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 빛나는 작은 별 같은 '보라별꽃'

내게로 다가온 꽃들 (55)

등록 2004.05.24 15:17수정 2004.05.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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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별꽃이라고도 합니다.
뚜껑별꽃이라고도 합니다.김민수

'뚜껑별꽃'이라고도 불리는 한해살이의 보라별꽃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해 바닷가 풀밭이었습니다. 별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꽃들은 대체로 그 모양이 작습니다. 그렇게 작은 꽃이기에 무리 지어 피어있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운 꽃입니다.

쇠별꽃이나 개별꽃은 워낙 무리 지어 피어있기에 만나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남도의 바닷가 근처에서만 자란다는 보라별꽃은 올해 저에게 단 한 차례만 그 얼굴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별꽃처럼 작은 꽃들을 볼 때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땅에 내려와 핀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창조주가 밤에만 볼 수 있는 별을 땅에도 달아 놓은 것만 같아서 고맙게 느껴지는 꽃입니다.

김민수

지난 해 보라별꽃을 보았던 곳을 몇 번이고 가보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만나질 못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곳에서 몇 개체 피어있는 것을 보고는 좀더 퍼지면 와서 렌즈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가 5월 들어 자주 내린 비 때문에 출사를 미루고, 바쁜 일상 때문에 하루 이틀 보내다가 문득 '보라별꽃'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다른 풀들이 자라 있어 보라별꽃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이른봄부터 흔하디 흔하게 피우던 작은 꽃들은 큰 풀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개미자리도 이젠 피어있는 꽃을 찾을 수 없었고 쇠별꽃이나 개별꽃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왜 그렇게 작은 꽃들이 앞다투어 바쁘게 피어나는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잡초라고 부르는 꽃들이 왜 들판보다 뽑히고 또 뽑혀나가도 밭에 자리를 잡는지 알았습니다. 키가 큰 풀들과 경쟁이 안되니 들판에서 필 때는 다른 풀들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아무래도 큰 풀들이 뽑혀나가는 밭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더 좋은 환경이겠죠.


작은 텃밭을 살펴보니 그 곳에는 아직도 개미자리나 꽃마리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더군요. 괜스레 밭에 자리잡은 것이 아니었구나 생각하니 텃밭에 있는 잡초라고 불리는 것들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주고 싶습니다.

김민수

아주 먼 옛날 하나님이 하늘에 별을 달아 밤하늘을 예쁘게 만들어 가고 있을 때였어.


형형색색의 별을 만들어 하늘에 하나 둘 달아 주셨지. 그리고 별들이 힘들 때면 언제든지 유성이 되어 땅으로 내려갈 수 있게 하셨어. 우리가 별똥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인데 하나님은 그 별이 떨어지는 곳이 어딘지 알고 싶어서 발 보이라고 별똥들에게 꼬리를 달아주셨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 별똥의 꼬리만 보고도 하나님은 별들이 어디에 떨어지는 알 수 있었어. 어김없이 별들은 떨어진 곳에서 작고 예쁜 꽃들을 피웠단다.

그러니 하나님은 밤이 되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낮에는 땅에 피어있는 별들을 볼 수 있었지. 별똥별들에게 하나님은 선물을 주셨단다.

"애들아, 너희들이 땅으로 내려갈 때 선물로 무엇을 받았으면 좋겠니?"
"저희들을 보는 사람들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소원을 한가지씩 들어주세요."
"그래. 그러나 나쁜 소원은 안 되고, 딱 한가지 소원이다."

그래서 별똥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생기게 되었단다. 너희들도 밤하늘을 바라보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한 번 빌어보렴. 그러나 그 소원을 빌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아주 소중한 것을 마음 속에 담고 있다가 떨어지는 순간에 기도해야 하는 거야. 물론 예쁜 소원이어야 한다.

그런데 보라별이 있었단다.

무지개색깔 중에서 맨 마지막에 우리가 부르는 보라색말이야.

빨간색에서부터 별을 만드시던 하나님이 그만 보라별을 만들 때 저 동녘에서 해가 뜨기 시작한 거야. 하나님은 서둘러 별들을 만드셨지만 다른 별들보다 많이 만들지 못했단다.

그래서 다른 별꽃들보다 보라별꽃은 많이 볼 수 없는 거란다.


김민수

아이들에게 보라별꽃 이야기를 만들어서 들려주었습니다.

보라색이라기 보다는 파란색에 가까운 별꽃.

그 크기는 아이들 새끼손톱만 한 작은 꽃이라서 가녀린 꽃이 바닷가 풀밭에서 자라는 것만으로도 대견스럽습니다.

바다가 주는 잔잔함도 있지만 폭풍도 있고 거센 파도도 있으니 고난의 빛인 보라별꽃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고, 바다의 푸르름을 닮아 보라별꽃이지만 파란색을 가졌으니 바다의 마음을 닮은 듯도 하고, 작은 꽃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니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삶이란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거야 하고 말하는 듯 합니다.

김민수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꿈을 꿉니다. 들꽃들이 말을 건네오는 꿈입니다.

이미 어떤 분은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꽃이 말을 걸어오는 경험을 하셨다고 합니다. 참 마음이 깨끗한 분이셨겠죠.

만약 꽃이 내게 말을 걸어오면 난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너를 어떤 이름으로 불러주는지 아니?"하고 대화를 시작할 것입니다.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렴. 가장 행복했을 때와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니?"

"니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뭐니?"

김민수

그래요. 우리 곁에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들은 침묵함으로 우리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그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있는 것이 없는 법이니까요.

이제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작은 들꽃에서 이제는 나무들이 오랜 인고의 시간을 뒤로하고 꽃들을 낼 것입니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내어놓는 꽃이니 더욱 더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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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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