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하면 10조원 보상... 벌벌 떠는 생보업계

[심층취재] '백수보험' 공대위, 6개 생명보험사 상대 소송 시작

등록 2004.04.28 16:39수정 2004.04.29 19:19
0
원고료로 응원
a 지난 몇 년간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이른바 백수보험 피해자들이 지난 8일 1차 집단소송을 냈다. 이번 소송은 결과에 따라 연이은 집단소송을 유발할 수 있고 소송액도 많게는 몇 조원에 이를 수 있어 올해 생보업계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지난 몇 년간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이른바 백수보험 피해자들이 지난 8일 1차 집단소송을 냈다. 이번 소송은 결과에 따라 연이은 집단소송을 유발할 수 있고 소송액도 많게는 몇 조원에 이를 수 있어 올해 생보업계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 보소연 홈페이지


"'백수 보험'을 아십니까?"

자칫 '실업자'를 위한 보험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80년대 국내 보험사들이 '100세까지 노후를 보장 한다'는 의미를 담아 '백수(白壽) 보험'이라는 이름으로 가입자를 유치한 보험상품이다.

20여년이 지난 올해 '백수 보험'이 생명보험업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유는 보험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일반 계약자들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보험 계약자로 구성된 '백수보험피해자공동대책위원회'(이하 백수보험공대위, 회장 이영기)는 지난 4월 8일 피해자 305명 명의로 서울중앙지법에 '확정배당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이 삼성생명 등 6개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낸 소송액은 모두 44억원.

더 큰 문제는 8일 집단소송을 제기한 300여명의 피해자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데 있다. 2004년 현재 남은 '백수보험' 계약자들은 8∼10만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300여명의 '1차 소송' 결과에 따라 생보사들은 적게는 수 천억, 많게는 수 조원의 피해보상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생명보험사들, 확정배당금 3∼4억 준다고 모집해놓고 매달 8∼9만원만 지급

'백수보험'은 지난 80년대 초반 동방(현 삼성), 대한교육(현 교보), 대한, 동해(현 금호), 흥국, 제일(현 알리안츠)생명 등 6개 생명보험사가 80년부터 82년까지 3년 사이 판매한 종신연금보험 상품이다.


당시 생명보험사들은 계약자가 3∼4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일정기간(5년) 동안 내면 예정이율 12.5%를 적용해 55세나 65세 이후부터 10년동안 약 1500만원의 '생활자금'을 지급한다고 홍보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보험사들은 이른바 '확정배당금'이라는 명목으로, 보험사의 예정이율과 실제금리가 차이가 날 경우 금리차 만큼의 이익을 계산해 계약자들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당시 보험보다 정기적금의 이자가 훨씬 높았기 때문에 적금을 선호하던 고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방편이었다.


1980년 당시 1년 정기적금 금리는 약 25% 정도. 이에 따라 생보사들은 실제금리(25%)에서 보험사의 예정이율(12.5%)를 뺀 나머지 이율(12.5%) 만큼을 따로 계산해 보험금 지급 때가 되면 계약자들에게 돌려준다고 광고한 것이다.

당시 생명보험사들의 광고 내용을 보면, 계약자들은 55세(또는 65세) 이후 평균 3∼4억원에 달하는 목돈을 얻을 수 있었다. 80년대 초반 일반 직장인의 월급이 10∼15만원임을 감안해 볼 때, 이 같은 보험금은 상당한 액수가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안전한 노후를 보장한다'는 생명보험사들의 대대적인 홍보에 힘입어 '백수보험' 가입자는 3년간 약 100만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82년 정부가 '6·28 금리인하 조치'를 단행하면서 실제금리는 계속해서 떨어졌다.

결국 실제금리가 애초 보험사가 정했던 예정이율(12.5%)보다 훨씬 낮게 내려가면서 생명보험사들은 가입자 당 3~4억원에 달하는 '확정배당금'지급을 거부했고, 백수보험 계약자들의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생명보험사들은 '확정배당금'은 일체 지급하지 않고 있으며, 원래 보험약관에 기재된 '생활자금' 1000만원만 10년(매년 100만원, 월 8∼9만원)에 걸쳐 지급하고 있는 상태다.

생명보험사 - 백수보험공대위의 '4가지 쟁점'은...

●[쟁점1] 실제금리가 예정이율보다 낮을 경우 '확정배당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백수보험공대위는 계약자들이 노후생활보장 차원에서 보험에 가입한 만큼 애초 생명보험사가 약속한 '확정배당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80년 당시 정기적금 이율이 25%임에도 불구하고, 계약자들이 예정이율이 12.5% 밖에 되지 않는 백수보험에 가입한 것은 생명보험사들이 거액의 '확정배당금'으로 계약자들을 유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성일(61) 백수보험공대위 총무는 "당시 계약자들은 생명보험사들이 수억원대에 이르는 확정배당금을 주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한달 월급의 30∼40%인 3∼4만원을 내면서까지 백수보험에 가입한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적금이율에도 훨씬 못 미치는 보험에 뭣하러 가입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생명보험사들은 '확정배당금'은 실제금리가 예정이율보다 높을 때만 해당되는 것이고, 지금처럼 실제금리(4% 대)가 예정이율(12.5%)보다 훨씬 낮을 경우에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생명보험협회 법무팀의 한 관계자는 "80년대 초반부터 금리가 인하됐는데, 확정배당금은 보험사의 예정이율보다 실제금리가 높을 경우에만 배당금이 나가는 것"이라며 "실제금리가 예정이율보다 낮으면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데 이럴 경우에는 보험사가 확정배당금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쟁점2] 금리변동에 따른 확정배당금 변동 가능성의 사전 공지 여부

a 80년 당시 생보사들이 나눠준 팜플릿 중 확정배당금 표시 부분. 생활자금 1500만원 외에 2억원 이상의 배당금과 5천만원의 사망보험금이 명시돼 있다.

