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 개혁 후퇴 포장하는 말 아닌가"

[인터뷰]<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

등록 2004.05.13 20:24수정 2004.05.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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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왼손들이 제 역할을 다해야 국가의 부패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지난 12일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공무원노조 강릉시지부와 전교조 강릉지회가 공동주최한 강연회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탄핵 심판과 관련해 "대통령 업무 복귀가 현실화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면서 "향후 정국 운영의 방향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열린우리당의 실용주의 노선은 "개혁 후퇴를 포장하는 언어 전술"이라고 지적하며 "어떤 정책으로 국민 앞에 나설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부 장관 제의가 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한 시민의 질문에 "노 대통령 임기 동안 교육 문제 해결 의지를 약속한다면, 승낙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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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목

다음은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과의 일문일답이다. 인터뷰는 강릉시민영상제작단과 강릉대학교, 중앙대학교 학생 기자단과 공동으로 공무원 노조 강릉시지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대통령 탄핵 심판이 14일이면 결정됩니다. 홍 위원께서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어떻게 나올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기각하겠죠. 소수자 의견은 밝히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기각하고 다음날 대통령 담화를 한다니까 거기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 당연히 기각될 것으로 보십니까?
"그렇죠."

- 만약 인용(認容) 된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 탄핵 심판 결정에 재판관들의 소수의견을 명시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저는 개인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으며 전례를 남겨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소수의견이 나오는 게 더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국론 분열을 이야기하지만, 소수자의 의견이 표현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렇지 않다니 어쩔 수 없죠."

- 노무현 대통령이 업무 복귀를 하게 되면, 향후 어떻게 정국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개혁입니다. 어느 누가 말했듯이 왼쪽 깜빡이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 열린우리당의 실용주의 노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잘 모르겠어요. 실용주의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야말로 개혁 후퇴를 미리 포장하기 위해서 사용된 말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뭘 뜻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으니까요.

언어가 분명하지 않을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자유'와 '민주'라는 말이 '자유민주연합'이라는 정당의 이름에 의해서 굉장히 변질되었잖아요. 이런 면과 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요. 내용도 무엇인지 모르는 언어를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사용하는 것이 이미지 정치의 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정책을 어떻게 펴나갈지 분명해야 합니다. 민생정치. 말은 다 좋죠. '민생정치다' '실용주의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어떻게 펴나갈지를 분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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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목

- 얼마 전 <한겨레>(11일자 '토론과 논쟁')를 통해 "진보 세력을 묶어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른바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것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져 있습니다. 보수 세력이 물적 토대를 중심으로 모인다면, 진보 세력은 이념적 동질성을 통하여 모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아주 좁은 입지밖에 안 되는 진보 세력들인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세력간에 이념적 동질성을 자꾸만 확인하려 하고 그러면서 서로 나뉘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전체 모순에 비할 때 그 차이는 아주 미세함에도 말입니다. 이곳이 유럽 사회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유럽 사회에서 사용되는 담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모순이 어느 정도 정리된 유럽 사회의 차이를 여기 한국 사회에 대입해서 분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원심력보다는 구심력이 작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사회 환경을 바꾸는 것은 '시민 자신의 몫'

-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는 무엇입니까?
"자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그러니까 사회적 가치로서 자유, 평등이나 인권, 연대와 같은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와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회의 환경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시민 자신의 몫'이라는 인식이 바로 자율성입니다.

그런데 자율성, 자발성이 우리에게 부족하죠. 우리가 바라는 정치 환경이나 언론, 교육 사회 환경은 누가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모두 시민이 만드는 것이죠. 지금 단계는 그런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데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몫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의 시민은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봉건 사회를 시민의 손으로 스스로 극복한 것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근대 사회가 주어졌습니다. 교육 과정을 통해서도 시민 의식이 형성되지 못했고, 자유나 평등 의식보다는 질서나 안보 의식이 강조됐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은 분단의 질곡과도 연관이 있지만 인권이나 연대 의식보다는 경쟁 의식이 교육 과정에서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행정 단위 상의 시민이 있을 뿐 근대 민주 공화국의 시민은 별로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강릉 시민은 단순히 행정 단위 상의 강릉 시민일 뿐이지 그것이 헌법 제1조 1항에서 말하는 '시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똘레랑스(관용)'가 아니겠습니까?
"똘레랑스는 역사적으로 앵똘레랑스에 단호히 반대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마치 똘레랑스를 나와 다른 남을 용인하는, 그래서 무엇이든지 모두 다 용납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똘레랑스는 '칼'이에요. 단호함입니다. 즉 앵똘레랑스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차이는 차이일 뿐이지, 그 차이를 핑계로 차별이나 억압, 배제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 사회는 차이가 모든 부분에서 차별, 배제, 억압의 근거가 되고 있죠. 남녀 차별, 남녀간에는 차이가 존재할 뿐인데, 그게 여성에 대한 차별이 됩니다. 그 다음으로는 성징에 대한 문제를 들 수 있어요. 이성애자가 대다수이고 동성애자가 소수인데 우리 사회는 동성애자에 대해서 배제하죠. 또 사상에서 다름의 문제. 국가보안법은 노골적이죠. 그 부분은 송두율 교수에 대해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앙과 출생지의 차이, 이런 모든 것에 대해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 맞서 싸우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똘레랑스는 사회 성숙과 사회 변화 진보의 무기죠.

지금 상생을 얘기한다고 칩시다. 상생에도 전제가 있습니다. 그 대상이 사익 추구 집단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적 부분에 똬리를 튼 사익 추구 집단이 아니어야 합니다. 이것은 극복 대상이지 상생의 대상이 아니죠. 그 다음에 앵똘레랑스한 것들, 그것하고는 상생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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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목

- 한국 사회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어떻게 보십니까?
"국가주의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봅니다.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 속에서 개인을 국가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하게 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사회 구성원들이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 사회의 대학 교육이 파행으로 치닫는 것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서열화 구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학벌 중심 구조가 교육을 망치는 주범이고, 중고등학교 교육도 왜곡되게 하죠."

- 서울대 폐지론이 대안입니까?
"서울대는 대학원 중심으로, 전국의 국공립대는 통합해서 프랑스나 독일처럼 평준화로 가야 합니다. 통합된 국공립대는 자격고사로 입학하게 하고, 입학은 쉽게, 한학년 올라가는 것은 어렵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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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강원정치 대표기자, 2024년 3월 창간한 강원 최초·유일의 정치전문웹진 www.gangwoninnews.com ▲18년간(2006~2023) 뉴시스 취재·사진기자 ▲2004년 오마이뉴스 총선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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