의 고된 공장생활을 버텨내게 해주는 희망으로 자리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내도 짝이 있어 자신이 끝내 사랑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이제는 자신의 모든 희망이 꺾이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나 이젠 갈게'라고 마무리 지은 그 쪽지를 다 읽은 나는 뭔가 찜찜했다. 가다니?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동안 다른 직장을 구해 그곳으로 가겠다는 그 말인가. 아니면 '갈게' 라는 말이 혹시 그녀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죽음, 즉 이 세상을 떠난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 않은가.

"가시나 이기 혹시 서울로 올라갔는지도 잘 모르겠어예. 만날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서도 서울 이야기로 자주 꺼냈거든예. 서울에 가모 머슨 짓을 하더라도 공장에 다니는 것보다는 더 낫지 않겠느냐고예."
"그럴 수도 있겠지예. 그런데 짐을 저대로 놔두고 가모 우짭니꺼?"
"어차피 방세도 몇 개월째 밀리고 했은께네 주인 몰래 슬쩍 빠져나간 거겠지예."


그랬다. 야반도주는 내가 살던 시골마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농민의 아들 딸들도 야반도주를 해야만 했다. 평생 흙만 파먹으며 힘겹게 살던 부모님들은 농사빚에 시달려 야반도주를 했고, 그 자식들은 공장의 고된 노동과 열악한 임금 때문에 야반도주를 해야만 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선량한 민초들은 아무리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더라도 대를 이어 야반도주를 해야 하는 슬픈 현실이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공단에서는 그녀의 친구처럼 절망을 하다가 야반도주를 하는 일이 흔했다. 나와 같은 공장에 다니던 몇몇 동료들도 하루 아침에 모습을 감춘 일이 많았으니까.

그녀의 친구가 그렇게 떠나버리고 나자 그녀와 나의 만남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끝내 그 시조차도 그녀에게 전해주지 못했다. 몇날 며칠 밤을 꼬박 새워 그녀를 위해 쓴 그 시를 말이다. 그래. 어쩌면 그날 목동에서 그녀가 "인자 다 끝났어예"라고 말했을 때부터 그녀와 나의 만남은 끝이 난 것인지도 모른다.

해마다 모란이 예쁘게 피어날 때면 나는 그때 그 슬픈 일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아니, 나는 시인 김영랑의 시귀처럼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울다가 마흔 중반을 갓 넘긴 지금까지도 그녀의 친구처럼 식의주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찬란한 슬픔의 그 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4. 4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5. 5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