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다, 마음 공부 할 때구나!"

[대안학교 이야기] 원경고, 심성 계발 훈련 가져

등록 2004.05.25 21:00수정 2004.05.2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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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원경고등학교 마음공부 훈련

원경고등학교 마음공부 훈련 ⓒ 정일관

교무실 창밖에 엉겅퀴꽃이 솜털 같은 하얀 홀씨를 만들어 지나가는 바람에 실려 보내는 계절입니다.

5월 24일 원경고등학교는 심성 계발 훈련을 가졌습니다. 인성 교육과 체험 학습을 통해 대안적인 특성화 교육을 시행하는 학교의 위상에 걸맞게 원경고등학교는 매월 마음 공부 정기 훈련을 하고, 매년 봄 가을로 마음 공부를 포함한 심성 계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몸과 마음을 운전하는 실력을 기르게 하는 것이 훈련의 목적입니다.

오전에는 강당에서 학생 일부가 마음대조일기를 발표하고 지도인의 감정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함께 한 지도인은 원불교 마음공부 교령이신 장산(藏山) 황직평 종사님과 경주화랑고등학교에서 마음 공부를 지도하고 계신 이형은 교무입니다. 특히 장산 종사는 원불교 마음 공부를 처음 창안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했고, 원불교 교립 대안학교가 마음 공부를 교육의 바탕으로 삼도록 하신 분입니다.

a 장산 황직평 종사

장산 황직평 종사 ⓒ 정일관

아이들은 미리 기재했던 자신들의 일기를 가지고 나와서 대중들 앞에서 읽었습니다. 1, 2학년들은 주로 선생님과 겪은 갈등, 친구들과 부딪힌 문제, 담배 끊는 어려움, 학교 생활의 답답함, 소록도 봉사 활동을 갔을 때 겪었던 힘든 일들을 주로 발표했습니다. 이에 반해 3학년들은 진로에 대한 불안감, 시험과 성적 걱정,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염려, 자신의 몸매나 생활 습관에 대한 못마땅함 등에 대해서 주로 발표해 학년에 따른 관심의 다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a 마음 대조 일기 발표

마음 대조 일기 발표 ⓒ 정일관

이런 여러 가지 대상들이나 일과 상황들을 '경계'라고 합니다. 이런 경계를 만나 마음을 제대로 운전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장산 종사는 경계를 만날 때는 먼저 멈추는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멈추려면 "앗, 경계다. 마음 공부할 때구나!"하고 알아차리는 공부를 계속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좋고 싫고, 선하고 악함이 없는 원래 마음과 대조해 각자의 마음을 보고 살필 줄 알아야 하며, 상대의 시비를 볼 것이 아니라 그 눈을 돌려 내 마음과 깊이 만날 줄 알아야 힘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근본적인 은혜를 발견해야 트집이나 원망이 생기지 않아 길이 행복을 가꿀 수 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a <그림으로 마음 읽기>를 하고 있는 원경고 학생들

<그림으로 마음 읽기>를 하고 있는 원경고 학생들 ⓒ 정일관

한편 학생들의 일부는 멀티미디어실에서 합천군 청소년 상담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최문주님을 강사로 모시고 <그림을 통한 마음 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각자 마음 속에 떠오른 그림들을 그리고 그 그림을 공개한 후, 현재 그 학생의 심리 상태나 욕구, 정서를 토론으로 읽어 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시간에도 우리 아이들은 매우 활발하게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상대의 마음을 추리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를 보여주어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일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별 흥미를 가지지 않고 소극적이라 답답했는데,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속내를 무척이나 표현을 잘 하여 프로그램 진행이 재미있었다고 최문주님은 평가했습니다.

a 최문주 선생님

최문주 선생님 ⓒ 정일관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선생님들만 모여서 마음 공부 훈련을 했습니다. 선생님들 역시 교육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데리고 살면서 겪는 힘겨움과 갈등, 아픔과 슬픔, 일기를 읽으며 토로했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뚱뚱하다고 아이들이 별명을 '뽀식이'라 붙여 놀리는 경계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고, 어떤 선생님은 학교에 정착하지 못하고 전학 간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괴로움을, 또는 말 듣지 않는 아이를 빨리 고치려는 조급함에 끌려가는 자신을 보면서 느낀 점을, 또는 구체적으로 몇몇 미운 아이들에 대한 마음들을 낱낱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a 교사 마음공부 훈련

교사 마음공부 훈련 ⓒ 정일관

이런 일기 발표에 대해서 장산 종사는 경계마다 '온전한 생각'으로 깨어있기를 주문했습니다. 온전한 생각을 챙길 때가 낙원이고 부처 되는 때이며, 온전한 생각을 놓치고 요란하게 경계에 끌려가면 그 때가 지옥이요, 중생 되는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내 마음을 알고, 지키고, 잘 사용할 줄 아는 내적인 힘을 길러야 어떤 경계가 와도 내 마음을 잘 부려 쓸 수 있으므로, 부단히 정진하라고 감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안 교육을 하고 있는 이 일이 힘이 들지만 작은 일이 아니며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에 값진 것이라고 우리 선생님들에게 기운을 많이 주셨답니다.

원경고등학교의 마음 공부

"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돈이나 지식이나 권리가 많으면 그것이 도리어 죄악을 짓게 하는 근본이 되나니, 마음이 바른 뒤에야 돈과 지식과 권리가 다 영원한 복으로 화하나니라." <대종경 요훈품 4장>

원경고등학교는 개교부터 '마음 공부를 통해 행복을 가꾸는 학교'를 표방하였다. 위의 법문 말씀처럼 마음 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어 사람의 일생의 가치를 드러내게 하는 소중한 공부이다. 그래서 사람이 만나는 모든 대상들을 "경계"(만남에는 반드시 경계가 있다)라고 하여 그 경계를 당하여 요란해지고, 어리석어지고, 글러지는 각자의 마음을 멈추고 바라고 살피고 대조하여, 내 몸과 마음을 운전하는 실력을 길러 스스로 행복을 장만하게 하는 공부법이다. 마음을 사용하는 법이라고 해서 "용심법"이라고도 한다.

원경고등학교는 인성 교육의 중요한 바탕으로 이 마음공부법을 도입하여, 일주일에 1시간 마음 공부 원리 수업, 2시간 마음 일기 쓰기, 일주일에 3일, 방과 후에 자율적인 마음공부 심화학습, 매달 1회 마음공부 정기 훈련, 한 학기에 1회 전일제 심성계발훈련 등을 지속적으로 해나오고 있다. / 정일관
한 마음을 잘 쓰고 못 쓰느냐에 따라 일생과 영생이 판가름납니다. 이날 저희 원경고등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더 큰 스승님께 마음 잘 쓰는 법을 배워 정말 행복했습니다. 한 판의 승부가 아니기에 평생 해야 하는 공부이지만 천각(千覺) 만각(萬覺)을 하여 대각(大覺)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녁이 되자 학교 주변 물 댄 논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 소리가 그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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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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