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박철
아내는 거의 화장을 안 한다. 화장을 안 하니 화장품을 사게 되는 경우도 없다. 돈을 주고 옷을 사 입는 경우도 없다. 일년에 서너 번 미장원에 가서 파마를 하는 것이 유일하게 자신을 위한 치장이라고 할까? 돈이 없어 미장원을 못 간다고 툴툴거릴 때 얼른 돈을 내주면 좋을 텐데 지갑에 단돈 천원이 없으니 나도 딱할 노릇이다.
어제 저녁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은빈에게 아내가 말을 건넨다.
"은빈아, 엄마가 머리 파마를 좀 해야 하겠는데 돈이 없어 못한다. 네 돈 좀 빌려줄래. 엄마가 다음달에 꼭 갚을게."
“엄마, 머리 파마하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데?”
“응, 1만7000원인가?”
“엄마, 그럼 잠깐만 기다려요.”
은빈이는 우리집에서 짠순이로 통한다. 돈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 올 설날 때 어른들에게 세배하고 받은 돈부터 가끔 받는 용돈을 헌금하는 것 외에는 하나도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아두었다가 몇 달에 한 번 은행에 저축을 한다.
내가 가끔 용돈이 떨어져 은빈이에게 돈 좀 빌려달라고 해도 잘 빌려주지 않는다. 마지못해 빌려주는 경우에도 약속한 날에 반드시 갚아야 한다. 그런데 아내가 머리 파마를 하겠다고 파마 값을 빌려달라고 했더니 군말 한마디 없이 자기 방으로 돈을 가지러 달려간다.
은빈이가 빳빳한 만원권 지폐 두 장을 들고 거실에 나타났다.
“엄마, 이 돈으로 머리 파마하세요. 엄마한테 빌려주는 게 아니고 그냥 드리는 거예요. 천원짜리가 없어서 만원짜리 두 장을 드릴 테니 대신 거스름돈은 꼭 갖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