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저거들 봉이가"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59> 공장일기<35>

등록 2004.05.20 14:56수정 2004.05.2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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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음산에서 바라본 창원시가지와 창원공단

비음산에서 바라본 창원시가지와 창원공단 ⓒ 이종찬


"보건체조~ 시작! 하낫!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근데 가시나 이거는 오늘따라 와 이래 늦노?"

"나중에 지 혼자 남아서 연장근무로 할라꼬 그라는가 보지 뭐."

"연장근무만 시키모 괜찮구로. 시말서는 또 우짜고?"


조립부 검사라인에서 일했던 그 여성노동자의 성추행으로 인한 자살사건이 일어나자 조립부 여성노동자들은 한동안 몹시 술렁였다. 그때부터 조립부 여성노동자들은 검사라인 계장을 벌레 보듯이 징그럽게 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장에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매주 한 차례씩 어김없이 보건체조를 했다. 보건체조를 하는 날은 아무리 늦어도 아침 7시30분까지는 반드시 공장에 도착해야만 했다. 그래야 비좁은 탈의실 앞에서 한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죄수복 같은 푸른 작업복을 갈아입고 보건체조에 참가할 수가 있었다.


매주 금요일 아침 8시가 다가오면 공장노동자들은 부서별로 공장운동장에 줄지어 나와 앰프에서 요란스럽게 흘러나오는 구령소리에 맞추어 시계추처럼 흔들거리며 보건체조를 했다. 몸이 아프다거나 보건체조가 싫다고 하더라도 참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건체조는 정부당국에서 현장노동자들의 일신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산업체 공장마다 의무적으로 실시하게 했다. 하지만 공장간부들은 얼씨구나, 하면서 그 보건체조를 악용했다. 보건체조에 불참하면 벌칙으로 부서장에게 시말서를 써내는 것은 물론 하루 일이 끝난 뒤 강제적으로 30분씩 더 연장근무를 시켰던 것이다.

내가 다닌 공장에서 내세운 불합리한 제도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월요일은 아침조례, 화요일은 공장운동장 잡초 뽑기, 수요일은 분임토의, 목요일은 부서별 화단정리, 토요일은 대청소를 해야 한다며 현장노동자들에게 매일 아침 8시까지 출근하기를 강요했다.

당시 현장노동자들의 정상적인 하루일과는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였다. 그 중 점심시간(12시 30분~1시 30분) 1시간을 빼더라도 꼬박 9시간을 줄기차게 일해야 했다. 잔업이나 철야근무가 없다 하더라도 매일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모두 11시간을 공장에서 보내야만 했다.


"내 참 더러바서(더러워서) 참말로 못해 묵것네. 오데(어디) 우리가 저거들 봉이가? 이기 도대체 뭐하는 짓거린지 알만 하다가도 도무지 모르것네."

"니 말 조심해라. 그라다가(그러다가) 잘못하모 모가지 팍 잘리뿌는(잘려버리는) 수도 있다카이."

"니기미, 그라이 우리 공장도 S라디에타처럼 노조로 맨들든지(만들든지) 무슨 수로 내야 되는기라."

"쉬이~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안 카더나? 그라고 내가 들은 말인데 S라디에타도 노조로 맨들다가 공장간부들 땜에 고마 다 깨졌뿟다 카더라."


그랬다. 1984년 오뉴월부터 내가 다니던 공장의 현장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노조에 대한 이야기가 은밀하게 나돌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공장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S라디에타에서 현장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노조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때 S라디에타 현장노동자들은 공장 간부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마산 앞바다에 있는 가포횟집에 은밀히 모여 설립총회를 열고 노조집행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공장측의 끈질긴 방해에도 불구하고 항의농성을 통해 마침내 노동부로부터 교부증까지 받아냈다.

하지만 S라디에타 노조는 공장 간부들의 끈질긴 방해와 공작으로 말미암아 결국 얼마 가지 못하고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조에 가입한 대부분의 현장노동자들은 나처럼 병역특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공장 간부들의 교묘한 술책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984년 <마산문화> 3호 "전진을 위한 만남"에 상세하게 실려있다. 당시 S라디에타 프레스 2반에 근무하고 있었던 윤경효씨가 노동부 마산지방사무소장에게 낸 고발장과 그에 대한 노동부의 답변은 대략 이랬다.

"조례시간에 집합이 조금 늦는다는 이유로 20분 연장근로를 강요하였으며 시간 외 근무는 종업원 개개인의 의사에 따라 처리되어야 할 사항을 임의로 처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국가지정 공휴일에도 특근처리는 않고 출근을 시키는 등 문제점과 매년 노사협의회를 구성하여 놓고 분기별 회의는 않고 오직 경영측 임의로 회의록을 작성 관계부서에 통보하는 등 변칙적으로 법망을 피하는 등 비리를 묵과할 수 없었으며,

저희들 근로자들은 개개인의 권익을 보장받고자 현장근로자들을 주축으로 한 노조결성을 5월 6일 하였으나 회사에서는 반장급들에 지시 어용노조를 하나 더 결성케 하여 본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한 온갖 방법과 위협을 동원하였으며 심지어는 노조 부위원장(손석형)의 목을 조르며 위협하는 간부(총무계장)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온갖 방법과 비행을 동원한 협박과 위협 속에서도 노조의 설립신고증을 받았으며 본인도 프레스 2반을 대표하는 대의원에 선출되어 노조 발전과 회사 번영을 위하여 조그만 힘이나마 보탬이 되리라 굳게 명심하였습니다… ('고발장' 몇 토막)


"귀하가 S라디에타㈜ 대표자를 상대로 제기한 진정사건은 조사한 바, 노동조합 해산을 위한 사업주의 부당한 노동행위는 구체적인 사실이 없을 뿐 아니라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여야 할 사항이며, 귀하의 근무지 부당 전출은 가히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여 원대복귀합의, 화해조서에 의거 원대 복귀하였으며,

생산직 사원의 각서 및 사전사직서 제출부분의 각서는 공무와 사원 일동이 공동결의문을 작성한 것이며 사전사직서 제출에 대하여서는 회사측에서 제출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할 뿐 아니라…"('노동부 마산지방사무소 회신' 몇 토막)


S라디에타 노조 설립이 이처럼 허무하게 끝나자 창원공단에 입주한 여러 공장에 다니는 현장노동자들과 내가 다니는 공장의 현장노동자들에게도 엄청난 좌절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S라디에타 노조 와해는 현장노동자들에게 노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노조 설립만이 살 길'이라는 확고한 희망의 불씨를 지피기 시작했다.

"니기미! 전태일이가 와(왜) 스스로 몸에 불로 질러가꼬 타죽었는지 인자 쪼매 알것다."

"노조는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들이 맨드는 기라 카더마는 인자 보이(이제 보니까) 전부 새빨간 거짓말 아이가."

"그라이 노조 '노'자만 꺼내모 공장 간부들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아이가. 하여튼 우리도 진짜 노동자답게 살라카모 간부들이 아무리 지랄병을 떨어도 노조로 맨들어야 되는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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