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람일 뿐...도태되지 않으려 최선"

[현장인터뷰] 서울대 특강 나선 하리수씨의 솔직담백 이야기

등록 2004.05.20 09:33수정 2004.05.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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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강연에 나선 하리수씨.
서울대 강연에 나선 하리수씨.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솔직히 나를 성적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부답스럽다. 학생들도 사회 나가면 경쟁해야 한다. 나도 도태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가수겸 연기자 하리수(29)씨가 서울대 단상에 섰다. 하씨는 미대 학생회가 준비한 강연에서 이같이 말한 뒤 "'인간극장'에서의 모습(솔직하고 인간적인 하리수)을 그리워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며 "연예인으로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러한 이미지를 만든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서울대의 대동제 마지막 날이었던 19일 오후 4시 3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자연대 대형강의동(26동 108호)에는 400명 이상의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트렌스젠더'라는 사회적 소수자로서 하씨가 어떤 강연을 보일지는 학생들뿐 아니라 언론사에서도 관심이었을 것. 이날 취재진 또한 20여명 이상 모였다.

오후 4시부터 1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강연은 학생들의 질문에 하씨가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궁금한 사항에 대해 손을 들어 질문했고 하씨는 장난기 섞인 듯 진지하고 솔직하게 답변했다. 특히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때론 웃음으로 때론 눈물을 흘리며 서슴없이 밝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예전보다 '사회적 시선'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하씨가 "최고 대학에 와서 긴장된다. 하고 싶은 질문 있으면 해달라"고 하자 첫 질문이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것이었다. 하씨는 이에 "엄마, 아빠와 함께 밥먹고 자고 놀다가 거짓말도 가끔 하고 좋은 일도 조금 했다"고 답해 초장부터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하씨는 '사회적 시선의 변화가 있는지'라는 질문에 "아무래도 예전보다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특히 처음 언론사와의 인터뷰는 '언제부터 여자라고 느꼈나', '언제 수술하려고 했나', '언제부터 여자 목욕탕 갔나' 등이었는데 요즘은 그런 질문은 받지 않는다"며 심지어 "홍콩에서도 역시 처음엔 '변성연예인'이라며 신기하게 보다가 최근엔 연기자로 봐주는 분위기다"라고 설명했다. 하씨는 지난 16일 홍콩에서 영화 '도색' 촬영을 마치고 귀국했다고 한다.


당시 하씨는 밤무대에서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드랙 퀸'(drag queen;여장남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동성애자인 홍석천씨와의 관계'에 대해 하씨는 "사실 내 고등학교 동창 중 이반(동성애자)으로 외국에 사는 친구도 있다. 사실 언론에서 '하리수가 게이를 싫어한다'는 등의 보도로 홍석천씨와 날 갈라놨다"며 "우린 언론의 피해를 봤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홍씨와는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지낸다고 한다.


이밖에 하씨는 '너만한 여자 없다"는 남자친구와의 얘기, 가슴 성형수술에 대한 일화 등을 소개했다. 이날 강연을 마친 뒤 하씨는 2001년 발표한 자서전 '이브가 된 아담' 400권을 학생들에게 선물했다. 하씨와의 시간을 보낸 학생들은 대체로 강연에 만족스러워 했다.

김희진(금속공예 '01학번)씨는 "(하리수씨의) 솔직한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며 "원래 트렌스젠더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아쉬움을 토로하는 학생도 있었다. 최준배(국문과 '99학번)씨는 "'여러 소수자 분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못했다"며 "오늘 강연 내용을 들어보니 트렌스젠더를 위해 나서서 일을 한다거나 그렇진 않을 것 같아 아쉽다"고 밝혔다.

강연이 진행된 300명 정원의 자연과학대 대형강의실이 통로까지 꽉 찼다.
강연이 진행된 300명 정원의 자연과학대 대형강의실이 통로까지 꽉 찼다.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다음은 이번 강연과 하리수씨와의 짧은 인터뷰를 묶어 정리한 것이다.

"내 힘의 원천은 엄마... 사회적 시선 자연스러워져"

- 연예 데뷔 초와 지금 시선의 변화는 어떤지.
"아무래도 예전보다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특히 처음 언론사와의 인터뷰는 '언제부터 여자라고 느꼈나', '언제 수술하려고 했나', '언제부터 여자 목욕탕 갔나' 등이었는데 요즘은 그런 질문은 받지 않는다. 사실 테이프에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녹음해서 나눠주고 싶었다. (웃음) 최근 홍콩에서 영화 '도색'을 찍었는데 홍콩에서도 역시 처음엔 '변성연예인'이라며 신기하게 보다가 최근엔 연기자로 봐주는 분위기다. 이전엔 대부분 트렌스젠더 역할만 했는데 작년 드라마엔 처음으로 트렌스젠더가 아닌 전직 모델출신의 비서 역할을 맡았다."

