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히 고소한 냄새 “확” 다가왔지만
25년만의 보리 꼬실라먹기 쉽지 않았다.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58]풋보리와 죽순회

등록 2004.06.01 15:44수정 2004.06.0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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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김세종이가 보리를 먹으려 합니다.
조카 김세종이가 보리를 먹으려 합니다.김규환

죽순을 몇 시간 우려 독을 빼고 초고추장에 찍어 드셔보세요. 고향이 새록새록 씹일 겁니다.
죽순을 몇 시간 우려 독을 빼고 초고추장에 찍어 드셔보세요. 고향이 새록새록 씹일 겁니다.김규환
어느 만화가와 한 약속 “우리 6월에 보리 꼬실라 먹으러 가자.”


그간 내 삽화를 그렸던 김용철씨는 추억이 나랑 비슷한 데가 많다. 곧잘 한두 마디 듣고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글을 보면 더 빼어나게 그렸다. 용철씨와 나는 홍어 먹기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2년 여 심취하여 경쟁하며 살았다.

그런 그와 이른 봄 순천낙안읍성에 갔을 때 보리밭을 보며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둘이서 꼭 보리를 꼬실라 먹으러 다시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거리도 거리지만 일정을 맞추기 쉽지 않았지만 그러기로 철석같이 약속했다. 그만큼 우린 어릴 적 먹던 심심풀이나 허기를 채운 추억의 음식에 폭 빠져있었다.

‘이런 정신머리 없는 놈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보리 몇 알 구워 먹으려고 그 먼데까지 간단 말인가?’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주말을 이용해 목포까지 홍어와 세발낙지를 먹으러 두 번이나 같이 갔고 서울에서도 시내 어딘가 맵고 깔끔하며 고향 맛 나는 음식이 있다면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함께 갔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번엔 서로 연락이 닿지 않아 혼자 장성을 거쳐 시골 형님 댁에 가는 도중에 보리를 얻었으니 우리 가족끼리 먹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그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서울까지 갖고 올라가서 그런 궁상을 떨 수는 없었다.

시골집에 잠을 자서인지 새벽같이 일어나 보니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갑자기 한 시간 여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더니 여섯시를 조금 넘기면서부터 가늘어졌다. 문을 연 순간 집 주위엔 예닐곱 가지 새소리가 섞여 상쾌한 아침을 연다. 전날 이렇게 시원한 비가 쏟아지려고 그리 더웠나 보다.


‘큰 일 났네. 어제는 파 뽑아와 다듬어주고 저녁밥 먹다보니 하루가 갔는데 오늘까지 비가 오면 정말 안 되는데. 어쩌지. 서울로 그냥 싣고 올라가야 하나?’

날씨마저 돕지않았다. 아이들이 먹는 모양을 사진기에 담아보고자 한 내 지나친 욕심을 시샘이라도 한 걸까?


비 맞고 쑥쑥 자라나는 죽순 한뼘 길이가 맛이 좋습니다. 1년 생에서는 죽순이 나오지 않는다죠?
비 맞고 쑥쑥 자라나는 죽순 한뼘 길이가 맛이 좋습니다. 1년 생에서는 죽순이 나오지 않는다죠?김규환
우후죽순을 만나러 가는 길

그렇다고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형! 항올에 죽순 있을까?”
“하마 끝물일 거다.”
“어? 어제 장성에서 먹었는데. 여기가 더 고지인데 좀 있지 않겠어?”
“몰라. 하여튼 장담은 못하고 아버지 산소 근처 큰집 대밭에 없으면 바로 내려와서 사과밭으로 가봐라.”
“한번 가보지 뭐.”

형은 눈 녹은 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죽순 한번 먹어보지 못하고 봄을 거의 다 보내고 있었으니 여유는 훨씬 내가 더 부리며 사는 건가. 차를 뒤로 빼라고 하니 오른 김에 가는 길만 시오리 길인 고향 마을로 차를 몰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데도 우산과 우비도 챙기지 않고 배낭만 지참하고 훌쩍 떠났다.

