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이것도 기사감이다"

기자정신 발휘하다 채일 뻔 했습니다

등록 2004.05.21 23:46수정 2004.05.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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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여자 친구를 만나러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게에서 일하는 여자 친구한테 문자가 날라왔습니다.


"밖에 시커먼 연기와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나서 무섭다."

내릴 곳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소방차 4~5대가 급하게 U턴을 해 버스 정류장 앞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a 사고현장에 출동한 소방차

사고현장에 출동한 소방차 ⓒ 김해영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앗 이것도 기사감이닷'하고 갖고 다니던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들고 버스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소방차가 서 있는 인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토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나는 주변 분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방금 화재 현장에서 탈출한 이들었습니다.

a 우왕좌왕하는 시민들

우왕좌왕하는 시민들 ⓒ 김해영

그분들에 따르면 11층 뷔페에서 2~3팀 80여명이 돌잔치를 하고 있었는데, 주방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소화기를 이용해 불을 끄는 동안 하객들은 계단으로 대피했다고 하더군요.


약 15분 정도 경과한 상황이었습니다. 11층을 올려다 보니 연기가 거의 걷혀있는 상태였습니다. 현장 사진이 더 필요하겠다 하는 생각으로 소방서 직원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화재 현장에는 산소 탱크를 메고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 10여명이 소화전을 연결해서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중이었고, 연기가 대충 빠진 상태였습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있는데, 여자 친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서 뭐하냐"구요. "11층에 있어 곧 내려갈께"하는 순간에 갑자기 시커면 연기가 다시 막 뿜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순간 독한 연기에 숨이 탁 막혔습니다. 저도 모르게 비상구 쪽으로 몸을 돌렸고, 옆에 있던 경찰서 직원들과 함께 연기를 피해 비상구로 나왔습니다. 여자 친구는 전화로 "빨리 내려오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a 이 사진 한장에 목숨을 걸 뻔 했습니다.

이 사진 한장에 목숨을 걸 뻔 했습니다. ⓒ 김해영

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가는데, 밖에서 여자 친구가 화가 난 얼굴로 서 있더군요. '니가 뭔데 거기를 기어올라갔냐'고 화를 내더군요. 그녀가 그렇게 화 내는 모습은 처음입니다.

저는 기자 정신 발휘해서 정확한 현장 사진을 찍고 싶었다고 여자 친구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더 화를 내더군요. 그래서 그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갔냐구요.

할말이 없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제가 갔던 곳이 큰 화재가 난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제 몸에선 연기 냄새가 풀풀 났구요.

저 때문에 밑에서 가슴 졸였다는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나머지 시간을 여자 친구 기분 풀어주는데 전부 소비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그 사건은 뷔페 주인의 요청으로 기사로 올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직원들이 신속하게 대응하여 부상자도 전혀 없었고, 자기네 가게에 불이 난게 뭐 자랑이냐는 주인의 말에 일리가 있어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하마터면 특종기사 한 건과 여자친구를 바꿀 뻔한 아슬아슬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전 현장 사진을 찍으러 올라가고 싶습니다.

이제는 디카와 함께 방독면도 하나 챙겨가지고 다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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