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떠난 사찰기행

천왕사-혜능사-관음사-평화통일불탑사까지

등록 2004.05.27 11:18수정 2004.05.2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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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기부처에 욕불을...

아기부처에 욕불을... ⓒ 김강임

한라산 언저리에 자리 잡은 천왕사 앞마당에는 하루 종일 무지개가 떠 있었다. 일곱 빛깔 무지개가 이렇게 고왔던가? 바람에 흔들리는 축등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불기 2548년 부처님 오신 날, 남편과 나는 평소 인연을 맺은 사찰을 방문하기로 했다. 사실 우리 부부는 사회단체 붓다 클럽 회원으로 있으면서도 각자 직업에 쫓기다 보니 그동안 초하루 예불 한번 참석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모처럼 집을 떠나 길에 서니 가슴이 설렌다. 더욱이 오늘은 부처님의 생일이니 초대받은 손님처럼 마음이 부풀어 있다. 1100도로를 향하는 길은 언제 달려도 기분이 알싸하다. 한라산을 눈앞에 보며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차안에서 흐르는 '천수경'과 '관세음보살'을 따라 부르니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는다. 잠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세상에 태어나 욕심을 버리며 산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 인 것 같다. 그래서 늘 산사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여유를 배운다.

a 수수께끼 같은 천왕사 돌부처의 모습

수수께끼 같은 천왕사 돌부처의 모습 ⓒ 김강임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사찰이라는 천왕사. 다행히도 오늘은 천왕사를 감싸고 서 있는 돌부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항상 안개에 덮여 수수께끼처럼 서 있는 돌부처를 향해 사람들은 합장을 했다. 아마 산언저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돌부처는 중생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수호신이었을 게다.

a 대웅전에는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

대웅전에는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 ⓒ 김강임

대웅전에 들어서니 기도에 열중하는 중생들의 모습이 참으로 진지해 보였다. 동자 승 앞에 매달아 놓은 축등이 인상적이다. 남편과 나는 1년 내내 우리 가족이 무사하길 비는 마음으로 연등을 달았다. 어두우면 더욱 빛을 발한다는 촛불처럼 살아가길 소망하면서.

a 동자승의 모습

동자승의 모습 ⓒ 김강임

"부처님의 도량에 오셨으니 공양을 하고 가셔야지요."

천왕사의 앞마당에서 만난 주지 원혜 스님의 말씀이시다. 산사에서 먹는 비빔밥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도라지와 고사리, 취나물과 콩나물에 고추장을 비벼 먹는 그 맛. 남편과 나는 아침 겸 점심을 부처님의 도량에서 먹을 수 있었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제주시를 벗어난 조그만 절 집 혜능사다. 아이 둘이 고3에 진입했을 때 마음에 위안을 주신 스님이 계신 곳이다. 천왕사에서 인연을 맺은 혜각스님은 일류 대학만을 고집하던 나에게 늘 정도의 길을 걷게 인도해 주셨다.

바쁘다는 핑계로 비록 1년에 한번, 그것도 부처님의 생일 때만 찾아가는 혜능사에서 남편과 나는 잠시 무거운 짐을 놓고 쉬어 갈 수 있었다. 그것은 부처님의 도량에서 느낄 수 있는 깨달음, 곧 나를 버릴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생일 불공을 끝낸 혜각스님은 중생들의 손목에 염주를 끼워 주셨다.

" 보살님! 산에서 직접 뜯어온 무공해 산나물입니다. 한번 드셔 보세요."

갖가지 산나물을 듬뿍 담은 비빔밥을 권하는 혜각스님의 마음을 거절하지 못하고 다시 목구멍에 채워 넣기 시작한 비빔밥은 우리를 배불뚝이로 만들었다. 마치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없이 채우려는 욕망처럼.


오후가 되면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불교 합창단으로 활약하면서 인연을 맺은 관음사로 발길을 돌렸다. 관음사는 빗속에 젖어 있었다. 큰 사찰이라서 그런지 부처님을 만나러 오는 중생들의 발길은 그칠 줄을 몰랐다.

a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 김강임

어느 누군가가 돌부처에게 바친 꽃다발이 눈에 띄었다. 부처님의 생일에 한아름 꽃다발을 전할 수 있는 사랑. 누가 저 돌부처에게 꽃을 선물하였단 말인가?


a 축등만큼의 자비가 이 땅에...

축등만큼의 자비가 이 땅에... ⓒ 김강임

관음상의 앞마당에는 축등만큼이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기 부처에게 욕불을 시키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진지해 보인다. 은 쟁반에 서 계신 아기 부처님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다. 아기 부처의 정수리에 감로수를 부어주는 저 손길의 따뜻함을 누가 알랴?

대웅전에서 삼배를 마친 우리 부부는 미륵대불전에서 관음사 성역화 불사의 일환으로 만불봉안 1차 봉불식에 참석했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하얀 고깔을 쓴 불상의 모습을 보니 문득 학창 시절 애송했던 조지훈님의 '승무'가 생각난다.

a 부도와 공덕비의 뜻을 기려

부도와 공덕비의 뜻을 기려 ⓒ 김강임

우산 속에 몸을 감춘 우리 부부는 부도와 공덕비 앞에서 한참동안 비문을 읽어 내려갔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세상에 태어나서 공덕을 쌓으며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소망이다.

" 우리 좀더 빨리 걸어 봅시다" 라는 남편의 말에 나는 " 부처님의 도량에 왔으니 오늘만이라도 마음을 비우며 느긋해 집니다"로 화답했다. 그렇다. 사찰의 일주문 앞에 들어서면 세상 밖의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어서 편안하다. 사람들은 흔히 '깨달음'을 아주 대단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깨달음은 잠시 나 자신을 버리는 작업이다.

a 평화통일불사리탑

평화통일불사리탑 ⓒ 김강임

마지막으로 우리 부부가 찾아 간 곳은 북제주군 조천읍 관내에 있는 '평화통일불사리탑'이었다. 길을 걷다 자주 스치는 평화통일 불사리탑은 발길 머물 시간이 없어 늘 그냥 스쳐가는 사찰이다.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우리 국토의 남쪽에서 바다를 건너 바라보는 대불전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천읍 신촌리에 접어들면 멀리서도 눈에 띄는 반구 모양의 독특한 건축물이 우측에 보인다. 안에 모셔진 불상의 규모도 어마어마하며 이곳에 진신 사리가 모셔져 있다.

a 경건한 마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 김강임

그래서인지 평화통일불사리탑에 계신 부처님의 모습 앞에 서니 우리는 아주 작아 보였다. 우리보다 먼저 온 중생이 부처님 앞에 넙죽 삼배를 올린다. 마치 피뢰침처럼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사찰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우리 부부는 " 우리! 무거운 보따리, 이곳에 맡겨두고 갑시다!" 라며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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