난 시골에 가면 언제나 바쁘다. 평소와 같이 늦은 시각 잠자리에 들어도 새벽만 되면 깨어 남들보다 두어 시간 먼저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주변 산과 들을 쏘다니며 나물이나 약이 될만한 것과 한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기 바쁘다. 특히 이번엔 죽순과 보리를 먹어야 하니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차를 몰아가던 중에 빗발이 더 굵어진다. 차에서 내리자 빗물이 금세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지만 예까지 온 것 중도에 포기할 수 없었다. 일단 가보기로 했다.

비가 오는데도 불을 피웠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불을 피웠습니다.김규환
고사리도 비온 다음날 쑥쑥 자란다. 그 뿐인가. 세상의 모든 식물이 비를 먹고 하루가 다르게 커 간다. 가던 길에 갈대 새순이 무척 자라 있었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랬지. 그래 죽순도 몇 개는 쇠어서 사람 키보다 더 컸을 테지만 그래도 몇 개는 새로 올라오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대밭으로 갔다.

예전 50여 평 남짓 하던 밭도 죄다 대밭이 되었고 뒷산도 꽤 넓게 대가 차지하고 있다. 난 그 자리에서 자주 할머니를 뵈었다. 아흔 여섯까지 사셨지만 두 며느리들 먼저 보내고 아흔까지 물 건너 밭에 다니셨다.

입구에 가보니 누군가 벌써 다녀간 듯 죽순 껍질이 널려 있다. 대밭 그 어둠침침한 속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들어갔다. 하나 둘 셋 죽순이 먹기 좋을 만치 자라있다.

정말 오랜만에 죽순을 만져보는 순간이다. 늘 보리가 익어가고 모내기가 한창일 때 가죽나무 말려 볶고 튀기듯 내온 나물과 함께 나와 우리를 즐겁게 했던 죽순나물. 된장국에도 어울리고 조기찌개에도 그만이다. 그냥 회로 초고추장에 찍어도 일품이다.

툭 쳐서 몇 개를 뽑아 밖으로 던져놓고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움직일 때마다 빗방울이 떨어졌다. 몸이 흥건히 젖었건만 바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산중이나 마찬가지인 대밭이지만 몇 번이고 와봤던 곳이라 무서움은 없다. 산 위까지는 가지 않고 30여 분 조심히 발을 옮겨 뽑다보니 허기도 지고 가방에 가득할 만큼 넉넉히 뽑았다. 비 맞은 닭대가리 모양을 하고 골짜기를 내려왔다.

무거운 짐을 부리고 차에 타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밥 먹으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절반은 서울에 가져갈 내 몫으로 남겨두고 가지고 들어갔다.

파릇파릇한 보리이삭을 올려 꼬실라(구워) 보세요. 부르르 떨며 까끄라기가 탑니다.
파릇파릇한 보리이삭을 올려 꼬실라(구워) 보세요. 부르르 떨며 까끄라기가 탑니다.김규환
보리 꼬실라먹기 생각같이 쉽지 않았다.

일단 아침을 먹고 주위를 살폈다. 비가 잠시라도 그치면 빤할 때 불을 피울 생각이었다. 후딱 해치우고 서울로 뜰 참이었다. 마당에도 물이 고였고 어젯밤 갖다놓은 나뭇가지는 비에 젖어 흐느적거린다.

가져온 죽순이라도 삶아 회로 좀 먹어보려고 아내와 형수에게 방법을 가르쳐주고 궁리를 했다. 평소 형과 일을 같이 하던 후배 한명이 와 있다.

“야 봉석아. 방법이 없겠냐?”
“저걸로 타겠어요?”
“그래도 어떻게 해보자. 니네 동네에 가서 나무 한 다발 가져올까?”
“누가 불 때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제.”

주위를 둘러봐도 마른 땔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서성였다.

“야 이리와 봐. 여기 삼나무와 편백나무 울타리를 조금 걷어 가자. 처음만 붙이면 그래도 탈 거야.”

세워져있어 그나마 덜 젖은 몇 가지를 가져가 기존에 있던 나무와 함께 종이쓰레기를 태우니 불이 붙었다. 잘 될지 걱정이었다. 일단 불을 피워 잉걸을 모아주고 거의 다 타들어갈 무렵 차 짐칸에서 어제 장성에서 얻어온 파릇파릇한 보리 줄기를 뿌리째 꺼내왔다.

