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무래도 상풍증인 것 같아요. 두통과 발열이 심하시면 인삼패독산(人蔘敗毒散)을 드시고, 사지통증이 심할 때는 구미강활탕(九味羌活湯)을 드시는 게 좋, 좋을 것 같아요.”
“아, 아니오! 소, 소생은 어디가 아픈 게 아니라… 아니라… 아무튼 마음쓰지 않아도…”
“그, 그래요? 그, 그럼…”
참으로 어색한 분위기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둘의 뇌리로는 수많은 상념이 스치고 지났다. 대략 일다경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이회옥이었다.
“그나저나 저기 가면 무림천자성 전역이 보인다고 하셨소?”
“그, 그럼요. 저기서 보면 이 당주님의 처소도 보이는… 어머!”
어색한 침묵이 깨진 것이 반갑다는 듯 얼른 대답하려던 빙화는 또 다시 뒷말을 잇지 못하였다.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른 눈치챈 이회옥은 짐짓 못들은 척하였다.
“흐음! 그렇지 않아도 무림천자성의 전체 배치가 어떤지 궁금했는데 볼 수 있겠소이다.”
“그, 그래요. 그, 그럼 머, 먼저 올라가세요.”
“흐음! 알겠소이다.”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리자 빙화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 순간 그녀의 심장은 먼 길을 단숨에 달렸을 때처럼 펄떡이고 있었다. 그것은 이회옥도 다를 바 없었다.
최근 들어 부쩍 다정하게 구는 빙화 때문에 가끔 곤란할 때가 있었다. 진짜 자신에게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장난을 하려는 건지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잘 되면 크게 한턱내라며 너스레를 떨 때마다 마음 속으로는 부담스러웠다. 만일 장난하려는 건데 이를 진짜로 알고 대응하면 자칫 치도곤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빙화가 누구이던가!
그녀의 차가운 성품은 이미 만천하에 소문이 나있다. 어찌나 차가운지 가까이 다가서기도 전에 냉기가 느껴진다 하여 그녀가 없을 때는 빙마녀(氷魔女)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난다긴다하는 무림천자성의 영재들도 그녀를 넘볼 생각조차 품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하여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방금 전의 접촉으로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음! 대체 나의 무엇을 보고 이러는 거지?’
앞서가는 이회옥의 뇌리로는 빙화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질만한 것이 대체 무엇이 있을까가 스치고 있었다.
생긴 것으로 따지면 못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준수하다고도 할 수 없다. 선량하게 보이기는 하겠지만 중원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키가 크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겨우 평균을 넘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온몸이 근육으로 뭉쳐져 있기는 하지만 벌거벗은 몸을 보여준 적이 없으니 그것도 아닐 것이다.
학문이야 내놓고 이야기해 본 적이 없으니 어느 정도의 학식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무공은 단전이 파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아예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유서 깊거나, 명망 높은 가문 출신도 아니다. 따라서 후광이 될만한 아무런 배경도 없다. 또 많은 재물을 지닌 부호도 아니다.
단 하나 내세울만한 것이 있다면 말 조련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뿐이다. 헌데 이 세상에 어떤 여인이 말을 잘 다룬다는 이유로 연정을 품겠는가! 그렇기에 이회옥은 머리가 아파졌다.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여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같은 순간 두 볼이 붉힌 채 뒤따르는 빙화의 머릿속 역시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 참, 어떻게 하지? 부끄러워 죽겠네. 어휴, 아깐 왜 그랬지? 내가 미쳤나봐. 으이그, 조금만 주의를 기울일 것을… 어휴, 공자님은 뭐라 생각하실까? 아냐, 아까 그랬을 때 공자님도 순간적으로 굳었었어. 그건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놀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몰라 몰라.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몰라. 아냐, 그건 아니지. 그건 아닐 거야. 아까 그랬을 때…“
수없이 많은 상념은 빙화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하였다. 하여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스스로도 모를 정도가 되어 버렸다.
‘으와! 정말 크다. 이 정도일 줄이야… 흠! 저기가 기린각인가? 으음! 저게 내원과 외원을 구분 짓는 담장이겠군… 으음!’
속명루에 오른 이회옥은 잠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생각보다 무림천자성의 규모가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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