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 된장을 둘둘 끼얹어 비비면 밥이 따로 노는 수가 있습니다. 이게 싫으시면 쌀밥 두 술을 달라고 하세요.김규환
서러웠다. 배고파 서러웠다. 군것질거리도 안되는 것이 주식이었고 내다버려야 할 상한 음식이 먹을거리였다. 굶는 게 밥 먹듯 했던 그걸 아는 사람들은 누가 서럽지 않고 눈물겹지 않을까보냐.
천성과 식성은 못 버리는가 보다. 오늘따라 보리밥이 먹고 싶은 건 또 뭔 조화인가. 물리기보다 없어서 못 먹었지만 어느새 천덕꾸러기가 된 보리밥 타령을 하고 있으니 내 입맛 하나는 끝내준다. 제철을 놓치지 않고 땡기니(?) 말이다. 좋은 것 다 버리고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오늘 보리밥 한번 먹으러 가련다.
영양가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불리고 불리기를 반복하여 탱탱 불은 것을 가마솥에 달달달 끓여 김이 푹푹 쏟아지면 불 때기를 멈춘다. 한 짬 지나 한소끔마저 지피면 바닥에 다닥다닥 눌러 붙었다. 물을 붓고 주걱으로 득득 문질러 놓고 또 한번 불을 때면 누리끼리 까만 숭늉에 누룽지 한 양푼 그득이었지.
밥할 때 미리 집 된장을 두 숟가락 퍼 와서 뜨물에 멸치 몇 개 잘게 뽀사 넣고(빻아 넣고) 풋고추 송송 한두 개 썰어 넣으면 이보다 맛난 된장은 없다. 밥솥에 함께 앉히면 밥물이 넘쳐흘러 다소 짠듯하지만 더 진하고 좋다.
때가 때인지라 열무김치 두 종류로 하나는 생김치로 또 하나는 약간 삭혀 서늘한 곳에 뒀다가 큼직하게 올린다. 상추는 때마침 노지에 자란 것은 약간 씁쓸하겠지만 오히려 이게 입맛을 돋우는 데 일가견이 있다. 가위로 자르지 말고 손으로 툭툭 잘라 대충 올려 놓고 된장 끼얹어 밥을 비빈다. 약간 희끄무레하면 공장에서 나오는 고추장이 아닌 꼬창이나 꼬추장을 반 숟갈 넣고 장모님이 보내신 참기름 한 방울 쳐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