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김치 담그던 날의 행복

김치에 참기름 넣어 싹싹 비벼 먹고 싶습니다

등록 2004.05.26 15:45수정 2004.05.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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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을 떨며 새벽 시장을 다녀온 아내가 열무김치를 담그기 시작했습니다. 긴 겨울 지나고 초여름의 더위까지 찾아온 지금에야 햇김치를 담그게 된 것은 장모님 덕분입니다. 겨우내 먹을 김장에 딸이 가져갈 양까지 더해 항아리에 담아 묻고 김치 냉장고에 보관해서 이따금 찾아오는 딸에게 들려 보낸 걸 지금까지 먹게 된 거지요.


그런 장모님의 고마움에도 불구하고 긴 겨울 먹어온 김치 대신 새로 담근 김치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군침이 돌았습니다. 아이들도 공연히 김치 담그는 엄마 주변을 빙빙 돌며 입맛을 다셨습니다. 아내는 그런 녀석들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습니다.

"이 열무김치 듬뿍 넣고 밥 비벼 먹으면 맛있겠다."
"맞아, 진짜 맛있을 거야."
"엄마, 우리 아침은 김치 넣고 기름 넣고 비벼 먹자."

이기원
아이들은 덩달아 맞장구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파, 마늘과 고춧가루, 멸치 액젓, 생강에 찹쌀풀을 넣어 골고루 섞는 아내의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후면 김치가 완성될 것 같습니다. 김치가 완성되기 전에 한가지 통과 의례가 있지요. 김치의 맛을 보라며 아이들 입에 넣어주는 것입니다. 아내가 김치를 담글 때면 아이들이 주변에 빙빙 도는 것도 그렇게 얻어 먹는 김치의 맛에 길들여진 탓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광수를 불렀습니다. 김치 맛이 어떤가 먹어 보라는 겁니다. 광수 녀석은 신이 나서 엄마 옆에 서서 입을 쩌억 벌렸습니다. 아내가 녀석의 입에 열무 김치 한조각을 넣어줍니다. 나도 달라며 준수 녀석도 입을 벌리고 달려듭니다. 그런 모습이 꼭 제비가 먹이를 물고 오면 어미를 향해 노란 부리 쩍쩍 벌리며 재재대던 새끼 제비들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싱겁지 않니?"
"아니, 싱겁지 않은데."
"그럼, 짜지 않아?"
"아냐, 맛있어."


아이들 차례가 지나고 나도 김치 한조각을 먹어 보았습니다. 매콤한 김치의 향이 입안 가득 퍼져갑니다. 우리 마누라 김치 맛이 최고라고 하니 아내는 아이처럼 좋아합니다. 오늘 아침은 햇김치 덕에 밥맛이 절로 날 겉 같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맞는 아침이 즐겁기만 합니다. 이 즐거움은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아내가 우리 가족에게 준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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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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