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벌써 졌건만 제비는 아니 오네

마음에 물장구 쳐놓고 떠나간 제비야

등록 2004.04.30 06:59수정 2004.04.3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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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닮아 솔강이도 윗입술이 얇다. 또한 제비초리를 가졌다. 그러니 뒤꽁무니가 말끔하길 기대하는 건 괜한 욕심이란 걸 안다. 두 갈래로 나뉘어져 숨골이 있는 골짜기를 따라 덥수룩하고 길게 머리카락이 자라 추잡해 보인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앞쪽이 아니라 내가 잘 볼 수 없는 뒤쪽이라는 점이다. 닮았으니 다행이려니 해야 한다.


난데없는 제비초리를 들고 나왔다. 까닭은 제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제비는 텃새인 참새와 굴뚝새, 뱁새, 까치나 산비둘기 따위보다 더 친근한 새였다. 다른 새가 오면 괜스레 서로 동떨어진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마음이 들어 쉬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철새지만 제비는 남다른 애정이 간다. 왜일까?

제비는 초가집이었던 우리 마음이 넉넉한 때 서까래나 그 사이 또는 문설주 위 아무 데고 자리를 잡았다. 행랑채보다는 사람이 사는 본채로 들어와 떳떳이 살았다. 작년에 왔던 제비가 한 식구라며 허가 받을 생각도 않고, 처마 밑에 식구 늘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어른께선 지저분하다고 한두 번 간지대로 쭉쭉 밀어, 집 짓는 걸 방해해보지만 그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애오라지 문간 앞에서 한 걸음만이라도 떨어져서 지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먼지와 깃털 풀풀 날리지 않도록만 해주면 고맙다.

제비는 집 지을 지푸라기, 보릿대, 나뭇가지와 마른풀, 흙을 물고 들어와 섞고 버무려서 바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비단 그 뿐일까. 사랑을 듬뿍 짜서 짓는 것이었으리라.

그들은 해가 뜨고 이슬이 걷히기 전에 마을 주변 감나무 높이에 있는 하루살이, 깔따구, 파리, 모기, 잠자리, 벌, 거미를 잡아 사람보다 일찍 아침 식사를 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집이라고 해야 지푸라기 한두 올 붙어있어 '언제 저걸 다 짓나?'는 염려도 기우에 불과했다. 웬걸? 문득 돌아와서 보면 하루도 안 되어 뼈대를 완성한다. 여름으로 치닫던 어느 날 학교에 갔다오면 끝나 있었다. 이튿날 오후 완성품을 만들어 그늘에서 단단하게 말린다.

제비의 실력이란 대단하다. 텃새는 게을러 터져서 열흘을 넘겨 안전가옥을 짓지만 그들은 긴 여행 끝자락에 쌓인 피로도 풀 여유를 부리지 않는다. 먼저 집부터 짓는 바지런함이 몸에 배어있다.


3·3·9·9 이 숫자는 또 뭐람? 삼짇날 와서 중양절에 떠나가니…. 반년하고 엿새를 위해 그리 부산을 떤단 말인가. 오자마자 집을 지어 알을 낳고, 자식을 키워서 함께 떠나는 제비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생명의 알을 낳아 스무 날 남짓 품으면 제비 새끼가 부화한다. 앙증맞은 아가리를 쪽쪽 쩍쩍 벌리고 어서 달라는 짓을 하는 새끼들에게 잘근잘근 씹어 한 손가락도 빠트리지 않고 골고루 나눠 입에다 쏘옥 밀어 넣어준다. 그러면 새끼들은 "냠냠냠" 잘도 받아먹었지.

그 아름다운 광경을 앉아서도 보고, 마룻바닥에 누워서도 보고, 마당에서 흠칫 흘겨보기도 했다. 행여 큰 새가 집 근처에 오면 다급하게 "잭잭잭"거리며, 동료를 불러 모았다. 그들은 영물이다. 새끼를 키우면서 한가로이 여름을 나는 여유를 부릴 줄 안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난 제비가 아버지와 함께 논에 가는 걸 보았다. 못자리를 만들 때 행여 집 주인장께서 심심할까 따라 나섰다가 써레질을 하면 지렁이도 잡고, 소금쟁이, 올챙이 알도 즐기면서 오래 머물러 집 지을 재료를 모은다.

이 뿐이던가.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어떤 날짐승도 감히 흉내내기 힘든 날렵한 날갯짓으로 물을 한번 차고 솟구쳐 치솟아 비상한다. 그러고 나서 한번 하늘을 찌른다.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멱 감아도 자르르 흐르는 윤기 있는 날갯죽지 사이로 물방울 몇 개 또르르 흐를 뿐 결코 적셔지지 않는다.

전깃줄 없을 땐 마당 빨랫줄에 나란히 줄서서는 "지지배배 지지배배"
일어났다고 "지지배배"
밖에 일보고 왔다고 "지지배배"
집지키는 건 걱정 말라고 "지지배배"
한가하다고 또 "지지배배"

"지지배배"론 목청을 다 틔울 수 없었던지 즐거이 재잘대는 목소리가 쉴 게 무언가. "쪽쪼로족족 쭉쭈루죽죽 짓지리짓지 찢찌리찢찌" 아무렇게나 불러도 아름다운 노랫가락이다. 따라하지 못하여 듣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이었다. 자연 음을 간직한 이 새 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아 물리지도 않는다.

그 빼어난 용모는 감탄을 자아낸다. 날렵하게 빠진 몸매에 긴 부리며, 가지런히 빗어 내린 머릿결, 목덜미는 적갈색으로 황금빛에 가깝고 앞치마는 깔끔한 흰색이다. 시원한 등줄기를 타고 내려간 검은색은 섹시하다. 초리에 이르러서는 두 갈래로 나뉘어 방향을 자유자재로 잡게 하니 머리끝에서 꽁무니까지 맵시가 수려하다.

세어보면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열 마리, 스무 마리 사이좋게 어울린다. 날 적엔 100마리, 기천 마리가 떼지어 나니 무리가 한 덩어리다. 갈 땐 서운하더라도 한두 마리 날지 않고 일시에 빠져나가니 아무런 허전함도 남지 않았다.

가족 같았던 제비는 어디로 갔을까. 빨랫줄에서 전깃줄로 옮아 간 그 많던 제비는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나저나 그해 강남으로 떠난 제비는 여태 어디서 무얼하며 지낼까.

푸르른 하늘 보면 당신이 생각난다. 그러나 온다던 제비는 소식이 없고, 오늘도 난 홀로 언덕에서 애타게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제비꽃은 피어 벌써 졌건만 제비초리 구경도 못하겠네.

너희들 온다면 만사 제치고 천리 길 달려가리라. 내 마음에 물장구 쳐놓고 왜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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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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