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을 몇 시간 우려 독을 빼고 초고추장에 찍어 드셔보세요. 고향이 새록새록 씹일 겁니다.김규환
어느 만화가와 한 약속 “우리 6월에 보리 꼬실라 먹으러 가자.”
그간 내 삽화를 그렸던 김용철씨는 추억이 나랑 비슷한 데가 많다. 곧잘 한두 마디 듣고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글을 보면 더 빼어나게 그렸다. 용철씨와 나는 홍어 먹기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2년 여 심취하여 경쟁하며 살았다.
그런 그와 이른 봄 순천낙안읍성에 갔을 때 보리밭을 보며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둘이서 꼭 보리를 꼬실라 먹으러 다시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거리도 거리지만 일정을 맞추기 쉽지 않았지만 그러기로 철석같이 약속했다. 그만큼 우린 어릴 적 먹던 심심풀이나 허기를 채운 추억의 음식에 폭 빠져있었다.
‘이런 정신머리 없는 놈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보리 몇 알 구워 먹으려고 그 먼데까지 간단 말인가?’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주말을 이용해 목포까지 홍어와 세발낙지를 먹으러 두 번이나 같이 갔고 서울에서도 시내 어딘가 맵고 깔끔하며 고향 맛 나는 음식이 있다면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함께 갔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번엔 서로 연락이 닿지 않아 혼자 장성을 거쳐 시골 형님 댁에 가는 도중에 보리를 얻었으니 우리 가족끼리 먹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그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서울까지 갖고 올라가서 그런 궁상을 떨 수는 없었다.
시골집에 잠을 자서인지 새벽같이 일어나 보니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갑자기 한 시간 여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더니 여섯시를 조금 넘기면서부터 가늘어졌다. 문을 연 순간 집 주위엔 예닐곱 가지 새소리가 섞여 상쾌한 아침을 연다. 전날 이렇게 시원한 비가 쏟아지려고 그리 더웠나 보다.
‘큰 일 났네. 어제는 파 뽑아와 다듬어주고 저녁밥 먹다보니 하루가 갔는데 오늘까지 비가 오면 정말 안 되는데. 어쩌지. 서울로 그냥 싣고 올라가야 하나?’
날씨마저 돕지않았다. 아이들이 먹는 모양을 사진기에 담아보고자 한 내 지나친 욕심을 시샘이라도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