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박물관 살려야 박물관 정상화 가능"

[인터뷰] '폐관 위기' 여성생활사박물관 돕는 여성문화예술제 김진흥 준비위원장

등록 2004.05.03 05:23수정 2004.05.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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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예술제에 전시될 조각작품

예술제에 전시될 조각작품 ⓒ 송민성

폐관 위기에 놓인 여성생활사박물관을 살리기 위한 '2004 여성문화예술제'가 6월 30일까지 열린다. 지난 5월 1일 개막한 예술제는 여성적 가치를 재조명함으로써 여성들이 역사성과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또한 최근 확산되는 반전평화와 환경생태, 지역공동체 등의 담론이 여성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인류 평화와 생명 존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여성문화예술제준비위원회는 행사를 통해 여성생활사박물관을 돕는 기금을 마련하고 이와 더불어 무더기로 문을 닫고 있는 사립박물관과 폐교활용 문화시설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여성의 어제, 오늘, 내일 그리고 힘'이라는 부제를 단 이번 예술제는 여성생활 관련 유물과 여성을 테마로 하는 작품 전시, 천연염색과 여성생활문화 체험 및 시연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꾸며진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시조창이나 거문고 연주와 같은 토요특설무대가 마련될 예정이다.

"다가오는 미래는 여성성의 시대"

이번 예술제를 주최하는 여성문화예술준비위원회 김진흥 기획위원장을 만나 예술제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들어보았다.

- 여성문화예술제를 주최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a 여성문화예술제 김진흥 준비위원장

여성문화예술제 김진흥 준비위원장 ⓒ 송민성

"최근 확산되는 반전평화, 환경생태 등의 담론은 여성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주제를 여성들이 함께 나눠야 한다. 여성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여성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고민하기 위해 예술제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런 예술제를 어디서 열면 좋을까 생각하다 여성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면 좋겠다 싶어 여성생활사 박물관을 찾게 되었다. 게다가 여성생활사 박물관의 상황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사립박물관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어 의미가 크다."


- 사립박물관의 현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나?
"가장 큰 문제는 정부와의 소통이 시스템적으로 막혀 있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에 목을 매는 박물관의 모습이다. 박물관의 권익을 대변해야할 한국박물관협회는 어용 관변적 성격을 유지하고 있고, 정부는 이런 박물관협회를 앞세워 사립박물관 문제가 표면화되는 것을 억제하려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박물관도 정부의 박물관 정책에 대해 집단행동을 해본 일이 없다. 이제는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오히려 뜻이 일치하는 박물관끼리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박물관의 운영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이와 함께 박물관협회의 변화를 요구하고 정부에 대해 타당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실천도 병행되어야 한다.


박물관은 태생적으로 엔지오다. 공공장소이면서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비영리 활동을 해야한다는 본래 취지를 지켜야 한다.

a 여성생활사 박물관에 붙은 압류딱지

여성생활사 박물관에 붙은 압류딱지 ⓒ 송민성

당장 여성생활사 박물관만 봐도 그렇다. 폐교를 임대해주면서 문화예술인을 위한 공간이니 어쩌니 하지만 빨간딱지를 붙이지 않았는가. 교육과 문화사업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이런 장기사업을 판단하는 잣대가 결국 돈 몇 푼이다. 임대료 내느냐 안 내느냐가 유일한 기준이다.

어차피 폐교인 채로 놓아두면 관리비며 다 국가의 부담이 되지 않나. 이렇게 폐교를 빌려서 박물관으로 꾸며놓으면 재산 관리에다 가치까지 높여주는 건데도 돈 안내면 나가라는 거다. 이렇게 더하기 빼기 해서 획일적으로 잘라내는 구태의연한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생각해봐라. 폐교를 임대해서 문화공간으로 꾸미고 그렇게 해서 형성되는 작가 풀만 해도 2000명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런 곳에서 시민들도 체험학습을 하거나 한다면 얼마나 시너지 효과가 크겠는가. 여성생활사 박물관이 폐교활용의 모델이 된다면 버려진 폐교의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생색내기식 세계박물관대회는 국제적 망신일 것"

- 올 10월에 열리는 서울세계박물관대회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했는데.
"세계박물관대회야말로 박물관 정책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사립박물관의 폐관율이 15%였다. 이렇게 소프트웨어가 마모되고 고장나고 있는데 외양, 즉 하드웨어만 치장하려고 든다. 이번 대회에 이른바 세계문화귀족들이 2000명 정도 초대된다고 들었다. 한 사람당 비용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 중의 일부만 지원해도 사립박물관들의 상황은 바뀔 수 있다.