불이 일부에선 타고 있다. 넣을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예전 같으면 상황판단이 쉬웠을 텐데 오랜만에 하는 일이라 불 위에 올릴 순간을 포착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집 안엔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냥 올려보기로 했다.

이삭이 줄기에서 떨어질 때 쯤이면 손으로 얼른 훑어 더 타는 걸 막아야 되죠.
이삭이 줄기에서 떨어질 때 쯤이면 손으로 얼른 훑어 더 타는 걸 막아야 되죠.김규환
보리 이삭을 불에 올리니 파르르 까끄라기가 먼저 탄다. 다시 뒤집으니 더 타들어간다. 탄 곳 절반이고 푸르댕댕 멀쩡한 것이 반이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가만 있어봐 불이 문젠가? 분명 어렸을 때도 이렇게 파릇한 걸 꼬실랐는데.’

일단 조금 그을리듯 태우자 이삭이 고개를 푹 숙인다.

‘그래! 이거야. 줄기와 이삭이 분리되면 알갱이만 따서 불가에 두면 서서히 익게 되겠지.’

세 번에 나눠서 얇게 펴서 불 위에 올렸다. 첫 번째는 너무 까맣게 탔다.

더디기는 했지만 실로 보리 구워 먹어보기는 25년 만이다. 벌써 그 세월을 훌쩍 떠나보냈다니. 중학교 진학 이후론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그 향기가 고소하게 내게로 다가왔다. 두 번째는 불꽃도 적당하여 알맞게 익었다. 고소한 보리냄새가 났다.

세 번째는 불이 너무 사그라져 여간 수월치 않다. 아직 풋풋한 기운이 더 많아 연기가 솔솔 주위를 맴돌았다. 무슨 수를 써볼 수도 있었지만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 탓인지 오전 10시쯤인 그 때 만사가 귀찮아졌다. 한번 세 개를 비벼서 먹어보고 나서 사람들을 불렀다.

“야! 한글아 세종아 해강아 솔강아 이리 나와 봐. 보리 먹자.”
“예?”
“작은 아빠가 보리 꼬실랐으니까 와서 먹으라고.”

떨어진 건 잔불에 슬슬 익는듯 마는 듯 해보세요.
떨어진 건 잔불에 슬슬 익는듯 마는 듯 해보세요.김규환

서너 개 주워서 양손을 감싸고 비벼주세요. 뜨거울 겁니다. 이리 저리 옮기면서 불어주다보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됩니다. 잘 안 까지는 건 다시 불에 올려 놓기 바랍니다.
서너 개 주워서 양손을 감싸고 비벼주세요. 뜨거울 겁니다. 이리 저리 옮기면서 불어주다보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됩니다. 잘 안 까지는 건 다시 불에 올려 놓기 바랍니다.김규환
아이들을 불러내 까맣게 탄 듯한 보리이삭 다섯 개를 두 손 사이에 넣고 비벼댔다. 연변이 고향인 형수는 먹어볼 생각이 없는가 보다. 후배와 아내, 아이들 넷에 나까지 일곱 명이니 숫자는 그 전만큼은 된다.

“앗 뜨거워 진짜 뜨겁소.”
“봉석아 오늘은 왜 이리 뜨겁냐?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왼손 오른손 번갈아 “후후” 불어주고 또 옮겨가며 몇 번을 더 비볐다. 손이 더 커졌는데도 자꾸 보리 알갱이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때엔 뜨거운 줄 모르고 잘도 비벼댔는데 지금은 왜 이리 뜨거운가. 더군다나 그 땐 싹싹 두어 번만 문지르면 보리알이 금방 분리되어 튀어 나왔었다.

손바닥 위에 있던 까끄라기와 껍질을 몇 번 불어주니 파랗거나 새까맣게 탄 것, 껍질이 붙은 몇 개가 놓여 있다. 보리 알갱이를 골라서 먹을 만한 것만 손에 올려놓았다.

