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 연극의 진수 <의자는 잘못 없다>

[연극리뷰] <의자는 잘못 없다>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공연 중

등록 2004.05.31 10:45수정 2004.05.3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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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완자무늬


명동에도 연극 공연장이 있다. 시끌시끌한 번화가 한복판이 아닌 명동 외곽 운치 좋은 곳에 소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다가 3월 1일 재개관한 `삼일로 창고극장'(옛 명동창고극장)이 그곳이다.

근처에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70년대 풍의 작은 카페가 몇 있고 조인성, 전도연 주연의 <별을 쏘다>를 촬영한 장소도 있는 꽤나 분위기 있는 곳에 위치해 있는 삼일로 창고극장. 대학로 못지 않게 연극을 즐기기에는 더 없는 최적의 장소인 이곳에서 <의자는 잘못 없다>가 앙코르 공연 중에 있다.

<의자는 잘못 없다>는 소극장이 지향해야할 모범극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소수의 배우로 상상력이 뛰어난 재미나고 실험적인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있는 것.

공연장에 들어서면 달랑 의자 하나가 전부다. 백 스크린엔 시민들이 걷는 일상 풍경을 영사한다. 그리고 돈 맥클린의 노래.

연극은 의자 하나를 두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간다. 의자에 첫눈에 반한 남자, 의자를 돈 주고 살 수 없다는 그의 아내, 의자를 만든 미대생, 의자를 거저 줄 수 없다는 그녀의 아빠. 이 넷은 서로 의자를 두고 다툰다.

그 과정에서 의자 소유권을 두고 재기가 돋보이는 재미난 일들이 벌어진다. 그 중 압권은 3만원을 챙기기 위해 강명규(배수백 분)가 꾸민, 절망해 자살한 고흐 에피소드. 탐욕적인 인간을 잘 희화화해 보여주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주제가 'A time for us'가 흐르고 꽃비가 내리는(종이조각으로 꽤나 판타스틱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운데 펼쳐지는 후반부의 무협버전 의자 쟁탈전. 이는 상상력이 어디까지 미쳐 극을 윤택케 하고 관객에게 재미까지 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타 소시민 부부의 궁합과 소유욕을 보여주는 타이타닉 에피소드와 빨리 돌리기로 처리된 문덕수(김경수 분)의 주거 침입 장면 등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소품이 배제된 소극장 극을 경박하지 않으면서 경쾌하게 환기시킨다.

강명규 역의 배수백은 마른 체구에서 풍부한 성량을 자랑한다. 그는 무대에서 자유롭게 극을 즐긴다. 첫인상은 마치 무말랭이 같은데 차츰 곁에 두고 싶은 이웃의 모습으로서 매력을 더해간다.

문덕수 역의 김경수는 풍부한 외모와는 다르게 꽤나 귀여운 모습을 보여준다. 강명규와 송지애 부부의 집에 침입해 빠른 플레이 연기를 보여줄 땐 객석을 뒤집어놓을 정도다.

송지애 역의 천정하는 무섭고도 사랑스런 아내역으로 인상깊은 연기를 선보인다. 문선미 역의 강혜련은 연극계에 보기 드문 미인배우로서 아직 진중한 드라마 연기에는 부족한 점이 보이지만 후반 무협버전에서 보여준 만화캐릭터 같은 귀여움의 극치는 많은 팬을 모을 정도로 스타성을 갖고 있다.

처음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던 의자는 점차 존재감을 갖고 마지막에는 하나의 캐릭터로서 배우들과 함께 무대인사를 한다. 이것이 <의자는 잘못 없다>에서 눈여겨볼 장점이다.

<의자는 잘못 없다>처럼 4명의 배우로 극을 올린 개관작 <사랑하며 반항하며> 때도 그랬지만 앞으로 창고극장에서는 창고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다채롭고 실험적이고 의식 있고 아이디어 번뜩이는 극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런 차별화는 연극촌이 형성된 대학로와 비교되는 지역적 취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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