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 바다와 관음의 자비가 어우러진 도량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51)-금오산 향일암

등록 2004.05.11 10:01수정 2004.05.1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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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일출은 어둠을 걷어내고 희망을 가져다준다. 언제고 해를 바라보고 있을 향일암서 맞이하는 일출은 또 다른 기쁨을 준다. 향일암서 해를 맞으니 자신이 향일암인 듯 하다.

일출은 어둠을 걷어내고 희망을 가져다준다. 언제고 해를 바라보고 있을 향일암서 맞이하는 일출은 또 다른 기쁨을 준다. 향일암서 해를 맞으니 자신이 향일암인 듯 하다. ⓒ 임윤수

<오마이뉴스>에 '산사기행'을 연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어느 절이 가장 좋으냐'고 질문을 한다. 참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개인별 취향에 따라 좋아할 절도 다를테니 선뜻 특정한 절을 소개해 주기 곤란해 얼버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긴 이래서 좋고 저긴 저래서 좋고, 좋은 것만을 골라 말하면 다 좋은 곳이 되고 좀 모자란 것만을 골라 말하면 다 모자란 곳이 되니 부득불 답을 해야 된다면 '이 때쯤은 여기가 좋다'라는 전제를 달고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곳을 알려준다.


a 가파른 계단길에 <金鰲山向日庵>이란 편액을 달고 있는 일주문이 보인다.

가파른 계단길에 <金鰲山向日庵>이란 편액을 달고 있는 일주문이 보인다. ⓒ 임윤수

요즘 그런 질문 '어디가 좋으냐'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여수 금오산 향일암을 가보라고 말한다. 농익은 봄날 조용한 절 집에서 맞게 되는 아침 그 자체도 좋지만 풋풋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떠오르는 아침해를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며 축복이다. 그런 행운과 축복을 받길 바라며 향일암을 소개한다.

향일암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있는 임해가람이다. 17번 국도를 따라 20년 전 준공된 돌산대교를 건너면 우리 나라 섬 중 7째로 큰 돌산섬에 도착한다. 돌산섬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 끝까지 달려가면 향일암이 있는 임포마을에 이른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향일암 일주문에 이르게 된다.

a 일출 전 이른 시간에도 대웅전엔 기도 올리는 불자들로 가득하다. 불자들 가슴엔 이미 일출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출 전 이른 시간에도 대웅전엔 기도 올리는 불자들로 가득하다. 불자들 가슴엔 이미 일출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 임윤수

향일암이 있는 기암괴석의 산은 거북형상을 하고 있는 '금오산'이다. 산세가 다도해의 망망대해를 향한 거북의 형상을 닮았기에 쇠금(金)자, 큰바다거북 오(鰲)자를 쓰는 금오산(金鰲山)이란 산명을 가졌으며 그 거북의 몸체쯤에 향일암이 자리잡고 있다.

원효대사가 659년에 원통암(圓通庵)이란 절로 창건하였고 그 후 1715년 인묵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암자를 옮기며 '해를 바라본다'는 뜻의 '향일암(向日庵)이라고 절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a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돌거북들이 난간에 나란하다. 금오산 돌들은 거북등무늬처럼 각지고 줄이 나있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돌거북들이 난간에 나란하다. 금오산 돌들은 거북등무늬처럼 각지고 줄이 나있다. ⓒ 임윤수

향일암으로 들어가는 길은 일주문을 통하지 않고 조금 질러가는 계단길도 있지만 이왕 절을 찾을 거면 조금 돌더라도 일주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 굳이 계단으로 오르고 싶은 사람은 한번 계단의 숫자를 세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계단은 291개로 이루어져 있다. 한숨에 내딛기엔 벅찬 오르막이니 오르는 중간에 한두 번 뒤돌아보며 발아래 펼쳐지는 시원한 바다를 한눈에 넣어 보는 것이 좋다.


어느 길로 오르든 살짝 어깨를 틀어야 지날 수 있을 틈만 남겨두고 기대어 서있는 두 개의 바위가 만들고 있는 독특한 길목을 지나야 한다. 여기서 몇 걸음 더 들어가면 다시 바위틈 사이로 계단이 나온다. 이 급경사의 계단을 올라서면 창건 이후 불철주야 해를 맞이하고 있는 향일암에 들어서게 된다.

a 향일암의 또 다른 이름인 <靈龜庵>이란 편액을 달고 있는 전각이 대웅전 오른쪽에 있다. 관세음보살을 태운 신령스런 거북이 안좌하고 있다는 뜻인가 보다.

향일암의 또 다른 이름인 <靈龜庵>이란 편액을 달고 있는 전각이 대웅전 오른쪽에 있다. 관세음보살을 태운 신령스런 거북이 안좌하고 있다는 뜻인가 보다. ⓒ 임윤수

해를 맞기 위해 들어선 절이니 만큼 그동안 찬란한 일출도 수없이 보았겠지만 날씨 탓에 구름 탓에 밤새 염원하던 햇살을 보지 못한 날도 부지기수였으리라. 그러나 항심으로 일출을 기다려줬고 앞으로도 기다려줄 일편단심의 승속이다.


향일암은 동해 낙산사의 홍련암, 남해 금산의 보리암 그리고 서해 강화도 보문암과 함께 우리 나라 4대 관음기도 도량 중 한 곳이다. 천상천하 어느 곳 누구라도 어려움에 처해 찾게되면 언제라도 보살핌을 준다는 부처님이 관세음보살이다. 풍랑 많고 위험 많은 바닷가 절이다보니 어민들이 마음 의지하고 매달릴 수 있는 구원의 대상으로 관음보살을 많이 찾아 관음도량이 된 게 아닌지 모르겠다.

a 대웅전을 끼고 뒤로 돌아가면 대낮에도 전등을 밝혀야 하는 바위굴이 나온다. 이 굴을 지나야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관음전과 관세음보살상을 참배할 수 있다.