“자, 먹어봐.”
“그냥 먹으면 돼요?”
“응 보리야. 냠냠 씹어봐.”
“예. 작은 아빠도 드세요.”
“그래. 맛있지? 작은 아빠랑 아빠는 옛날에 많이 먹었어.”

아이들 넷이 콕콕 모이를 쪼듯 손으로 주워 먹는다. 아내도 그 때를 추억하며 막대기로 보리 이삭을 꺼내 비벼 먹어본다. 애들은 형제들끼리 오랜만에 만난 때문인지 노느라고 바쁘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것이겠지만 해강이와 솔강이만 신기한 듯 입에 넣고 오물오물 즐긴다.

어떻게든 예전 하던 방식대로 아이들 입에 탁 털어 넣어줘 보고 싶다. 입 언저리가 까맣게 되기를 바라지만 자꾸 딴청을 부리는 통에 그마저 쉽지 않았다. 그 시절 우리처럼 달고 맛있을까. 살갑게 받아먹질 않아 서운한 맘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까만 것은 너무 탔네요. 버리고 나머지만 입에 툭 털어 넣어보시기 바랍니다. 향긋하면서 정말 고소합니다.
까만 것은 너무 탔네요. 버리고 나머지만 입에 툭 털어 넣어보시기 바랍니다. 향긋하면서 정말 고소합니다.김규환
죽순을 삶아 회로 먹으니 옛 맛이 설컹설컹 씹혔다.

다섯 명이면 이미 없어져야 할 보리가 아직도 남아있다. 결국 다 먹어치우질 못했다. 혼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는 것도 뭐하다. 그냥 타도록 내버려두고 쉬려는데 죽순이 끓었단다. 마저 푹 끓이라 하고는 건진 죽순을 우물가로 가져가 찬물에 담가 껍질을 벗겼다.

죽순 삶은 걸 바로 벗기는 데는 겉껍질이 차갑다고 그냥 손을 넣어서는 안 된다. 겹겹이 쌓인 껍질을 벗기다보면 안쪽은 오랫동안 식지 않아 손 델 염려 때문이다. 삶기 전엔 한 솥 가득했던 것이 막상 작업을 끝내놓고 보면 “에게 이게 뭐야?” 할 정도로 양이 부쩍 줄어 있다. 열 개 안 되어도 가득했다가 알맹이는 한 접시도 안 된다.

다시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받아 담가 놓고 네 쪽으로 나눴다가 두꺼운 것은 한번씩 더 잘게 쪼갠다. 야들야들 노오란 속살을 찢고 있노라면 감촉이 무척이나 좋다. 이 때 “여보 초고추장!” 하고 싶지만 마침 형수와 아내는 파김치를 담그고 있는 중이었다. 그냥 바로 먹기에도 알싸한 맛이 남아 있어 몇 시간이고 우려내 독기를 빼고는 생으로 씹어도 살캉살캉 씹힌다.

마당을 치우면서 아내에게 초고추장을 부탁했다. 일보러 나간 후배와 이웃 손님들로 북적이자 상이 하나 더 차려지고 죽순회가 상에 올랐다. 오랜만에 푸짐하게 먹어보는 일미는 서울 집에 올라와서도 이어졌다. 많을 것 같던 분량이 제대로 세 번 먹으면 없어질 것이니 수고한 만큼 보답을 하려나 모르겠다. 그냥 내 손으로 꺾어와 스스로 작업해서 먹어본다는 의미일 테지.

하여튼 난 이번 고향 가는 길에 들판에서 새참 막걸리도 얻어먹고 보리를 뽑아와 꼬실라도 보고 죽순도 내 성에 찰 만큼 먹어봤다. 아이들에게 오디를 따주니 다들 좋아라했다. 오는 길에 파김치와 배추만한 상추까지 싣고 왔다. 서툴지만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해준 주변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게 고향이 좋다는 이유일 게다.

서울에 올라와서 가져온 죽순을 두번에 나눠 삶아 냉동시켜 놓았습니다. 여름철에 한번 먹어보려구요.
서울에 올라와서 가져온 죽순을 두번에 나눠 삶아 냉동시켜 놓았습니다. 여름철에 한번 먹어보려구요.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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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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