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규 공정위장 "시장개혁되면 재벌체제 진화할 것"

14일 오후 질서경제학회 토론회 기조발제서

등록 2004.05.14 20:54수정 2004.05.1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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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 권우성

재계와 보수언론의 압력에 밀려 잠시 주춤했던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다시 칼을 뽑아들었다. 지난 13일 공정위 고위간부가 전경련 임원 등과 만난 자리에서 "금융계열사 의결권제한 문제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강 위원장은 14일 오후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열린 질서경제학회 경제질서대토론회에 참석 "재벌 소유 금융·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의 허용범위를 점차 축소해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결권 행사 허용범위의 축소폭과 시기에 대해서는 재계의 반발과 재경부와의 불필요한 마찰 등을 감안한 듯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는 특히 "계열금융사가 고객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이해상충 문제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다"면서 "2002년에 적대적 M&A 등을 우려해 30%까지 의결권을 부여했지만 그것은 원칙적으로 고객돈으로 기업집단의 지배권 확장이라는 문제가 있어 점차 해소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강철규 위원장은 성공적 (시장) 개혁을 위해서는 재벌 등 시장참여자의 자발적 변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시장과 시민사회가 자발적인 변화의 주체로 적극 나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만 시장의 자율감시장치가 공고히 정착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강 위원장은 "그동안 우리 경제의 시스템 개혁은 여러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토양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시장참여자들의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상당히 미흡했다"고 시장개혁 실패의 원인을 자발성의 부족에서 찾기도 했다.

강 위원장은 "시장개혁이 잘 추진되면 현행 계열사간 지분관계가 거미줄같이 얽힌 대기업집단체제가 기업집단별 특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는 등 우리 기업체제에도 상당한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며 공정한 시장질서 구축을 위한 재벌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할 뜻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다음은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제문 전문이다.

참여정부의 경쟁질서정책 방향


잘 알고 계신 바와 같이, 참여정부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경쟁질서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자유경쟁의 원칙’이 경제운용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경쟁제한적인 제도와 관행을 혁파하고 시장원리에 따라 자원배분이 이루어지도록 투명·공정한 경쟁여건을 조성하는데, 참여정부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유경쟁의 원리는 “시장에서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자유”라는 他者危害의 原則(harm principle, J.S.Mill, 1859)에 따르고 있습니다. 즉 시장에서 경쟁자, 소비자, 소액주주 등 다양한 타자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에는 경쟁질서가 파괴되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경제·사회가 시장경제와 경쟁질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인 것은 ‘97년 외환위기 이후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후, 지난 「국민의 정부」는 과거 개발연대 동안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기업개혁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여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기업집단 소유지배구조의 본질적 부분에는 변화가 미흡하여 여전히 불공정한 거래관행,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어,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쟁을 제약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는 시장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경쟁 질서를 우리 경제에 확고히 정착시키고 선진경제 도약을 이룩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출발하였습니다.

지난 1년의 평가

돌아보면, 참여정부는 대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출범하였습니다.

출범초기 급격한 내수둔화 및 북핵사태와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의 고조, 그리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국민요구가 일시에 분출되어 시장경쟁질서를 바로잡는 일을 순조롭게 달성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한국경제는 과거 요소투입형 성장의 한계가 나타나 성장잠재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됨에 따라 총요소생산성 증가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하는 선진경제로의 전환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어서 과도기적 변화노력이 절실한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참여정부의 지난 1년은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한 변화준비를 수행한 단계였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으로 경제활력의 회복과 민생현안 해결에 노력하는 한편, 시장개혁과 같은 중장기 전략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한 한 해였습니다.

무엇보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목표로 명확한 비전아래 투명하고 일관성 있게 이를 추진하기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였습니다. 지난해 5월부터 9월말까지 관계부처·재계·연구소·학계·시민단체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민관합동의 시장개혁 T/F를 구성하여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고 합리적 개편방향을 마련하기 위하여 진력하였습니다.

우리시장을 구성하는 주요요소인 개별기업, 기업집단, 거래시장의 3개 차원에서 경영투명성, 소유지배구조, 공정경쟁실태 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전문연구기관(KDI)에 의뢰하고, 그 문제점과 개선목표, 정책방안을 도출하는 작업도 추진하였습니다.

재계·시민단체·학계·정치권 등의 서로 입장이 다른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후, 마침내 지난 12.30일 관계부처 합의와 경제장관회의를 거쳐 정부안으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최종 확정·발표하였습니다.

개별기업 경영에 있어서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고,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하며, 시장거래에 있어서의 경쟁 촉진을 위한 단계별 정책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시장개혁의 목표는 투명하고 공정한 경제시스템을 구축하여, 돈과 사람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도록 하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정부의 직접규율 보다는 시장 자율감시를 중시하고, 시장자율감시기능의 개선정도에 맞추어 정부의 직접규율은 점차 완화·축소해 나가려는 시장개혁의 기본방향도 설정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참여정부의 시장개혁 로드맵은 정부의 직접규율을 시장자율규율로 전환해 가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주요 추진과제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경쟁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정부의 주된 역할은 모든 기업이 공정한 경쟁의 장(level playing field)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시장의 자유경쟁원리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타자위해(他者危害)가 없는 자유 경쟁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정부는 시장개혁을 비롯하여 경쟁제한적 규제개혁, 소비자권익보호, 중소기업의 경쟁기반조성 등 경쟁질서정책을 강화하고자 특히, 다음과 같은 정책에 역점을 두려고 합니다.

