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로 너무 좋아하모 안 되는기라"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58> "밥풀떼기꽃"으로 피어나는 어린 날

등록 2004.05.17 13:46수정 2004.05.1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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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해마다 보릿고개 때 피어나는 밥풀떼기꽃

해마다 보릿고개 때 피어나는 밥풀떼기꽃 ⓒ 이종찬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최순애 작사, 박태준 작곡 '오빠생각')



비가 그친 오뉴월의 하늘은 드없이 높푸르다. 가끔 얼굴을 간지럽히는 산들바람도 몹시 달게 느껴진다. 지난 주말부터 추룩추룩 내리던 비가 마침내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정국을 깨끗히 씻어내렸다. 마치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를 오뉴월의 산천 위에 다시 새기라는 듯.

이른 아침부터 비음산에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 뻐꾸기가 우는 걸 보니 곧 이어 못자리에서 '뜸! 뜸!' 하고 우는 뜸북새 소리도 들릴 것이다. 뻐꾸기와 뜸북새 우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자신도 모르게 배가 너무나도 고팠던 보릿고개의 기억속으로 풍덩 빠진다.

그해는 끼니 때마다 외할아버지의 밥상 위에 오르던 하얀 쌀밥 같은 밥풀떼기꽃이 유난히 많이 피어났었지. 하지만 밥풀떼기꽃은 먹을 수가 없었어. 코끝을 싸하게 맴도는 밥풀떼기꽃의 향기는 우리들 주린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도 남을 만치 참 좋았는데도 말이야.

내 어린 날, 오월에서 유월로 가는 길목은 무척이나 길고 배가 고팠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앞산가새에 낫을 들고 올라가 물 오른 소나무 가지의 껍질을 벗겨 하얗게 드러나는 속살을 빨아먹기도 하고, 까만 버찌와 오디를 따먹으며 힘겨운 하루를 보냈다.

부황 난 얼굴에는 마른 버짐이 허옇게 피어났고, 팔 다리 곳곳에도 사마귀가 빗방울처럼 송송송 돋아나던 그 지긋지긋한 보릿고개.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날들. 그때는 일단 어른만 되면 그 지긋지긋하고도 몸서리 나는 가난의 굴레에서 저절로 벗어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건 망상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오월에서 유월로 가는 길은 너무나 지루하고 힘들다. 그때 눈이 부시게 하얀 밥풀떼기꽃이 쌀밥처럼 산자락 곳곳에 피어나듯이, 지금의 오월도 기름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서민들의 주머니에는 먼지만 일고 있다.

게다가 오월에서 유월로 가는 길은 생각만 해도 절로 살이 떨리는 피비린내가 묻어나는 때가 아닌가. 1980년 오월, 광주에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군인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내팽개친 채 아이 밴 여자, 학생, 무고한 시민들 할 것 없이 모조리 총살시킨 달이 아닌가.


툭 하면 긴급수배, 국가내란죄로 내몰리던 시절, 최루탄과 성명서가 빗발치던 그 피의 시절을 딛고 자라난 청소년들의 기억 속에는 지금쯤 무엇이 매장되어 있을까. 수많은 죽음과 고통으로 얼룩진 우리의 참혹한 역사는 순수하고 아름다워야 할 청소년들의 여린 감수성마저 모조리 짓밟아 버린 것은 아닐까.

a 밥알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밥풀떼기꽃이라 불리는 조팝꽃

밥알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밥풀떼기꽃이라 불리는 조팝꽃 ⓒ 이종찬

하지만 다행히도 내게는 보릿고개로 인한 배고픔의 기억과 군사독재정권이 저지른 무자비한 피의 기억만 있는 게 아니라 제법 우습고도 아름다운 기억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지금도 나는 밥풀떼기꽃이 피어날 때마다 그때 그 누이의 서글픈 짝사랑을 떠올리며 혼자 실실 웃는다.

만약 내게 그런 아름다운 기억마저도 없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직까지도 '몇 선 의원입네' 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아예 치우쳐서 살고 있는 저 군사독재정권의 하수인들처럼 내 주장만 옳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눈을 뜨고도 국민들의 참뜻을 보지 못하는 저 당달봉사들처럼 말이다.

어린 날 나의 하루는 이랬다. 우리집 싸립문 옆 닭장에서 장닭이 홰를 치면서 몇 번 울고 나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꼭두새벽에 끓여놓은 소죽을 퍼주고 도랑가에 나가 대충 세수를 한 뒤 쌀알 서너 개 섞인 꽁보리밥을 먹고 걸어서 학교에 갔다.

학교로 가는 신작로 옆에는 밥풀떼기꽃이 하얗게 피어나 있었고, 얉은 물이 촐싹대는 논바닥에서는 올챙이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저만치 정자나무가 있는 논에서는 소를 앞세워 써레질을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더러 보였고, 멀리서 뻐꾸기 소리와 뜸북이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오곤 했다.

