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트렁크 문이 열렸어요!"

건망증으로 인한 실수담 이야기(6)

등록 2004.05.01 18:32수정 2004.05.0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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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때도 없이 건망증이 발동하면 아무 대책이 없다. 볼일이 있어 외출하는 경우, 오늘 하루 처리해야 할 일이나, 사야할 물건, 만나야 할 사람 등등을 메모장에 적어서 갖고 나가면 건망증으로 인한 실수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움직이면서 수시로 벌어질 일을 모두 메모장에 적어 가지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최근의 일이다. 잠시 차를 세워놓고 볼일을 보고 나왔는데 차 트렁크 문이 열려있는 것이었다. 혹 누가 트렁크 문을 열고, 카메라며 내 소지품을 훔쳐간 것은 아닌가? 순간 당황했다. 트렁크 문을 올리고 살펴보니 다행히 물건은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속으로 누가 트렁크 문을 열고 보니 돈이 될만한 것은 없겠다 싶어 그냥 놔두고 갔나보다 생각했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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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그런데 그 후로도 고마운 도둑을 계속 만나게 되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트렁크 문이 고장 난 것이 아닌가 해서 카센터에 들려보았다. 카센터 아저씨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왜 차를 세우기하면 트렁크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것인가? 그러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그렇게 몇 달이 지난 다음 어제 아침, 왜 트렁크 문이 열리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DP점 앞에 차를 세우고 차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순간, 주차안내원이 “아저씨, 트렁크 문이 열렸어요!” 하지 않은가?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트렁크 문이 열렸다’는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주차안내원은 ‘트렁크 문이 열렸다’며 손으로 트렁크 문을 가리킨다.

그제야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차에 다가가다가 큰 대로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차에서 내린 다음 차 문을 잠근다는 것이 트렁크 문을 열었던 것이다.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더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서울 모 종합병원에서 강연을 부탁 받았다. 작은 섬에 사는 목사를 불러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강연을 마쳤더니 수고했다며 강사료를 주는 것이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하길 이 돈은 잘 꼬불쳐 두었다가 아내 몰래 비자금으로 쓰기로 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신문을 보다가 갑자기 사흘 전에 받았던 강사료의 행방이 궁금해서 지갑을 열어보았더니 빈 지갑이었다. 그날 외출할 때 들고 갔던 가방을 뒤져보아도 하얀 돈봉투는 종적을 감췄다.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옷을 뒤져보았다. 거기에도 없었다. 책상 서랍이고 책갈피고 돈봉투를 숨겼을 만한 곳은 다 찾아보았지만 아무 데도 없었다. “돈봉투가 없어졌다”고 아내에게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잃어버린 것으로 단념할 수도 없었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분명 돈봉투를 책가방 서류꽂이에 둔 것 같은데 없었다. 저녁나절, 하는 수없이 아내에게 “혹시 돈봉투 보지 못했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아내가 “당신이 어젯밤 나보고 이 해 넣으라고 주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내가 언제 당신 이 해 넣으라고 돈을 주었단 말이요?”

“당신, 정말 기억 안나요? 어젯밤 당신이 잠자리 들기 전에 차 한 잔 달라고 해서 차를 갖다 주면서, 내가 요즘 이가 아파 죽겠는데 이를 넣으려고 해도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했더니 당신이 돈 봉투를 주면서 이 돈으로 이 해 넣으라고 했잖아요. 돈이 모자라면 더 주겠다면서… 그래도 생각 안나요? 완전 치매 수준이네.”


아내 말을 듣고 나서야 생각이 난다. 그런데 내가 꼬불쳐 둔 비자금을 아내에게 선선히 내놓은 것은, 아내가 이가 아파 죽겠는데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찔려서 내놓았을 텐데 그 때 느낌은 잘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어젯밤 내 비자금을 돈봉투 채 바치고서는 그것이 생각나지 않아 하루 종일 마음 졸이면서 별별 생각을 다하며 돈봉투를 찾았으니 그 정신적 손해는 또 누구한테 청구해야 한단 말인가?

오늘 아침 외출을 하려고 차 문을 열기 직전 아내가 말한다.

“당신 허리띠 맸어요?”

“아니, 미안하지만 허리띠 좀 갖다 줘요.”

“앗 참. 핸드폰을 안 갖고 나왔네. 여보, 미안하지만 핸드폰 좀 갖다 줄래.”


늘 이런 식이다. 건망증이 심하면 치매로 간다는 말이 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데… 수시로 발동하는 건망증을 감쪽같이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럭저럭 살다가 가는 것이지만 실수가 잦다보니 조금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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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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