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에 흰 고무신, 여전하신가요?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 거부한 나의 스승 박재동 화백

등록 2004.05.13 03:41수정 2004.05.1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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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등학교 시절


1983년은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일대 변혁기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교복자율화와 두발자율화가 실시된 해이기 때문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자율화 세대의 선봉이 되어 제법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평상복을 입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외형적인 자율화와는 달리 여전히 학교는 엄숙주의와 각종 규율로 우리를 옭아매고,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호시탐탐 감시하고 있었다. 특히 내가 다닌 학교는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군인 자녀들만 다니는 특수한 학교였기 때문에 규율이 다소 엄격했다.

그러한 엄격한 규율 속에 그나마 학교 가는 것이 기다려지고 즐거웠던 것은 우리 학교가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남녀공학이었기 때문이요, 괴짜 미술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이었노라고 주저 없이 말하련다.

괴짜 미술선생님을 만나다

5·18광주민주항쟁에 이어 전두환 군사정부가 들어서던 80년대 초반 고등학생이 된 나는 사실 크게 사회적 억압을 느끼지 못한 나이였다. 새로운 고등학교와 새 친구들, 게다가 여학생들이 도란거리며 연못가에 앉아 있는 모습에서 오직 설렘과 낭만을 느낄 뿐이었다.


미술시간은 두 시간이 연달아 배정돼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고작 한 시간밖에 없던 미술시간이 두 시간으로 늘었고 게다가 연달아 있었으니 횡재한 기분이었다. 주입식 암기 위주의 교육이 전부였던 당시에 숨통 트이는 예체능 시간이 기다려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3월 초 어느 날 첫 미술시간.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편한 옷차림에 머리칼은 뒷목을 덮고 남을 정도로 길었고, 웃을 때마다 들쭉날쭉 제멋대로 생긴(?) 치아가 인상적이었다. 첫 수업은 대개 그렇듯이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를 알기 위한 '호구 조사' 시간으로 채워졌다.


다른 선배들로부터 이미 '미술 선생님은 여름이면 반바지에 흰 고무신 차림으로 변한다'는 말을 들은 터라, 아이들은 선생님의 괴짜 행각이 비교적 오래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구 조사 시간, 우리들은 선생님의 고등학교 시절에 맞춰 집중적으로 질문을 했다.

"청자담배 한 보루 사들고 경주로 갔지"

선생님은 첫 대입에 실패하고 재수를 했다고 하셨다. 재수시절 마음이 심란할 때면 친한 친구들과 경주 불국사 같은 곳으로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이때 밥은 굶어도 청자 담배 한 보루는 빠트리지 않는 필수품이었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그래서인지 들쭉날쭉한 이빨 사이에 니코틴 찌꺼기가 끼어 있는 듯했다. 이밖에도 자갈치 시장 이야기 등 선생님의 학창시절 '모험담'과 '무용담'을 듣고 있자니, 우리는 어느새 선생님과 동년배가 된 듯한 기분으로 추억의 그 시간 속을 함께 헤매었다.

재수 끝에 선생님은 소위 명문대 서양회화과에 합격했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놀 거 다 놀고도 합격했다"고 하니 당시 나는 선생님이 미술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후일 사실로 입증되리라고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하나됨을 위해 권위를 버리다

만물을 지탱하고 있는 땅(土)의 냄새를 맡는(嗅) 학교 축제인 '토후제(土嗅際)' 때 일이다. 여학생들과 포크댄스, 각 반별 걸개그림 대항, 체육경기 등으로 채워진 축제에서 선생님이 보여 준 퍼포먼스는 영원히 잊지 못할 일이었다.

축제가 무르익을 무렵 선생님은 어디선가 밀짚모자를 하나 구해 쓰고 기타를 둘러메고 나타났다. 그러고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며 교정을 휘젓고 다녔다. 이에 학생 몇몇이 자기 모자를 벗어들고 선생님 앞에서 '공연비'를 걷고 다니는 모습이란….

그때 선생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 보였다. 입시 지옥에 내몰린 우리들을 위해 축제 때만이라도 한껏 웃을 수 있도록 몸을 사리지 않았던 선생님의 모습은 내 한 쪽 뇌 속에 아직까지도 각인돼 있다.

