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섬에서 유배의 섬으로 떠난 여행길

[포토기행] 소가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섬 '우도'

등록 2004.04.28 17:43수정 2004.04.2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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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항선에서 바라본 성산항의 등대 ⓒ 김민수

하루를 시작하면서 바다에 나가 늘 바라보는 섬이 있습니다. 섬 속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섬은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소가 누운 형상을 닮았다는 섬, 우도는 지척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배편을 통해서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이라, 크게 마음을 먹지 않으면 쉽게 갈 수 없는 섬입니다.

변방의 섬 제주는 유배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변방의 섬 중에서도 우도는 또 다른 유배의 섬이었습니다.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만큼 그 섬에 살아가는 이들의 삶 역시 아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픔에 절망한 것이 아니라 처절한 몸부림으로 온 역사를 껴안고 살았습니다.

평일임에도 성산항에서 도항선을 타고 우도로 들어가는 길은 여행객들의 행렬로 만원을 이루었습니다. 우도에 다녀오고 나면 그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을 뺏겨 자주 가야지 하다가도 연중 행사가 돼버리거나 육지에서 손님들이 오면 관광차 들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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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봉 올라가는 길 ⓒ 김민수

하늘과 이어진 듯한 우도봉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며 그 언젠가 우도 밖의 섬 한라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를 무명의 유배자를 떠올려 봅니다. 한없이 아름답기만 했으면 좋았을 이곳 우도항에 세워져있는 해녀들의 항일기념비가 지난날 얼마나 치열한 삶, 아픈 삶들을 보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성산일출봉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그 곳에 올라서니, 섬 안의 아기자기한 삶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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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봉에서 바라본 북쪽 마을 ⓒ 김민수

푸른 마늘밭과 이제 막 누런빛을 보이기 시작하는 보리밭 사이로 삶의 보금자리들이 하나 둘 보입니다. 드문드문 있거나 옹기종기 모여있지만, 허하거나 과하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어르신들을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하지만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진지 잡수셨습니까?" 하는 인사말이 많았습니다. 그 말에는 배고팠던 시절, 하루 세 끼를 건사하기 힘든 시절의 아픔이 들어있는 것이지요.

제주에서는 "어디 감수꽈?" 하는 인사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삼별초, 일제시대, 4·3항쟁 등 역사의 격변기 속에서 누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생사를 확인할 수 있고, 가족에게 급한 일이 생기면 기별을 할 수 있으니, 어디 가는지를 묻는 말이 인사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 아픔이 배어있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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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봉 아래의 무덤들 ⓒ 김민수

제주의 무덤은 돌담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경계의 의미도 있지만 말, 소, 노루 등의 침범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바람으로부터 무덤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제주의 땅은 어디나 파기만 하면 돌이 나오니, 그 돌이 무덤이나 밭의 경계석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자석을 세우는데 동자석은 무덤이 위치한 땅의 토지신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지금은 도굴꾼들에 의해 파헤쳐져 동자석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호화스러운 주택의 정원이나 관광지에는 그 어디에선가 뽑혀왔을 동자석들이 장식품으로 버젓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무덤 둘레에는 문 같은 것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것은 망자가 드나드는 문이라 하여 '신문'이라고 합니다. 망자가 남성이면 오른쪽에, 여성이면 왼편에 '신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 무덤에는 '신문'이 없는 경우도 많고, 돌 대신 시멘트로 발라놓은 곳들도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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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보리-누렇게 익어가기 시작합니다. ⓒ 김민수

맥주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기 시작하는 들녘을 바라보니 보릿고개가 생각납니다.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이 참 어려웠던 시절, 겨울이면 삼 시 세 끼 수제비나 감자로 때워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지금도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우리 나라에도 많다고 하니 아직 보릿고개를 추억이라고 하기엔 먼 이야기 같습니다.

음식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던 시절의 검소한 밥상을 우리가 대한다면 우리 나라는 물론이요, 저 북녘의 형제자매들에게도 부족하지 않은 식탁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풍족한 가운데 버려짐으로 인해 누군가가 굶주리고 있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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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봉의 등대 ⓒ 김민수

변방의 섬, 유배의 섬이라는 조금은 어두운 생각을 하며 우도를 밟은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북한의 룡천역 참사가 있은 후 마음이 좀처럼 가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볼까 우도를 찾았으나, 보는 것마다 보이는 것마다 마냥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것이 또 한편으로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기분이 가라앉은 탓입니다.

그 놈의 이데올로기가 뭔데, 사상이 뭔데 이렇게 갈라져서 싸우고, 강대국들의 놀음판의 희생제물이 되어야 하는지 속이 상합니다. 우도봉에 있는 저 등대가 어둠을 밝히는 희망의 빛이듯, 우리에게도 저 등대 같은 빛이 다가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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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멀레동굴 근처에서 ⓒ 김민수

우도에 들어간 날은 화창했지만 바람이 세서 파도가 높았습니다. 늘 보는 파도임에도 또 다른 섬에 와있다는 생각을 하며 검멀레 동굴 근처의 파도를 보니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검멀레'는 가이드 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귀동냥해서 들었더니 '검은 모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정말 모래가 검으니 맞는 말이겠지요.

검은 모래. 얼마나 속이 탔으면 모래가 이리도 검게 그을렸을까? 유배의 섬에 온 이들의 마음을 닮아 그리 된 것은 아닐지. 이 작은 섬에 찾아온 학살의 그림자들로 인해 이렇게 검은 모래가 된 것은 아닌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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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멀레에서 바라본 우도봉 산책로 ⓒ 김민수

작년에 우도에 왔을 때만 해도 없었던 것 같은데 검멀레 동굴 쪽에서도 우도봉을 올라갈 수 있는 산책로가 생겼습니다.

저기 저 길로 가면 이어도에 갈 수 있나요?
저기 저 하늘 위에 이어도가 있나요?

변방의 섬 제주에서도 떠밀려 유배의 섬 우도에까지 온 이들에게 '이어도'는 얼마나 가고 싶은 곳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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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너른 바다를 바라보는 노년의 부부와 중년의 딸을 보니 우울했던 마음이 다소 위안이 됩니다. 노부모를 모시고 이곳 우도까지 와 준 것도 고맙고, 이렇게 다정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고맙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는 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저 느낌입니다. 홀로 여행을 하다보면 느낌이라는 본능이 더 예민해 질 때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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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빈백사의 벤치 ⓒ 김민수

또 다른 누군가도 저 벤치에 앉아 한라산 아래에 펼쳐진 오름들을 한 눈에 바라보며 유배의 섬에서 변방의 섬을 바라볼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유배의 섬도 변방의 섬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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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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