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발 씻겨 드린 적 있나요?

[대안학교 이야기] 원경고 '효도의 날' 행사에서 세족식 가져

등록 2004.05.06 16:02수정 2004.05.0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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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경고 제 1회 효도의 날

원경고 제 1회 효도의 날 ⓒ 정일관

안타까운 가뭄이 이어지던 4월이 가고 보리밭에 보리들이 흥겹게 익어 가는 5월을 맞이했습니다.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 주변의 들판에 심어 놓은 보리들이 바람에 푸른 물결을 일렁이며 속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a 정연수 교장 선생님의 노래 <어머니 마음>

정연수 교장 선생님의 노래 <어머니 마음> ⓒ 정일관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을 맞이하는 첫날, 원경고등학교는 제1회 효도의 날 행사를 가졌습니다. 모두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원경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부모님들의 은혜를 깊이 느끼게 하고, 부모님들 역시 아이들을 맡기고 난 후 학비만 대주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학교 교육의 주체로 바로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행사입니다.

토요일이지만 학생들은 모두 학교에 남았고, 학부모님들이 한분 두분 오실 때마다 학생들은 환한 얼굴로 뛰어나가 맞이했습니다. 원경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기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두 50분의 학부모님들이 오셨습니다. 담임 선생님들과 간단하게 반별 상담 시간을 갖고 모두 강당에 모여 효도의 날 식전 행사로 학생들이 교육 활동을 담은 동영상을 상영했습니다. 2월 신입생 새내기 훈련에서부터 3월 입학식과 현장 학습, 4월의 소록도 봉사 활동과 문화 체험 활동, 그리고 한주를 여는 시간, 선택 특성화 교과, 특별 활동 등을 엮어서 보여드렸습니다.

a 감사의 편지 낭독

감사의 편지 낭독 ⓒ 정일관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오후 7시에 다시 강당에 모여 본격적인 효도의 날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행사의 시작은 정연수 교장 선생님의 노래 <어머니 마음>이 열었습니다. 2학년 조소정 학생의 피아노 반주로 교장 선생님은 애절하게 <어머니 마음>을 노래했는데, 노래 도중 울먹이는 바람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이어진 순서는 감사의 편지 낭독 시간이었습니다. 각 반별로 두 명씩 선발되어 미리 준비한 감사의 편지를 부모님들께 읽어 드렸습니다. 아이들은 그 동안 부모님들을 애 먹이고 속 썩였던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끝까지 믿어 주고 키워주신 부모님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절절하게 표현했습니다. 그 편지에 모두 눈물을 글썽이며 손수건을 적셨습니다.

a 원경고 밴드부의 작은 공연

원경고 밴드부의 작은 공연 ⓒ 정일관

이어서 박영훈 교감 선생님의 지도로 '부모님 몸 사랑하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생들은 정성스럽게 온 힘을 다하여 부모님의 손과 어깨를 안마해 드렸습니다. 안마를 해드리니 하니 분위기가 따뜻해지고 더욱 친근해졌습니다. 어색해 하던 부모님들도 차츰 몸이 풀어지는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성아 학생회장과 박은총 부회장의 사회로 학생들이 준비한 작은 음악회 공연을 가졌습니다. 원경고등학교 밴드부의 공연, 안제용 학생의 클라리넷 연주, 전교생의 <어머니 마음> 합창으로 이어졌습니다.

효도의 날 행사의 백미는 '부모님 발 씻겨 드리기'였습니다. 효도의 날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했죠. 부모님들은 의자에 둥글게 앉아 있고, 아들 딸들은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님 발 아래 앉아 부모님의 양말을 벗기고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말을 일체 하지 않고 오직 발 씻는 일에만 집중하여 정성껏 발을 만지고 씻겨드리도록 했습니다.


a 부모님 발 씻어드리기

부모님 발 씻어드리기 ⓒ 정일관

부모님 발을 누르고 만지고 씻고 수건으로 닦는 과정은 참으로 경건하고 따뜻했습니다. 눈물을 찍어 내는 부모님도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에게 느낌을 묻자,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제1회 효도의 날 행사가 끝날 때 즈음 비가 장대같이 내렸습니다. 비 한 번 내릴 때마다 보리는 몰라 보게 쑥쑥 자랍니다. 이번 행사로 또 원경고등학교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보리가 웃자라듯, 원경고등학교와 우리 아이들이 함께 쑥쑥 커겠지요. 가정의 달 5월이 저희들에게 더욱 푸르러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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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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