대웅전을 끼고 뒤로 돌아가면 대낮에도 전등을 밝혀야 하는 바위굴이 나온다. 이 굴을 지나야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관음전과 관세음보살상을 참배할 수 있다. ⓒ 임윤수

기암의 벼랑에 둥지처럼 들어선 절이다보니 마당은 넓지 않지만 일출을 보려는 관광객들과 새벽기도를 올리려는 불자들로 어느 대찰 못지 않게 북적대는 아침을 맞는 곳이 향일암이다. 대웅전 앞마당은 물론 경내 곳곳 발붙일 수 있는 곳이면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a 깎아지른 벼랑에 관음전이 있다. 뒤에 보이는 바위 뒤가 금오산 정상이다.

깎아지른 벼랑에 관음전이 있다. 뒤에 보이는 바위 뒤가 금오산 정상이다. ⓒ 임윤수

향일암을 한때는 '영구암(靈龜庵)'이라고도 하였다는데 그 흔적을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전각에 걸려있는 편액에서 볼 수 있다. 대웅전 앞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하게 솟아오른 봉우리는 마치 거북이가 물이라도 먹으려는 듯 주둥이를 바다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목줄과 구갑(龜甲)처럼 둥그스레한 곡선을 따르다 보면 향일암이 선 곳이 거북의 몸체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금오산 모든 바위는 표면이 마치 거북이 등처럼 각이 지고 줄이 새겨져 있어 어떤 형태로든 거북이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거북이란 십장생 중 하나며 전설이나 설화에 등장하는 영험한 동물이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향일암 마당엔 일년 내내 일출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기대감과 불심을 가다듬고 서원하는 불자들의 간절한 마음이 풍랑처럼 넘실대고 있다. 일출 시간이 되니 돌난간에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 머리가 바다를 배경으로 하나 하나의 불두를 이루니 또 다른 볼거리다. 뒤쪽 난간에는 조그마한 자연석 거북상이 해를 향해 일렬로 늘어서 있다. 거북 등에는 어느 새 누군가가 염원하며 올렸을 동전이 탑을 이루고 있다.

대웅전을 끼고 뒤로 돌아가면 대낮에도 전등을 밝혀두어야 하는 어두운 바위굴이 나온다. 이 굴을 지나야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관음전과 관음보살상에 갈 수 있다. 이곳에서 보는 바다 풍경은 평온하고 아름다워 한 폭의 풍경화 같다.

a 망망대해 남해를 자애한 눈빛으로 바라보고계신 관세음보살부처님이다. 예전에는 뱃사람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바닷가 관세음보살부처님이었겠지만 지금은 전국 방방곡곡 불자들이 찾는 전국적 관세음보살부처님이다.

망망대해 남해를 자애한 눈빛으로 바라보고계신 관세음보살부처님이다. 예전에는 뱃사람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바닷가 관세음보살부처님이었겠지만 지금은 전국 방방곡곡 불자들이 찾는 전국적 관세음보살부처님이다. ⓒ 임윤수

멀리 대·소 횡간도가 놓여 있고 세존도와 이름을 다 알지 못하는 다도해의 많은 섬들도 남해가 펼친 하늘빛 캔버스에 멋지게 펼쳐져 있다. 띄엄띄엄 불 밝힌 고깃배들, 서있는 것은 서 있는 대로, 흰색 꼬리를 달고 달리는 배들은 그들 나름대로 생동감 있는 풍경화를 연출한다. 어디 그뿐이랴 딛고선 돌산섬의 연녹색 나무와 해안절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환상의 앙상블을 이룬다.

a 금오산 한 끝은 마치 거북이가 물이라도 먹기 위해 머리를 바다로 향하고 있는 형상이다.

금오산 한 끝은 마치 거북이가 물이라도 먹기 위해 머리를 바다로 향하고 있는 형상이다. ⓒ 임윤수

향일암을 품고 있는 금오산 정상은 향일암 경내에서 20분도 안 걸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향일암을 다녀온 사람들 중 정상에 오른 사람은 드물다. 향일암 일대의 절경을 제대로 즐기려면 다른 시간을 쪼개서라도 꼭 한번 올라보라고 권하고 싶다. 일주문을 향해 내려가는 길, 콘크리트 포장도로 중간, 화장실이 선 곳 맞은편 축대 옆으로 '등산로'라 쓰인 팻말이 붙어 있는 곳이 정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로 접어들어 코에 닿을 듯한 급비탈길을 5분쯤 오르면 곧 시야가 툭 트이는 바위 위에 서게 된다.

향일암에서 미처 보지 못한 남해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이곳에서 충분히 다 볼 수 있다. 향일암에서 미쳐 떨구지 못한 속세의 미련이 있고 채우지 못한 바람이 있다면 이곳에서 충분히 떨어뜨릴 수도 채울 수도 있다.

a 빠트리지 말고 금오산 정상엘 올라보라고 권하고 싶다. 남해의 진면목을 한 눈에 가슴에 담을 수 있는 좋은 곳이다.

빠트리지 말고 금오산 정상엘 올라보라고 권하고 싶다. 남해의 진면목을 한 눈에 가슴에 담을 수 있는 좋은 곳이다. ⓒ 임윤수

요즘 같은 때, 농익은 봄날 아침을 맞기에 딱 좋은 곳으로 돌산섬 향일암을 기꺼이 소개하고 싶다. 일출쯤 못 보면 어떠랴. 마음놓고 마음 담아 올 하늘빛 바다와 관음의 도량이 거기에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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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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