- 개인이 느끼는 변화는 없나?
"사람들은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도 서울대에 대한 편견이 있다. 공부 잘하고 최고 인재만…(웃음) 연예계 데뷔전에는 굳이 트렌스젠더라고 밝히고 다니지 않아도 됐다. 주민등록증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상황 말고는 부딪힐 일이 없었다. 데뷔 전 카드를 잃어버려 신고를 했는데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줬더니 '남자 번호입니다. 본인 맞나요'라고 해서 맞다고 했는데 결국 은행에 직접 방문하라고 했다. 은행에 가서 내 모습을 보고 쏠리던 시선. 하지만 연예인이 된 뒤 한꺼번에 어려움들이 날 강탈해왔다. 이후 2년간의 너무 힘들었다. 지금은 호적문제도 해결되고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으니까. 많이 변했다."

- 혹시 많은 어려움 겪었을 텐데 견딜 수 있던 힘의 원천은?
"힘의 원천은 근육이다.(웃음) 이렇게 이 자리에서 웃기 전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해 혼자 살았다. 지금은 술을 안 먹지만 당시 너무 힘들어 친구들과 소주를 물 마시듯이 했다. 당시 안 좋은 일이 있어 경찰서에 가야만 했다. 엄마께서 나를 찾으러 경찰서에 오셨다. 집에선 '예쁜 아들'이었지만 그곳에선 메이크업하고 치마를 입은 나를 보고 엄마께서는 하염없이 우셨다.(눈물) 그 때 엄마를 위로하고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당시 엄마는 집에 들어오라고 하셨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거야. 난 이게 최고, 최선의 선택이야. 집에 가면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 그랬다. 엄마는 빵과 바나나 우유를 사주시고 가셨다. 이상하게 어릴 때 빵과 바나나 우유를 사주면 주사 맞을 때 안 울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혼자 살 때, 밤새 마신 술을 아침에 다 게워내야 했을 때도 즐거운 삶을 위해 노력했다. 방송에 비친 모습과 다르게 고생과 역경이 많았다. 내 힘의 원천은 어머니다."

- 가끔 사회에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있을 텐데.
"고등학교 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에서 트럼펫을 했는데 선배가 '너 왜 그리 계집애 같냐'며 때리고 기합 받고 그랬다. 사실 당시까지 내가 여자처럼 행동하고 싶다거나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 남자가 이성으로 느껴지곤 했다. 좋지 않은 말을 들으면 슬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싫은 사람 보면 '쟤 왜그래' 그렇지 않나. 그게 사람들 기본적인 생각인 것 같다. 자기에게는 관용과 용서를 하면서 남은 용서하지 않는. 처음엔 집에 가서 울었는데 요즘 그런 얘기 들으면 '바보' 하고 넘어간다.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나를 바라보는 남자들 시선 부담스럽기도"

- 성전환수술 뒤 남자친구를 사귈 때 어느 정도 이해를 해주는지.
"그런게 궁금하구나! 난 그(성전환수술 하기) 전부터 남자친구를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눴다. 지금 내 모습은 그때와 변한 것이 없다. 코수술을 하고 당시보다 머리가 좀 짧고 예전 몸매가 좀 더 좋았다는 정도가 변한 점이다. 남자친구 사귈 때마다 '너무 결혼하고 싶다'는 얘기 듣는다. 연예인 하기 전까지 '너만한 여자 찾기 힘들다'는 얘기 들었다. 궁금하면 한번 사귀어 보든지."

- 이제 법적으로도 여성으로 인정받고 살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여성이라기보다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으로 보일 때가 많다.
"가끔 그런 얘기를 듣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연예인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비쳐진 이미지다. 여자연예인들이 노출이 심하고 섹시하게 보이려고 하는 분위기다. 연예인으로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러한 이미지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평소엔 나도 편하게 입고 다닌다. 사실 '인간극장'에서의 모습(솔직하고 인간적인 하리수)을 그리워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상품인 연예인이다 보니.