그렇게 학교에 갔다가 수업을 마치고 나면 곧바로 책보따리를 어깨에 비스듬히 메고 집으로 돌아와 지게를 짊어지고 암소를 앞세워 철로가로 향했다. 그 철로가 들판에서 소를 풀어놓고 소풀을 베다가 배가 고프면 남의 집 밀과 보리를 서너 춤 베다가 불에 그을려 먹다가 주인에게 들켜 혼이 나기도 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소풀을 한 짐 지고 배불리 풀을 뜯어먹은 암소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특히 그때쯤이면 마산쪽 하늘을 오후 내내 달구던 해가 산마루에 걸리면서 우리 마을도 빨간 노을에 잠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 노을을 따라 휘파람을 날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는 배고픔을 달래려고 생밀을 몇 개씩이나 비벼먹다가 마을 형으로부터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듣게 되었다. 도랑가 건너 산수골에 사는 누이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던 산수골 형의 이야기였다.

그때 그 형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그 누이는 여중 1학년이었다. 그런데 밥풀떼기꽃이 유난히 하얗게 피어나는 그날, 그 형네가 마산으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그 형네가 이사를 가고 나자 그 누이는 툭 하면 봉암 앞바다에 나가 바다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해질 무렵이면 우리 마을로 돌아오곤 했다.

그 누이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집에 사는 그 형을 참으로 잘 따랐다. 아니, 어쩌면 그 형을 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이사를 가기 전, 그 형의 책상 위에는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그림이 늘 놓여져 있었다. 그 형은 때때로 누이가 놀러갈 때마다 바다의 그림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마치 금세라도 그림 속으로 들어가 수평선 너머로 훌쩍 사라져버릴 것 같은 그런 모습으로 말이야.

그런 어느날, 그 누이가 깜짝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그날도 멍하니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던 형이 갑자기 누이에게 자신의 오른쪽 손바닥을 찬찬히 펴 보였다.

"내는 바다로 참말로 좋아했다 아이가. 그래서 하루는 마산 앞바다에 가서 바다캉 악수로 나누었다카이. 그런데 그 바다도 내로 억수로 좋아했던 모양인기라. 내가 바다와 마악 악수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바다가 철썩, 하고 일어서가꼬 고마(그만) 내 손가락 한마디를 덥썩 물고 가버렸다카이. 바다가 내캉 친구로 삼는다는 표시로 내 손가락 한마디를 가져가뿟는기라. 그라이 니도 누군가로 너무 좋아하모 안 되는기라."

a 해마다 조팝꽃이 피어날 때면 옆집 오빠를 짝사랑했던 그 누이가 떠오른다

해마다 조팝꽃이 피어날 때면 옆집 오빠를 짝사랑했던 그 누이가 떠오른다 ⓒ 이종찬

그로부터 조금 지난 뒤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때 그 형의 손가락은 바다가 덥썩 물고 간 게 아니었다. 그 형은 그물에 걸려 같이 올라온 복어가 배가 볼록한 것이 하도 신기하고 재미가 있어 그 복어를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그만 복어에게 손가락을 깨물려 검지 손가락 한마디를 잃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 뒤부터 누이에게는 바다가 일종의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다가 두려워지면 두려워질수록 더더욱 그 형에 대한 그리움도 자꾸만 깊어지기 시작했단다. 그때부터 그 누이는 그 형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매일 같이 봉암 앞바다로 나간다고 했다.

뻐꾸기와 뜸북새가 울고 밥풀떼기꽃이 무더기로 피어나는 오뉴월이 되면 나는 그 누이가 자꾸만 떠오른다. 그 형이 이사를 가고 난 뒤 풀 죽은 모습으로 도랑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던 누이의 쓸쓸한 그 뒷모습. 어떤 날은 발을 헛디뎌 운동화 신은 한쪽 발이 도랑에 빠져 징징 울던 그 누이.

지금은 누군가에게 시집을 가서 누이의 서글서글한 눈동자처럼 이쁜 애 두어 명쯤 낳아 키우고 있을 그 누이. 그 누이는 혹여 오늘도 봉암 앞바다에 나가 그 형의 잘린 손가락을 떠올리고 있을까.

누이야 날이 저문다
저뭄을 따라가며
소리없이 저물어가는 강물을 바라보아라
풀꽃 한송이가 쓸쓸히 웃으며
배고픈 마음을 기대오리라
그러면 다정히 내려다 보며, 오 너는 눈이 젖어 있구나

-배가 고파
-바람 때문이야
-바람이 없는데
-아냐, 우린 바람을 생각했어

해는 지는데 건너지 못할 강물은 넓어
오빠는 또 거기서 머리 흔들며 잦아지는구나
이마 선명한 무명꽃으로
피를 토하며, 토한 피 물에 어린다

누이야 저뭄의 끝은 언제나 물가였다
배고픈 허기로 저문 물을 바라보면 안다
밥으로 배 채워지지 않은 우리들의 멀고 먼 허기를

누이야
가문 가슴 같은 강물에 풀꽃 몇 송이를 띄우고
나는 어둑어둑 돌아간다
밤이 저렇게 넉넉하게 오는데
부릴 수 없는 잠을 자고
누이야, 잠없는 밤이 그렇게 날마다 왔다 (김용택 '누이야 날이 저문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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