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과 전인권의 무겁지만 유쾌한 퓨전 강의

3일 '도올의 전통과 사유' 수업 일환... 김운규 현대아산 사장 '까메오 출연'

등록 2004.05.03 20:54수정 2004.05.0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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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중앙대 석좌교수가 3일 오후 2시 중앙대 아트센터에서 가수 전인권씨와 함께 록 페스티벌을 벌였다.
도올 김용옥 중앙대 석좌교수가 3일 오후 2시 중앙대 아트센터에서 가수 전인권씨와 함께 록 페스티벌을 벌였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철학 강의와 록 공연이 만나 페스티벌을 이뤘다.

도올 김용옥 중앙대 석좌 교수와 그룹 '들국화' 출신의 전인권씨가 3일 오후 2시부터 2시간 동안 중앙대 아트센터에서 새로운 퓨전형식의 강연를 펼쳤다. 이날 강의는 도올의 매주 월요일 있는 '도올의 전통과 사유' 수업의 일환으로 준비됐다.


이들은 지난 17일 MBC 복도에서 처음 만났고, 당시 도올의 즉흥 제안으로 전씨가 이날 강의에 동참하게 됐다. 도올이 록의 역사, 젊음 등에 대해 학생들에게 설명하면 전씨가 특유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한 록음악으로 화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강의에는 80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특히 이날 강의에는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이 깜짝 등장해 '남북협력 사업' 현장에서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시간도 있었다.

도올 "'행진'은 20세기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
전인권 "도올과 한 무대 서 영광"


인기 강의임을 증명하듯 아트센터 대강당에는 강의 시작 1시간 전부터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강생이라는 정택수(25. 기계공학과)씨는 "도올 교수의 강의는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 모든 강의가 그럴 수 없겠지만 자유분방한 형식이 맘에 든다"며 "오늘 강의는 땀흘리며 열광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씨의 바람처럼 무대가 어두워진 뒤 곧바로 전인권씨가 등장해 "저희는 도올 김용옥과 밴드 '안싸우는 사람들'입니다"란 말과 함께 '돌고 돌고 돌고'로 열정적인 시간을 시작했다. 좌석이 모자라 계단까지 빼곡이 앉은 학생들은 거친 금속음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고 많은 이들은 따라 부르기도 했다.


노래가 끝난 뒤, 도올 수업의 특징인 반장의 "차려, 경례!"에 이어 도올이 대학, 맹자, 주자 등에서 인용해 직접 작성한 '중앙대훈' 복창이 진행된 뒤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갔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록음악을 통해 대중문화가 대학 강연에도 접목되는 현장을 마련하고 싶었다."
"도올의 강의는 국악스타일의 랩이다. 비트가 보통이 아니다.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영광이다."



한 무대에 선 두 주인공은 서로를 높이 평가했다. 특히 도올은 자유·저항으로 상징되는 록음악의 역사를 소개하며 비틀즈 음악을 "20세기 최고의 문화적 흐름"이라고 칭찬한 뒤, 전씨의 노래 '행진'을 "20세기 우리나라 최고의 음악"이라고 추켜세웠다.

도올은 비틀즈의 '이메진'(Imagine), '렛잇비'(Let it be)에 대해 "가사를 보면 '남들이 나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난 결코 홀로가 아니고 당신이 언젠가 내 꿈에 동참할 것이다, 전쟁과 평화 소유마저도 없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식인데, 특히 '나를 내버려 둬'라는 말은 노자의 무위와도 통한다"며 "어마어마한 철학을 단순한 멜로디에 담아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펼쳤다.

도올의 강의 중간중간 전씨는 '행진', '그것만이 내세상' 등 자신의 노래와 팝음악을 불렀다. 사실 이날 전씨는 제대로 된 몸 상태가 아니었다. '대상포진'(수두와 비슷한 대상포진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일어나는 수포성 피부질환)으로 바로 전날까지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지만 도올 강연에 동참하기 위해 퇴원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날 전씨의 목 상태 역시 기자가 수차례 경험했던 공연 중 최악이었다.

