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플라타너스 61그루, 왜 베었을까?

전남대 후문 가로수, 느티나무로 수종 갱신 및 도로 보수 이유로 몽땅 잘려나가

등록 2004.05.26 21:53수정 2004.05.2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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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유난히 하늘이 맑았던 주말, 전남대 후문을 향해 기분 좋게 걷고 있었습니다. 헌데 길 저편에서부터 공사를 하는지 빨간 줄로 경계를 짓고 차량을 통제하더군요. 주위에는 흙먼지가 자욱하고 요란한 전기톱 소리가 귓가에 울렸습니다. 그때 제 눈 앞에서 커다란 플라타너스가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습니다.

전남대의 명물, 플라타너스 61그루 사라지다

a 울창한 플라타너스가 서 있던 자리에는 나무 밑동만이 비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울창한 플라타너스가 서 있던 자리에는 나무 밑동만이 비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 위정은

그동안 전남대 후문에서 학교 쪽으로 들어오는 길 옆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우거져 운치를 자아내고, 행인들에게 쉴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이후로 그 나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다만, 나무 밑둥만 남아 그곳에 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뿐입니다.

제가 이번 학기부터 전남대 교환학생으로 와서 가장 감동받았던 것은 바로 나무가 우거진 캠퍼스였습니다. 그렇기에 멀쩡한 나무를 사정없이 베어내는 장면에 큰 충격을 받았음은 당연합니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 두 아름은 족히 될 나무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놀라움과 슬픔, 무기력함과 궁금함이 동시에 일더군요. 나무를 자른 이유라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며칠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교목인 느티나무로 바꿔 심는 것은 상징적 의미"
옮겨 심는 것은 비용 부담 너무 커


a 공사 안내판에는 "나무를 61구 제거하고 도로 공사를 할 것'이라는 계획이 명시돼 있다.

공사 안내판에는 "나무를 61구 제거하고 도로 공사를 할 것'이라는 계획이 명시돼 있다. ⓒ 위정은

전남대 시설과에 전화를 걸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토목 담당자는 "플라타너스가 너무 오래 돼서 수종 갱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플라타너스를 베어낸 자리에는 지난 2월 동문들로부터 기증 받은 느티나무를 심을 계획이며, 교목인 느티나무를 심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오래된 도로와 인도를 보수·확장하기 위해서"라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느티나무를 심고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서라면 플라타너스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을 수 있지 않느냐"고 묻자 담당자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답했고 "현 공사는 2001년에 결정된 사항이며 당시 학내 여론을 수렴했다"고 말했습니다. 여론 수렴 대상이나 과정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학내 언론도 아닌데) 밝힐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전남대 한 학생은 "2001년 당시 여론을 수렴한 것은 '교목 개정'에 대한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후문 쪽 플라타너스를 베어내고 느티나무를 심는 이번 공사에 대해 대다수 구성원들이 모르고 있었을 것"이라며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후문에 나무 다 잘라버린 거 봤어야?"
학생 대다수 나무 잘라낸 이유 몰라


실제 대다수 학생들은 '왜 나무가 사라졌는가'를 모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침에 학교에 와서 보니 금요일까지만해도 울창했던 나무들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따름이었습니다. 후문을 지나는 학생들은 저마다 "후문에 나무가 싹 없어졌다"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알리기도 했습니다.

플라타너스가 주는 운치와 나무 그늘이 없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도 컸겠지만, 한 마디 말도 없이 학교의 나무가 잘려나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학내 구성원들에게 준 무력감 또한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귓가에 맴도는 플라타너스의 비명

a 남겨진 나무 밑동을 보면 빈자리에 대한 슬픔과 아픔이 느껴진다.

남겨진 나무 밑동을 보면 빈자리에 대한 슬픔과 아픔이 느껴진다. ⓒ 위정은

나무들이 휑하니 잘려나간 길에서는 이제 도로 공사 준비가 한창입니다. 빈자리를 보고 경악했던 마음들도 이제 서서히 무뎌져 가겠지요. 하지만 플라타너스가 사라진 자리에서 생겨난 제 마음의 빈자리는 그리 쉽게 채워질 것 같지 않습니다.

나무 한 그루에 담긴 소중한 가치는 누구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 나무를 '처리'하는 것에는 신중한 절차와 판단이 따라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아직도 제 귓가에는 동강난 채로 굴삭기에 실려가던 플라타너스, 그 나무가 내지른 비명이 너무나 선명하게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의 자랑이었는데 말야"
플라타너스가 잘려나간 현장에 있던 학생과의 대화

▲ 전남대 곳곳에서는 울창한 녹음이 햇볕 아래 반짝거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지난 23일 일요일. 전남대 후문을 지나다 플라타너스를 잘라내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한 학생은 "왜 자르는 거냐"고 물었더니 관계자로부터 "길을 넓히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공사장 아저씨들이 나무를 잘라서 포클레인에 실어 가는데 어떤 꼬마애가 '저 큰 나무 왜 가지고 가는 거야?'라고 엄마, 아빠한테 묻는거야. 나한테 물은 것은 아닌데, 얼굴이 화끈거리더라고. 그 아이 엄마도 '이젠 놀러도 못 오겠네'라고 하는데 정말 창피했어."

이어 그는 "우리과 교수님 중 한 분이 우리 학교에 와서 제일로 인상깊었던 게 푸른 나무가 많다는 것이었대. 다른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니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는데…"라며 잘려나간 플라타너스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또 "4년 내내 학교를 다니는 동안 공사는 또 얼마나 자주 했는지. 공사를 하려거든 사전에 무슨 공사를 하는지 알려 주면 좀 좋아? 도대체 무슨 공사를 하는지도 모르는데 맨날 공사를 한다니까"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 위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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