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25

잠시만 이렇게 있어줘요! (3)

등록 2004.05.19 11:13수정 2004.05.1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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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에게 그동안 정말 수고가 많았다는 치하의 말씀을 먼저 드리는 바이오.”
“……!”

“현재 우리가 면구를 써서 용모를 감춘 것은 비밀 유지를 위함이외다. 누구라도 체포되어 발설하게 되면 장차 도모하려는 거사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 우려되어 부득불 용모를 감췄으니 넓은 아량으로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오.”


남자인지 여자인지 가늠하기 힘든 음성이었지만 오백여 장한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있는 목소리였다.

“여러 영웅들께서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우리는 한 가지 목적을 이루고자 피와 땀을 흘리며 수련에 임했소이다.”
“……!”

“어제, 무공교두들이 모여 회합을 한 결과 이제 더 이상의 수련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고 하였소이다.”

힘 있는 목소리 덕분인지 오백여 장한들의 시선은 한군데로 모아져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빛은 과연 다음 말은 무엇일까 궁금하다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 소생은 외람되게도 여러 영웅들께 우리 선무곡을 위해 살신성인(殺身成仁) 해 달라는 부탁을 하려 하오이다.”


말이 끝나자 누군가가 걸쭉한 음성으로 말을 받았다.

“크크크! 살신성인, 그 말 한번 마음에 드오. 그거 공자님 말씀 아니오? 크크! 우리에게 그런 기회를 주어 고맙소.”


살신성인은 공자(孔子)의 언행을 수록한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말이다.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구하여 인(仁)을 저버리지 않으며 스스로 몸을 죽여서 인을 이룬다.”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제 몸을 희생시켜 어진 일을 이룬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 혹은 대의(大義)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 바로 살신성인이다.

단하의 장한을 일견한 면구를 쓴 인물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여러 영웅께 목숨을 요구하는 것은 작금의 상황으로 볼 때 본곡의 미래가 너무도 암담하기 때문이오. 본곡은…”

본격적으로 말이 이어지려는 찰라 이번엔 또 다른 탁자에서 걸걸한 음성이 튀어 나왔다.

“아아, 어려운 말씀은 이제 그만 두시오.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대강 알고 있으니 할 일이나 먼저 알려주시오.”
“좋소!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본론만 말씀드리겠소이다. 본단은 여러 영웅들께 본곡의 미래를 암담하게 하는 암(癌)적인 존재들을 처단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하는 바이오.”

“흐음! 암적인 존재라… 고름은 살이 안 되는 법이고, 개꼬리 삼 년 두어봐야 황모 안 된다고 하였으니 제거함이 마땅하지. 헌데 누굴 말하는 거지? 이봐, 자넨 누군지 감이오나?”
“글세? 누굴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 자넨 아나?”

잠시 술렁이는 가운데 누군가의 음성이 튀어나왔다.

“이보시오. 그게 누군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오.”

“맞소! 이왕 이야기하려면 명확히 말해주시오.”

몇몇의 물음에 면구를 쓴 인물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암적인 존재란 하릴없이 정쟁(政爭)만 일삼는 장로들이외다!”

충격적인 말이었는지 일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누군가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던 것이다.

“하하핫! 이거야 원…, 불감청(不敢請)일지언정 고소원(固所願)이외다. 그렇지 않아도 그놈들 하는 짓거리가 너무 역겨워 싸그리 죽여 없앴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소이다.”

“크크! 맞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빌어먹을 놈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누가 나서서 안 죽여 주나 하는 생각을 했었소이다. 크크크! 그런데 우리더러 죽여 달라니 정말 영광이외다!”

“크하하하! 동감이외다. 나도 그런 생각 했었소이다. 놈들은 살려둘 가치조차 없는 쥐새끼만도 못한 개자식들이오.”
“개자식은 무슨…? 개똥만도 못한 놈들이오.”

“맞소! 그놈들 아가리로 밥 들어가는 것도 아깝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소. 그러니 이번 기회에 모조리 멱을 따 버립시다.”
“크크크! 놈들은 이미 뒈진 목숨이니 염려 마시오.”

조용하던 광장은 한순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사람마다 핏대를 세우며 뭔가 한 소리씩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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