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선 담긴 선생님의 '몰래카메라'

카메라 든 선생님, 대전 청란여중 권선술 교사

등록 2004.05.12 08:46수정 2004.05.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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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전 청란여중 권선술 교사

대전 청란여중 권선술 교사 ⓒ 권윤영


대전 청란여중에는 몰래카메라(?)가 성행 중이다. 수업시간의 풍경, 쉬는 시간이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학생들, 소풍가는 날의 설렘, 등교시간 학생들의 왁자지껄 수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동영상으로 담아내는 사람이 있다. 시시때때로 카메라를 들고 촬영에 나서는 그의 모습은 방송국 촬영감독을 연상케 한다.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언제, 어디서든 촬영에 나설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답니다. 불현듯 들이닥쳐 시험 시간, 쉬는 시간, 매점의 풍경을 담기도 합니다. 몰래 카메라가 은근히 재미있다니까요.”

권선술(49) 청란여중 교사는 ‘카메라 든 선생님’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선생님들, 학생들 할 것 없이 언제든 그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두들 멋쩍어하고 어색해 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레 카메라를 대할 줄 안다. 카메라 앞에서도 학교장은 자연스레 직무를 보고, 아이들은 시험을 보거나 맛있게 밥을 먹는다. 학교 구성원 모두 권 교사의 카메라 앞에서는 당당한 주인공.

“미디어 세대이다 보니 본인들의 모습이 나올 때 즐거워하고 집중력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학습효과를 나타내더군요. 자신들의 학교생활을 담은 동영상을 통해 소속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요.”

a 카메라에 담은 학생들의 자는 모습.

카메라에 담은 학생들의 자는 모습. ⓒ 권윤영

a 수업시간이라고 예외는 없다. 시시각각 촬영 돌입!

수업시간이라고 예외는 없다. 시시각각 촬영 돌입! ⓒ 권윤영



















그가 카메라 취미를 갖게 된 것은 지난 84년부터다. 단순한 취미였던 카메라가 직업처럼 변한 것은 지난해 학교 자체적으로 매주 월요일 ‘5분 명상’의 시간을 갖는데, 이를 시각적으로 활용해 보자고 제안하면서부터다.

학생들의 일상생활, 봄에 곱게 핀 유채꽃 등 그가 직접 촬영한 자료화면이 방송반 아이들의 원고와 합해져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촬영뿐만 아니라 자료 화면을 편집하고 음악과 자막을 넣는 것도 그의 몫이다.

전에는 편집방법을 익히지 못해 외주제작을 의뢰했지만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기계적인 편집만 해왔다. 이에 그는 방학을 이용, 영상 직무 연수를 받고 기초를 배웠다. 이후 권 교사는 직접 편집을 하면서부터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예술제 때는 아이들의 시를 영상으로 꾸며서 보여주거나 학교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큰 호응을 얻은 것은 선생님들이 출연한 뮤직비디오. 선생님들도 선뜻 주연을 맡아줬고 선생님들의 색다른 모습에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예술제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행사 곳곳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가 상영해주기도 한다.

a 소풍, 체육대회, 예술제 등 학교 행사가 있는 날이면 그는 더욱 분주하다.

소풍, 체육대회, 예술제 등 학교 행사가 있는 날이면 그는 더욱 분주하다. ⓒ 권윤영

“사진이 주는 정적인 이미지도 좋지만, 동영상은 좀 더 구체적인 기억으로 떠오르게 해요. 그 당시에는 힘들었어도 화면에서 볼 때는 원래의 기억보다 아름다워지고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효과가 있죠. 화면과 음악을 연결했을 때 색다르게 얻어지는 그 느낌도 저는 참 좋습니다.”

권 교사는 지난해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동안 수업하는 모습이나 학교 행사를 담은 동영상을 CD로 제작해 졸업선물로 준 것. 방학 때 틈틈이 나와 편집을 하고, 하나하나 정성껏 라벨을 붙였다.

“방학 때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할 수 있는 일인 걸요. 저는 학기 중에도 여유가 없어요. 수업하고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촬영하거나 편집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죠. 5분짜리 정성껏 편집하려면 3~4시간 정도가 듭니다.”

지난해부터 방송반 아이들에게 영상을 가르치고 있지만 중학생들도 계발활동이 쉽지가 않아 아쉬움이 많다. 스스로 기획하고 촬영하면서 성취감을 누려보기를 바라는데 다른 활동으로 인해 아이들이 바쁘기 때문.

“뮤직비디오나 극영화 등 아이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녹음실, 스튜디오가 따로 없지만 기자재 없이도 아이들의 열의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거든요.”

결국 그가 아이들한테 전달하고 싶은 것은 ‘카메라는 렌즈가 아니라 의도적인 눈이라는 것.’ 어떤 눈으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주제가 결정되듯이 적어도 그에게 있어 카메라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카메라를 든 사람의 시선이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참으로 따뜻하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거나 조용하고 소외된 아이들도 그의 카메라 앞에선 주인공이다.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도 학급 구성원 중의 하나이고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는 실제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이 영상물을 보면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을 지켜봤다.

a 이런 카메라 가방 보셨어요? 권 교사는 배낭 안 상자에 카메라를 넣어 다닌다.

이런 카메라 가방 보셨어요? 권 교사는 배낭 안 상자에 카메라를 넣어 다닌다. ⓒ 권윤영

언젠가는 소외당하는 학생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을 카메라에 집중적으로 담아내고 싶다고 한다. 단순히 단편적인 부분만을 카메라 안에 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다차원적인 시각으로 말이다.

“소위 문제아였던 한 학생이 장기간 무단결석을 했었어요. 1년간 찍어놨던 영상물을 그 학생이 나오는 것으로 골라서 편집한 후 동생을 통해 전달했습니다. 내가 너한테 관심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학교에서는 네가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때문이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며칠 후 학교에 나온 그 아이를 봤고 무사히 졸업까지 마쳤습니다.”

그의 교육관은 단순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면 자신 역시 좋다는 것. 수업을 잘하는 것도 교사의 도리지만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즐겁게 만드는 것도 교사의 도리라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한테 계속해서 필요한 교사로 남고 싶다”는 권선술 교사. 그의 몰래 카메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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