80년 당시 생보사들이 나눠준 팜플릿 중 확정배당금 표시 부분. 생활자금 1500만원 외에 2억원 이상의 배당금과 5천만원의 사망보험금이 명시돼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생명보험사들은 또 보험안내문에 확정배당금 변동 등의 내용을 명시하고, 보험 모집인을 통해서도 같은 내용을 공지했으므로 확정배당금을 지불할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당시 일부 생명보험사가 발간한 보험안내문에는 "확정배당금은 금리변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백수보험공대위는 대부분의 계약자들이 백수보험 가입 당시 이 같은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이영기(64) 회장은 "생명보험사에서는 보험안내문에 금리변동에 따른 확정배당금 변동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넣었다지만, 보험증권이나 팜플릿에서는 그 내용을 찾아 볼 수 없다"며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그러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만약 들었다면 보험에 가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성일 총무도 "생명보험사를 대신하는 보험 모집인들은 '실적'이 중요했기 때문에 생명보험사에 불리한 내용은 알리지 않고, 확정배당금만 설명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생명보험사들은 이 같은 내용을 보험안내문에 명시했기 때문에 확정배당금을 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쟁점3] 확정배당금 변동이 발생했을 때 왜 보험가입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나

그러나 백수보험공대위는 생명보험사가 '확정배당금 변동 가능성'을 미리 가입자들에게 알렸다고 할지라도, 금리가 변동되는 시점에 가입자들에게 알려 계약의 유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성일 총무는 "금리변동 때문에 확정배당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면, 생명보험사들이 당연히 가입자들에게 알렸어야 했다"며 "하지만 거의 모든 가입자들이 이런 내용을 통보 받지 못한 채 20년 이상 기다려왔다"고 주장했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도 "실제금리가 예정이율보다 떨어져 확정배당금이 제로(0원)가 됐다면, 생명보험사에서 당연히 가입자들에게 알려야 한다"며 생명보험사들의 책임이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생명보험사들은 '금리변동'은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일인만큼 이를 일일이 알릴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당시 보험회사에서 그 정도(금리변동)까지 안내의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금리변동, 즉 실제이율이 예정이율보다 떨어졌다는 것은 (매스컴을 통해) 그때그때 마다 객관적으로 다 알고 있는데 이를 다 알려줄 수는 없는 일이고, 또 금리변동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해서 확정배당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본다"고 전했다.

●[쟁점4] 백수보험, 생명보험회사가 오히려 손해 보고 있다?

아울러 백수보험공대위는 생명보험사들이 보험가입자들의 보험료를 부동산 투자와 금융대출에 이용, 엄청난 이득을 얻었으면서도 약속된 확정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보험사들은 '백수보험'으로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반박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백수보험 가입자들에게는 현재까지도 12.5%의 예정이율을 적용하고 있다"며 "현재 금리는 4%대에 불과한데, 이들에게는 약속대로 12.5%를 적용하고 있어 생명보험사로서는 오히려 역마진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 역시 "백수보험에 대해서는 지금도 12.5%의 이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의 금리 4.2%에 비하면 약 세배 정도 높은 것"이라며 생명보험사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a 80년 동방생명이 백수보험 가입자들에게 나눠준 보험안내문 표지 복사본

80년 동방생명이 백수보험 가입자들에게 나눠준 보험안내문 표지 복사본 ⓒ 오마이뉴스 김영균

생명보험사 "확정배당금 몇 십조, 지급하면 문 닫을 판"

이처럼 생명보험사와 가입자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백수보험 확정배당금을 둘러싼 갈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8일 305명의 피해자들이 생명보험사들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보험소비자연맹' 홈페이지에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백수보험 피해자들이 함께 집단 소송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혀오고 있다.

이 때문에 백수보험공대위와 보험소비자연맹은 '1차 소송'의 추이를 봐 가면서 2차 소송에 돌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영기 회장은 "현재 2차 소송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만 해도 40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문제는 현재 남아있는 백수보험 가입자들이 무려 10만명에 이른다는 점이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남은 백수보험 가입자들은 전국에 10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수보험공대위와 보험소비자연맹측도 "최소 8∼9만명" 정도로 집계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집단 소송에 나선다면 생명보험사는 적게는 수 천억, 많게는 수 조원에 이르는 피해보상 소송에 휘말려 존립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현재 우리가 추산한 바로는 백수보험 피해자가 9만명 일 경우 피해액은 10조원, 8만명일 경우 9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생명보험사들도 이 때문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솔직히 지금 백수보험의 확정배당금을 다 준다면 몇 십조가 된다"며 "그렇게 되면 삼성생명 뿐 아니라 다른 보험회사들도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고 털어놨다.

현재 백수보험공대위는 집단 소송과 함께 대대적인 시위와 여론몰이를 병행해 생명보험사들의 '그릇된 관행'에 쐐기를 박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정성일 총무는 "보험회사들은 이제까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알리고, 고객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철저히 숨겨왔는데 이는 '악질적 사기'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언론매체 보도나 1인 시위를 통해 생명보험사들을 압박하고, 안 되면 국회나 청와대까지 쳐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2. 2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3. 3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4. 4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5. 5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