처음 데뷔했을 때 사람들은 '하리수는 한두달이면 생명이 다할 것'이라고 화제성 연예인 정도로만 여겼다. 슬펐다. 사실 고민도 많이 했다. 버라이어티 쇼에서 오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여자로서 예쁘게만 보이고 싶은데 말이다. 당시 남자친구는 '방송에서 그런 모습 보이는 게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가수고 내 노래를 표현 한 것일 뿐이다. 솔직히 나를 성적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부답스럽다. 학생들도 사회 나가면 경쟁해야 한다. 지금 성적을 가지고도 그러는 것 아닌가. 나도 도태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도 그렇게 안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 누드집을 찍지 않았나.
"애환이 있다. 내가 '노랑머리2'에 출현했을 때 노출신이 많았다. 그런데 인터넷에 제 몸을 보고 '너무 남자 같다'는 말 있었다. 소속사에서 누드집을 기획했던 것이다. 난 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반은 후회하고 반은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면 데뷔 때보다 지금은 나이가 들었고 당시 몸매가 더 좋았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너의 몸은 나만 보고 싶다'고 해 누드찍은 걸 후회했다.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것이다."

"난 한 명의 사람일 뿐... 앞장 서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 하리수씨는 트렌스젠더의 희망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얘기 들으면 일단 쑥스럽다. 난 단지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여러분도 꿈이 있지 않나. 나는 한번도 여자가 된다는 꿈을 꿔본 적 없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냥 태어나서 살아오면서 사랑하는 대상이 달랐을 뿐이다. 그러면서 수술까지 생각했을 것이다. 가끔 '예뻐요'라는 소리 중에 '오빠'라고 하는 말도 들린다.

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 지지하고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앞장서서 운동을 하거나 할 수는 없다. 난 그냥 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날 보며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 여성과 연예인 지위를 얻었는데 어느 것에 더 만족하나?
"둘 다 만족하고 감사하다. 다만 앞으로 여자로서 연예인으로서 말고 아내로서, 훌륭한 연기자로서 가수로서 지위를 얻고 싶다."

- 연예인은 어떻게 됐는지.
"고등학교 때 이미 연예인을 꿈꿨다. 당시 모 연기학원을 다녔는데 선생님이 내게 '여자'역할을 시켰다. 그래서 내가 '저 남잔데요'라고 했더니 한순간 모든 시선이 모였다. '아 이곳 오래 다니기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6개월 코스였는데 2개월만 다녔다. 이후 탤런트 공채시험도 봤고 보조출연도 많이 했다. 하이틴 영화 학생 1, 학생 2로 출연했다."

"홍석천씨와 나 언론의 피해자"

- 처음에 홍석천씨와의 비교돼서 보도되곤 했는데.
"사실 내 고등학교 동창 중 이반(동성애자)으로 외국에 사는 친구도 있다. 사실 언론에서 홍석천씨와 날 갈라놨다. 하리수가 '게이를 싫어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말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언론의 피해를 본 것이다. 사실 최근 홍씨는 처음 만났는데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자연스럽게 서로 대했다. 난 홍석천씨의 용기를 높이 사고 싶다. 재기 성공을 축하한다."

- 가슴 수술은 어디서 했나?
"강남 모 병원에서 했는데 후유증 때문에 왼쪽 어깨가 아팠다. 목디스크에 걸린 것 같이 어깨에서부터 목까지 아팠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 재수술했다. 팬카페에서 따로 말해주면 내가 어느 병원인지 말해주겠다."

"타자에 대한 이해 넓히기 위해 강연 준비"
행사 준비한 서울미대 학생회장 강신현씨와 부회장 최유진씨

행사가 끝난 뒤, 이번 하리수씨의 강연을 준비한 서울미대 학생회장 강신현씨와 부회장 최유진씨의 표정 역시 밝았다. 강연이 성공적으로 치러진 까닭.

강씨는 이번 강연에 대해 "시간이 짧아 아쉬웠지만 연예인 하리수씨가 아닌 인간 하리수의 삶에 대해 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고 평가했다. 최씨 역시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만족해했다.

이번 강연을 준비하게 된 까닭에 대해 강씨는 "미술학도들이 타자를 보는 시각이 편협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미술하는데 지장을 준다. 사고를 넓히고 타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버렸으면 하는 생각으로 강연을 준비했다"고 답했다.

1달 전 하리수씨측에 강연을 부탁했을 때 의외로 쉽게 승낙을 얻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 행사가 끝난 뒤 만난 하리수씨의 기획사 직원은 "언니가 호기심을 가지며 흔쾌히 승낙했다"고 귀띔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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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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