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아, 이번 어린이날엔 선물이 없구나

어린이날 선물 대신 룡천의 친구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한다

등록 2004.05.03 23:14수정 2004.05.0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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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우리 딸 연경, 연하에게


오늘 드디어 지난 10여 일간의 어려운 고민(?)을 끝내고 아빠는 큰 결심을 했다. 지금 너희들에게는 눈 앞의 "어린이날 선물"이 더 중요해서 선물을 사주지 않는 아빠가 야속하고 밉겠지만 얼마 후면 아빠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정은 바로 이번 어린이날에 너희에게 선물을 사주지 않고 그 돈으로 10여 일 전 북한의 룡천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로 다친 너희들과 같은 또래 친구들에게 의약품을 보내기 위해 성금을 보내는 것이었다.

특히 연하에게 미안한 것 같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아직까지 낯설고 힘든(?) 학교 생활을 하는 너에게 처음으로 맞는 어린이날에 선물을 사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며칠 전 너희들에게 아빠의 마음을 숨기고 "어린이날 받고 싶은 선물과 그 이유를 적어라"라고 이야기를 하니 너희들은 여러 가지 색깔의 색연필로 받고 싶은 선물과 그 이유를 적어서 나에게 주었다.

인형, 장난감, 시계 등등 아빠가 생각하지도 못한 여러 가지 선물 이름과 갖고 싶은 이유를 정성껏 적었지만 아빠는 그 목록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또 가까운 할인점에 들러서 진열대에 놓여 있는 인형들과 어린아이들이라면 누구도 갖고 싶어하는 선물을 보면서 "아빠 이것 꼭 사줘야 해…"라고 말을 할 때는 겉으로는 그래, 라고 대답하면서도 속으로 TV에서 만난, 소학교에서 공부하다 참변을 당하여 눈에 고작 헝겊만 두르고 온 몸에 시커먼 화상을 입은 아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미어졌다.

내가 자식을 낳아 기르기 전이었다면 그냥 한번 보고 흘려 버릴 화면이었겠지만 자식을 둔 부모로서 그 슬픈 아이의 영상이 내 눈과 마음속 깊은 곳에 응어리처럼 매달려 있다.


그렇기에 아빠는 큰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너희들에게 말했을 것이다. 너희들이 갖고 싶은 선물의 가격이 2만원이면 1만원짜리를 사줄 것이고 남은 것은 아빠가 더 좋은데 쓸 것이라 하면서 너희들의 마음을 떠보았다. 너희들은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 그래도 돼"라는 말해 아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오늘 아침 은행에 가면서 우리 딸 연경, 연하의 이름으로만 보낼 것이 아니라 너희보다 어린,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친·외사촌들, 재현·주원·민규·민수·해솔·주하의 이름으로도 성금을 보냈다.

아빠가 장남이고 엄마도 장녀이기에 아빠와 엄마 동생들의 자식들도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하고 그들에게도 아빠는 어린이날 선물을 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선물을 포기하고 그들의 이름으로 성금을 보내게 된 것이다.

너희들과 사촌들의 이름이 찍힌 신문을 오려서 너희들에게 쥐여줄게. 지금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몇 년 후 세계의 마지막 분단국가인 우리 한반도가 통일이 되고 너희들이 북녘땅 룡천에 가서 예전에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았던 화상을 입은 채 엎드려 간신히 어깨를 들썩이며 가쁜 숨만 쉬었던 친구들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면, 2004년 어린이날 도움으로 그들의 건강이 회복되어서 만나게 된다면, 아빠는 크게 감동할 것이다.

아빠는 오늘 은행에서 입금을 하면서 조카들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카들의 이름으로는 조금 돈을 낼까, 왜 이리 돈이 많이 들지…"라는 좁은 생각과 더불어, 10년 전 총각 때만 해도 내가 챙겨줄 사람은 동생 2명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가족들이 많이 생겼구나 라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조금씩조금씩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형제가 사촌이 되고 팔촌이 되어, 우리 땅 한반도를 벗어나 세계 곳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다 내 형제가 된다는 것이 저절로 실감되었다.

그렇기에 북녘의 형제들이 단지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피를 나눈 내 형제이기에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결국은 나 자신을 돕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연경, 연하야.

북녘의 친구들이 회복되어 너희가 가던가 혹은 그들이 우리 집에 와서 너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그 때를 기다리며 올해 어린이날 선물의 꿈을 접도록 해라.

언제나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이라는 끈을 꼭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그래도 더 나아지고 행복한 것이다.

우리 딸들이 언제나 나보다 먼저 남을 사랑하는 예쁜 마음씨를 가진 사람으로 평생 살아갈 것을 믿는다.

그럼 안녕,

엄마 아빠는 너희들을 진짜 진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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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산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시절 말지를 읽고 했습니다, 올바른 언론과 비난아닌 비판의 글을 쓰고자 이렇게 가입을 신청합니다. 저는 지금껏 부산일보. 한겨레신문에 지난 5년동안 계속 독자투고등을 하여 우리 국민들이 조금 더 생각해 볼수 있는 글을 보냈고 이제 통신공간에서 올바른 우리 사회의 개혁을 위한 글을 적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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