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아침상과 꽃을 받는 호주 엄마들

[현지보고] 여왕도 부럽지 않은 하루 '어머니날'

등록 2004.05.07 21:01수정 2004.05.0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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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말 행복해요." 10년 전에 찍은 사이먼 타운잰드 가족사진.

"정말 행복해요." 10년 전에 찍은 사이먼 타운잰드 가족사진. ⓒ 사이먼 타운잰드

호주의 5월은 만추(晩秋)의 계절이다. 아침의 찬 공기 때문에 침대 밖으로 벗어나기 싫은 둘째 일요일 아침, 호주의 엄마들은 자고싶은 만큼 늦잠을 자도 된다.

그날 하루만은 자질구레한 엄마와 아내의 임무에서 100% 해방되는 '어머니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특권은 딱 하루만 허용된다.

아침 먹는 동안 신문 읽어 주는 아빠

호주의 어머니날은 아주 조용하게 시작된다. 엄마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가족 모두가 까치발로 걸어다니기 때문이다. 엄마를 제외한 모든 식구들은 일단 부엌으로 모인다. 엄마가 평소에 가장 즐겨먹는 메뉴를 정해서 아침상을 차리기 위해서다.

음식 맛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평소에 아빠도 요리 솜씨를 갈고닦는 데다가 호주 학교에선 사내 아이들까지 요리는 기본이고 바느질까지 가르치기 때문이다.

요리가 끝났다고 아침상을 차리는 일이 마무리됐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 뒤뜰에서 꺾어온 수선화나 튤립 한 송이로 쟁반을 예쁘게 장식해서 엄마를 최대한 감동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평소에 즐겨 읽는 신문 섹션을 펼쳐들면 아침 식사 준비는 일단 완료된다. 축하 카드와 선물은 두말 할 나위가 없고.

침대에서 상체만 세운 채 엄마가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자녀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한다. 아빠는 또한 신문 기사를 읽어 주어 엄마의 식사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아침 식사의 하이라이트는 그 다음이다. 우선 아이들은 침실 벽에 미리 붙여 놓은 하얀 벽지에 빨간색 크레용으로 'I Love You, Mom'이라고 쓴다. 그 동안 엄마는 아침상을 물리고 자신을 위해 마련된 선물 꾸러미를 뜯어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가족들과 행복한 포옹을 한다. 이 정도면 여왕도 부럽지 않은 고귀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얘기는 동화책 속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에핑 일대의 지역 신문 < TWT >에 소개된 사이먼 타운잰드(36) 가족을 직접 만나서 어머니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시드니 서북부의 에핑 지역에 사는 사이먼 타운잰드 가족. 아내의 이름은 애나(38), 아들 로브(12)와 딸 버린다(9)까지 네 식구가 엮어낸 '2003년 어머니날 아침' 스토리는 호주의 중산층 가정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아버지날'을 따로 지내는 호주

a "여왕이 나보다 더 행복할까?" 어머니날의 뒤뜰 만찬.

"여왕이 나보다 더 행복할까?" 어머니날의 뒤뜰 만찬. ⓒ 오지미디어서비스

한국에서는 어버이날을 통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대접해 드리지만 호주는 아버지날을 따로 정해서 지킨다. 매년 9월 첫째 일요일이 바로 아버지날이다.

아버지날은 어머니날처럼 침대에서 아침 식사를 받지는 않지만 선물과 함께 붉은 장미를 받는 전통이 있으며, 아내나 자녀들의 방해 없이 하루를 느긋하게 지낼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특히 친구들끼리 모여서 뒤뜰에서 하는 바비큐는 호주 특유의 아버지날 특별 메뉴다.

뒤뜰의 바비큐는 아버지날에 주로 하는 만찬이었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가정이 어머니날 만찬을 식당에서 하기 때문에 식당 예약을 할 수가 없어서 어머니날에도 바비큐로 대신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그러나 어머니날 만찬이 식당이든 뒤뜰이든 상관없이 엄마는 여전히 여왕 못지 않은 대우를 받는다. 붉은 포도주가 담긴 포도주 잔을 들고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엄마는 그런 날이 딱 하루뿐이라는 사실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호주 어머니날 기사에 사용할 사진 한장을 부탁했더니 사이먼 타운잰드 부부는 10년 전의 사진 한 장을 들고 나왔다. 사진을 건네 주며 부인 애나가 말했다.

"목수인 남편이 양복을 입고 찍은 사진은 결혼식 사진말고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날이 어머니날이었거든요. 사이먼은 아침부터 밤까지 나를 신데렐라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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