하지만 전씨는 26일 도올과의 두번째 만남 때 기존의 멜로디에 즉석에서 가사를 붙여 만들어졌다는 '늦지 않았습니다'란 곡을 함께 불렀고 "이런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싶다"며 배드컴퍼니의 명곡 '레디포러브'(Ready for love)을 열창하기도 했다.

"젊음은 절망적" vs "젊음은 퇴폐로 가기 위한 과정"

가수 전인권씨, 도올 김용옥 교수,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이 무대에 올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가수 전인권씨, 도올 김용옥 교수,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이 무대에 올라 얘기를 나누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날 강의 중 눈길을 끌었던 대목 중 하나가 도올의 '젊음'에 대한 해석. 도올은 하바드의 존경하는 학자의 설명이라고 전제한 뒤, "젊음은 행복하기보다 생동감(vivid)이 넘치고 결코 아름답지 않고, 다만 젊음의 추억만이 아름답다"면서 "젊음은 절망적이고 내일이 없다, 노인에게는 내일이 결정돼 있지 않나"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씨는 '젊음'을 이렇게 답했다.

"퇴폐로 가기 위한 과정이 바로 젊음이다. 기타 소리가 이빨 가는 듯한 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이빨 가는 소리도 음악으로 들릴 수도 있다."

도올이 "안주를 거부한다는 뜻으로 들으면 어떨까"라고 전씨에게 물었고, 전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철학 강의와 대화, 그리고 록음악의 만남은 2시간 동안 계속됐다. 도올은 마지막으로 "나는 콘서트나 페스티벌, 강의 등이 섞여진 장르, 문화를 개발해 교육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하면서 수업 종료를 알렸다.

강의장을 나서는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한 학생은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있고 유익했다"며 아트센터를 빠져나갔다.

한편 이날 강의에는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등장해 학생들을 놀라게 했다. 전씨 섭외를 즉흥적으로 결정했듯이 김 사장 역시 이날 아침 우연히 도올과의 전화통화에서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강의도 젊은이들 코드 맞춰 새로움 추구해야"
강의 후, 도올과 전인권이 한 말

이날 강의가 끝난 뒤, 도올과 전인권씨는 기자들과 만나 간단하게 기자회견을 가졌다. 두 당사자는 모두 이날 행사에 만족해했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이런 자리를 다시 만들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강의도 새로움 추구해야"

"내가 처음 MBC에서 함께 하자고 부탁했더니 전씨는 '자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김용옥의 사상도 사랑한다'고 말하더라. 대학이 보수화 돼 이런 이벤트가 성사되기 쉽지 않았지만 이 강의는 내가 전권을 가지고 있어 가능했다.

이런 획기적인 강의는 이미 82년 하바드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뒤 고려대에서부터 해왔다. 우리나라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가 물과 기름처럼 갈라져있었다. 나는 이를 섞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공옥진, 무당 김금자, 김덕수 사물놀이 등과 함께 했는데 고대에서 욕을 많이 먹었다.(도올은 2002년 EBS 불교철학 강좌 '도올, 인도를 만나다'의 마지막 강좌에서 강의에 재즈를 접목한 바 있다) 86년 고대를 떠났던 이유도 어느 정도 이러한 갈등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대중문화가 고급문화로 편입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고급문화가 대중문화로 오는 것은 쉽다. 오늘 강의는 20여 년 간 노력의 결정이다."

전인권 "5년만에 가슴 뜨거워지는 공연 펼쳤다"

"15년전부터 신문의 글을 보면서 (도올 선생을) 만나고 싶었다. 오늘 강의는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성이 있었다. 5년만에 처음으로 가슴 뜨거워지는 공연이었다. 이런 생각한다. 담배나 술을 직접 사듯이 CD나 테이프도 사자. 가능하면 '도올 김용옥과 안싸우는 사람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서태지가 함께 동참했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나같은 사람도 있지만 도올 선생처럼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오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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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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