우선, 지난해 확정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차질없이 추진하여 기업 및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개선과 투명경영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며, 지주회사제도를 보완하고,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에 대한 정보공개를 확대하고자 합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투자제한제도가 아니라 대기업집단 소속회사의 「타국내회사 주식보유한도제」입니다. 이 제도의 대상은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 계열사이며, 그 목적은 계열사간 출자를 통한 가공자본 형성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순환출자 등을 통해 실제투입자본보다 몇배 내지는 몇십배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불공정할 뿐 아니라, 자라나는 독립·중소·중견기업을 시장에서 구축하는 불공정 경쟁을 촉발하고, 계열사중 일부가 부실화될 때 집단전체의 동반부실화 나아가서는 채권·금융시장의 마비를 초래하는 시스템리스크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순자산의 25% 이내에서 타회사 주식취득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도 지배구조모범기업, 혹은 지주회사로 전환한 집단, 의결권승수가 낮은 기업과 같이 이러한 문제점들을 자율적으로 감시하는 장치가 마련되면 이 제도를 졸업시킴으로써 시장자율기능으로 바꾸어 가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외인정제도의 합리적 보완방안을 마련하여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출자예외인정이 지배력 확장에 악용되는 것은 방지하면서, 상시적 기업구조조정과 신산업 및 10대차세대성장동력산업 분야의 창업은 적극 지원해 주려고 합니다. 나아가, 3년 후 시장감시장치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경우에는 이 제도를 전면 재검토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현행 30%인 자산규모 2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의 허용범위를 점차 축소하여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고자 합니다. 계열금융사가 고객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 문제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계발연대 금융시장의 미발달로 그룹내 금융을 허용해 왔으나, 그 의결권만은 ‘87년 제도 도입시부터 2002년 법개정시까지 제한하였습니다. 2002년에 적대적 M&A 등을 우려하여 30%까지 의결권을 부여하였지만 그것은 원칙적으로 고객돈으로 기업집단의 지배권 확장이라는 문제가 있어 금융시장의 발달과 더불어 점차 해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비상장·비등록 기업에 대한 공시의무를 강화하고, 지주회사체제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지주회사가 계열회사가 아닌 국내회사 주식을 일정지분 이상 소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금융거래정보요구권을 재도입하며, 기업결합심사제도 및 손해배상청구제도를 개선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정위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개정안을 마련하여 입법예고 중에 있습니다.

둘째, 경쟁제한적 규제가 더욱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지속적인 정부규제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아직 과도한 규제, 불합리한 규제 및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가 상당수 잔존하여 공정한 시장경쟁을 저해하고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하며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산업별 시장개선대책 추진 및 법령협의 과정에서 발굴한 23개부처소관 111개법령상 174개의 경쟁제한적 규제를 목록화하고, 이들 제도에 대한 전문가 연구용역을 통해 95개제도(전체의 55%)는 폐지, 57개 제도(33%)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받은 바 있습니다.

현재 이들 규제에 대한 관련부처 및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비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비스산업의 각종 규제를 비롯하여 기업의 투자의욕을 위축시키는 경쟁제한적 규제를 과감히 털어내고자 범정부 차원의 민관합동 T/F를 구성·운영하는 등 규제개혁에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제개혁은 정부와 시장관계의 기본틀을 재확립하는 과정이자 민간자율과 자기책임을 명확히 하는 과정으로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경쟁촉진을 통해 우리경제의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것입니다.

이와 함께, 시장경쟁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시장경제 제1의 敵인 카르텔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기업결합심사를 강화하여 독과점적 시장구조의 형성을 억제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소비자주권의 확립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소비자피해 사전예방 및 사후구제 장치를 확충하며 소비자로부터의 경쟁압력을 제고해 나가야 합니다.

소비자로부터의 경쟁압력 제고는 소비자가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서 비롯되며 이는 궁극적으로 기업간 경쟁을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금년 중으로 「소비자보호종합계획」을 수립하여 디지털 경제의 급성장에 따른 새로운 소비자문제 출현 등 정책추진환경 변화에 대한 효율적 대응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소비자선택의 요건이 되는 정보의 효과적 제공방안, 전자상거래 및 방문·다단계판매 분야의 소비자문제 해결방안, 소비자피해구제 및 분쟁조정의 효율성 제고방안 등을 중점적으로 마련할 계획입니다.

넷째, 하도급거래 정상화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공정한 경쟁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도 각별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의 경영안정과 경쟁력 확보는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 및 경제성장의 원동력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지난해 12월23일 마련한 「투명하고 공정한 하도급거래기반 구축방안」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질서경제학회 회원 여러분,

성공적인 개혁추진을 위해서는 이제부터 시장과 시민사회가 자발적인 변화의 주체로 적극 나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만 시장의 자율감시장치가 공고히 정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시스템 개혁은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토양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시장참여자들의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상당히 미흡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변화와 혁신은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구체적인 추진일정에 따라 일관되게 추진되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변화가 명확한 목표 하에 일정대로 차질없이 추진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하면 시장 주체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는 시장개혁의 비전과 목표, 정책과제와 일정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방향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고하여 시장참여자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면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장개혁이 잘 추진되면 현행 계열사간 지분관계가 거미줄같이 얽힌 대기업집단체제가 기업집단별 특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되는 등 우리 기업체제에도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외국투자자들로부터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Korea Discount도 해소되고, 국내외 투자자의 신뢰도 크게 제고하여 한국경제의 새로운 추동력으로 기능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경제에 자유롭고 투명·공정한 경쟁질서가 확립되어, 궁극적으로 돈과 사람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고 성실히 일한 사람이 일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를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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