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만원이 주는 행복

등록 2004.05.18 08:06수정 2004.05.1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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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누이와 나는 6살 차이가 난다. 기억에는 없지만 주위에서 들은 얘기를 종합해 볼 때 어렸을 적 나는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큰누이가 나를 돌볼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너 돌보느라 내가 학교도 1년 늦게 갔다"는 얘기를 종종 듣고는 한다.


6살 차이가 나는 큰누이와 6학년과 1학년으로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으니 과히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자신이 업어 키웠던 '정' 때문이었을까? 큰누이는 유난히 내게 관대했다.

그랬던 '코흘리개'가 세월이 흘러 어느 새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는데, 생김새부터 나를 똑 빼닮은 큰아이를 누이는 끔찍이 예뻐했다. 이유는 오로지 '자신이 업어 키운 동생을 닮았다는 것' 한 가지 뿐이라고 그저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a 누이가 사준 인형. 큰애는 벌써 7~8년째 이 인형을 끌어안고 잠이 든다.

누이가 사준 인형. 큰애는 벌써 7~8년째 이 인형을 끌어안고 잠이 든다. ⓒ 이양훈


어린이 날을 앞둔 지난 5월 4일, 큰누이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통화는 대단히 간결했다.

"야! 네 통장으로 삼만원 보냈으니까 애들 사고 싶다는 것 사 줘. 절대로 너희들이 써 버리면 안된다."

알았다고 가볍게 웃으며 전화를 끊기는 했으나 이후 내내 가슴이 '찡'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누이는 딸만 둘이다. 유난히 제 엄마를 볶아 우리 부부에게 미움을 받는 큰 애가 중학교에 다닌다. 이미 어린이가 아니건만 '어린이 날'이라는 핑계로 또 얼마나 제 엄마를 볶았을까? 딸과 부대끼면서 문득 우리 아이 생각이 났을까?

아니다! 큰 누이는 늘 '그 녀석'을 생각해 왔을 것이고 '어린이 날'이라는 기회로 자연스럽게 마음을 전했을 것이다. 삼만원은 그렇게 자신이 업어 키웠던 동생과 그 동생을 꼭 빼닮은 조카에 대한 측정키 어려운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 날, 집사람과 나는 큰누이의 전화 한 통화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부모가 되었다.

a 삼만원으로 산 아이들 선물, 팽이.

삼만원으로 산 아이들 선물, 팽이. ⓒ 이양훈


5월 8일, 어버이날에 우리 가족은 지방에 계신 어머니께 다녀왔다. 어머니께 손주들 맛있는 것 많이 사 주시라고 미리 준비한 용돈을 드렸는데 이번에는 그것과는 별도로 또 하나의 봉투를 준비했다. 어머니을 모시고 계신 둘째 형수께도 따로 금일봉(?)을 준비한 것이다. 맏며느리의 역할을 다 하고 계신 둘째 형수에 대한 자그마한 마음의 보답이며 큰누이가 보여준 조카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배우고 배운 것을 그대로 행하는 '보통' 사람들의 아름다운 '행복 주기'이다.

나는 믿는다. 오늘, 삼만원이 우리 가족에게 주었던 이 가슴 '찡'한 '행복한 느낌'은 이후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활짝 웃으며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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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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