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속 한여름낮의 연주회가 열리다

[대안학교 이야기] 원경고, 관악합주부 발대식과 자축 공연 가져

등록 2004.05.29 14:47수정 2004.05.2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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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면서 산마다 구름 안개를 만들었습니다. 토요일인 29일 오늘은 다행히 하늘이 말끔히 갰습니다. 새벽부터 햇살이 어찌나 쨍쨍하던지 초여름의 후끈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온이 높다기보다는 어제 내린 비로 습도가 매우 높은 날씨였습니다.

이제 보리가 누렇게 익어 머리를 들고 바람에 일렁입니다. 물을 가득 끌어 들인 논에 하늘이 비치고 있고, 모심기도 곳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도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손길처럼 바쁘게 꼼지락거렸습니다. 바로 원경고등학교에서 관악 합주부를 창설하는 발대식을 가지고 자축 공연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 관악 합주부! 말만 들어도 기쁘고 설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a 흐뭇한 표정의 정연수 교장 선생님

흐뭇한 표정의 정연수 교장 선생님 ⓒ 정일관

사실 관악 합주부는 우리 학교 정연수 교장 선생님의 비원이었습니다. 재작년 저희 학교를 부임하시면서 세운 첫번째 목표가 모든 학생들에게 악기 하나씩 연주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건이 되지 않아 실행하지 못하다가, 올해 3월 도서관을 비롯한 신관 건물을 짓고 난 다음 음악 연주실로 한 개를 배정했습니다. 그 다음 자율학교 지원비를 몽땅 투자하여 우선 관악기만 구입했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오늘 원경고등학교 관악 합주부 발대식과 자축 공연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10시가 되자, 학생들은 교실에 있는 걸상을 가지고 나와서 음악 연주실 앞마당에 자리를 마련하느라 부산했습니다. 자축 공연을 위해 초빙되어 온 연주자들의 관악기 연습 연주로 일순간 학교가 풍성한 잔치 분위기로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a 연주하고 있는 음악 선생님과 그 지인들

연주하고 있는 음악 선생님과 그 지인들 ⓒ 정일관

그런데 문제는 찌는 듯한 날씨였습니다. 5월도 봄이라 가볍게 생각하고 실외 연주를 택했는데, 막상 자리를 잡고 보니 마치 찜통 속에 들어 앉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도 더운지 시작부터 울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장소를 바꿀 수도 없어서 더위쯤은 음악으로 날려 버리자고 하면서 참기로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한여름밤의 연주가 아니라 한여름낮의 연주가 되었다는 사회자의 말에 모두 웃었습니다.

a 음악 교사 김봉겸 선생님의 튜바 연주

음악 교사 김봉겸 선생님의 튜바 연주 ⓒ 정일관

간단한 식전 행사로 교장 선생님의 축사와 함께 합주부 발대를 진리 전에 고하는 기도를 간절히 올리고 나서 연주를 했습니다. 연주는 우리 학교 음악 교사인 김봉겸 선생님과 그의 지인들이 함께 꾸민 무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트럼펫 2대와 트럼본 1대, 호른 1대와 튜바 1대가 어우러지는 무대였습니다. 연주 전에 각 악기의 소리를 내어 그 소리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a 땡볕 속에서 연주를 감상하고 있는 원경고 아이들과 선생님들

땡볕 속에서 연주를 감상하고 있는 원경고 아이들과 선생님들 ⓒ 정일관

1학년 안제용 학생이 클라리넷으로 <마이 웨이>를 연주하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준비한 절편을 나누어 먹으며 음악 연주실에 전시된 악기를 둘러보는 것으로 모든 행사가 끝이 났습니다. 30분 정도 걸린 아주 작은 음악회였습니다.


오늘 원경고등학교의 관악 합주부 발대식과 자축 공연은 원경고등학교가 7년 전에 개교한 이래 학교가 새롭게 변화하고 도약할 수 있는 특별한 계기가 되는 행사임이 분명합니다. 대안학교를 선택한 아이들에게 악기 연주 체험을 통해 인성 교육을 도모하고자 시도하는 큰 걸음이 될 것으로 저희들은 믿습니다.

a 1학년 안제용 학생의 클라리넷 연주

1학년 안제용 학생의 클라리넷 연주 ⓒ 정일관

특히 문화적인 접촉이 부족한 문화 소외 지역에 있으면서, 문화 예술과 학생들의 만남을 꾸준히 주선해 온 우리 학교로서는 학생들의 정서 순화와 인성 교육을 위해 내적인 역량을 기르는 소중한 계기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한 걸음 내디뎠습니다. 앞으로 관악 합주부가 순조롭게 결성되고, 많은 어려움과 경계들을 굳은 의지와 신념으로 잘 극복하길 바랍니다. 우리 관악 합주부가 대안 교육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이로써 우리 아이들이 음악 속에서 행복해지고, 저희 학교가 음악 속에서 성숙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a 악기를 전시한 음악실

악기를 전시한 음악실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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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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