또한 대회에 참가하려고 해도 적잖은 돈을 내야한다. 참가비가 최소 300만원에서 최고 1200만원인 이 행사에 재정난이 심각한 사립박물관 중 몇 곳이나 참여할 수 있겠는가? 관람 등록비만도 일반 20만원, 학생 5만원이라니 돈 많은 사람들끼리 모여 비싼 행사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여성문화예술제는 빚잔치를 하는 거고 세계박물관대회는 돈잔치를 하겠단 거다. 세계의 문화인사들이 대회에 참가해 우리의 실상을 안다면 아마 국제적 망신을 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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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생활사박물관 폐관 위기

- 이번 예술제에 성균관도 참여한다고 들었는데 언뜻 여성적 가치와 성균관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사실 조선시대의 기득권층의 유교문화와 서민층의 유교문화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본다. 서민층의 유교문화는 이전부터 계승되어 온 전통문화와 기득권층으로부터 이입된 위정자들의 유교문화와의 충돌 속에서 새롭게 형성된 문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서민층의 유교문화는 이미 유학으로 포섭할 수 없는 문화영역인 것이다.

다만 지금 유학을 하는 이들이 유교문화를 당시 기득권층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기에 많은 부분에서 유교문화가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관혼상제다. 위정자의 입장이 아니라 서민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관혼상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여성억압적이지 않다. 관혼상제는 일종의 마을축제였다. 오히려 여성이 중심인 속에서 이웃이 서로 나누고 베풀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공동체와 협동의 의미가 컸다. 이처럼 유교문화에서도 여성성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안적 가치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또한 유교문화는 과거의 사회를 이끌었던 중심축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문화중심축이 될 여성들이 유교문화와 어떤 의미에서든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은 의미있다고 본다."

"박물관의 정상화, 가능하다고 본다"

-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선 박물관들이 관변적이고 위계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평적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는 거다. 박물관 스스로가 박물관협회에 변화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의 이민정 관장이 박물관 등록증(1종 전문박물관)을 반납하고 엔지오 여성생활사박물관으로 다른 부서에 등록하려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노력이다. 실제로 지원도 안 해주는데 굳이 박물관 등록을 할 필요가 있냐는 건데 이 관장이 총대를 맨다면 이에 동조하는 박물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생활사 박물관의 소식을 듣고 하소연을 털어놓는 박물관 운영자들이 여럿 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사립박물관의 이같은 현실을 표면화시키려 한다. 행사 중에 사립박물관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a "여성생활사 박물관은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곳"

"여성생활사 박물관은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곳" ⓒ 송민성

외국의 경우 공공재로써 역할을 수행하는 박물관과 공연장이 많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박물관과 미술관, 공연장이 외부 지원이 없이 운영되기에 대부분 영리에 치중하고 있고 어떤 경우 '예술의 상품화'라는 '미덕' 아래 대단한 돈벌이를 행하고 있다.

박물관들이 시민이 누구나 이용하고 참여할 수 있는 센터로서의 기능을 해야한다. 권위적이고 턱이 높은 박물관이 아니라 역사와 예술, 시민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박물관의 유물들이 반드시 수백년, 수천년 전의 유물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여성생활사 박물관의 강점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와서 '저건 내가 쓰던 건데' '어떻게 썼는데요'하고 묻고 설명해줄 수 있는 곳이다.

그런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립박물관을 살린다면 문화가 얼마나 다양해지고 재밌어지겠는가? 그렇게 한다면 박물관을 시민들의 것으로 만드는 것, 박물관을 박물관답게 정상화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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