선생님의 이 같은 기행은 사실 오래 전부터 유명했다. 여름이면 반바지에 흰 고무신을 신고 자그만 연못인 유록지(柳綠池)에서 명상을 하는 모습, 짓궂은 학생들에게 내몰려 물에 빠져도 특유의 너털웃음과 함께 복수를 자행(?)하던 모습 등….

미술을 통해 자율과 책임 깨우쳐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본연의 교육을 저버리고 학교를 '놀자판'으로 만든 것은 절대 아니다. 아주 오랜 후에야 느낀 것이지만 선생님의 미술 교육 속에는 자율과 책임을 깨우치게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a 1학년 때 선생님과 함께 만든 철화 연적. 어느덧 20여년이 넘은 골동품(?)이 됐다. 밑바닥에는 '1244 浩'라는 이니셜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1학년 때 선생님과 함께 만든 철화 연적. 어느덧 20여년이 넘은 골동품(?)이 됐다. 밑바닥에는 '1244 浩'라는 이니셜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 유성호

미술시간은 주로 야외에서 이뤄졌다. 때로는 교문까지 개방해 학교 인근의 풍경을 담아오게 했다. 당시 수업 중에 교문을 나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미술 수업도 다양했다. 데생은 물론 수채화, 아크릴화, 판화, 조각, 동양화, 포스터, 도예 등 할 수 있는 모든 장르의 미술을 섭렵하는 듯했다.

때로 실기 도구 준비가 미흡하면 우리는 두 시간 내내 운동장을 뛰면서 돌았다. 그때도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맨 앞에 뛰었다. 학생들이 지쳐 하나둘 떨어져나가도 선생님은 내내 달렸다. 그런 일이 있으면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실기 수업 준비에 신경을 썼다. 야외 수업이나 운동장 돌기가 아이들에게 자율과 책임을 가르치는 훌륭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아쉽게도 졸업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영원한 스승님으로 기억합니다"

a 1986년 졸업앨범에 있는 선생님 사진.

1986년 졸업앨범에 있는 선생님 사진. ⓒ 유성호

우리가 학교를 마칠 무렵,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셨다. 우리 학교에 오시기 전에 재직했던 휘문고등학교에서도 이유도 알리지 않은 채 1년만에 전근을 해 학생들이 매우 아쉬워했다고 한다.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당시 민중미술 계열에서 주최한 한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했다. 서슬퍼런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 민중미술 운동을 했으니 치도곤을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선생님과 나는 각별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선생님과의 이별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시간이 꽤 흐른 후에 선생님을 다시 뵐 수 있었다. 선생님은 삽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상도동에 있는 선생님 집을 찾은 나와 친구들은 선생님과 다시 만난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울면서 우리는 같은 말을 되씹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그후 다시 선생님을 만난 것은 한겨레신문사에서였다. 선생님은 한겨레신문 창간과 함께 만평 담당 화백으로 우뚝 서 계셨다. 당시 선생님의 손바닥만한 한 컷짜리 만평은 4천만 국민을 울리고 웃겼다. 그 미술 선생님이 바로 박재동 화백이다.

유명한 선생님 덕에 편한 제자들

선생님은 어느새 사회 저명 인사가 돼 각종 매체에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그래서 제자들은 안방에서 쉽게 선생님의 근황을 접할 수 있다. 핑계 같지만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 뵙는 일이 소홀해지고 있다.

또 선생님의 부인은 과거 연극무대에서 요즘은 안방극장과 은막을 넘나드는 전천후 배우로 맹활약하고 계신다. 이 또한 우리에게 선생님 가족의 안녕을 확인시켜주는 일이니 제자들은 거실 TV 앞에 앉아 편안히 문안을 여쭙고 있다. 모두가 선생님의 덕이요, 우리의 복이다.

끝으로 밝히면 화내실지 모르지만 사실 요즘 방송에 나오는 가지런한 선생님의 치아를 보면 옛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선생님은 예나 지금이나 제자들에게 웃음을 머금게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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