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정원에서 펼쳐진 소박한 콘서트

폴란드 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의 쇼팽콘서트

등록 2004.06.02 14:43수정 2004.06.0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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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 골목길 담장을 타고 바알간 얼굴의 장미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민다. 탐스런 그 모습이 하도 예뻐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다.

장미 정원의 콘서트 모습. 쇼팽 기념비와 정면의 무대가 보인다.
장미 정원의 콘서트 모습. 쇼팽 기념비와 정면의 무대가 보인다.조미영
작년 그때도 이렇게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폴란드 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의 장미 정원은 이맘 때가 되면 더욱 빛을 발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계절이 장미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시기이기에 방사형의 잘 가꾸어진 정원의 눈부심은 당연하다. 그리고 여기에 작은 감동이 더해진다.

이곳에서는 6~9월 일요일마다 작은 콘서트가 열린다. 공원 내 쇼팽 기념비 옆에서 펼치는 피아노 콘서트여서 일명 '쇼팽콘서트'라고도 하는데 관광객은 물론 지역 주민들도 좋아한다.

무대 옆에 조그맣게 세워진 콘서트 알림 입간판
무대 옆에 조그맣게 세워진 콘서트 알림 입간판조미영
나도 이 콘서트를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180번 버스를 타고 가는데 오늘따라 유독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많다.

'일요일이라 결혼식이라도 있나?'

혼자 상상을 하며 공원입구에 이르러 내리는데 이 분들 역시 이 곳에서 내리신다. 길을 건너 입구로 들어서는 모습이 콘서트를 보러 오신 게 분명했다. 나도 입구에서 파는 폴란드 전통과자를 사들고 따라 들어섰다. 물론 무료공연이며 좌석은 없다. 잔디나 벤치에 취향에 따라 앉으면 된다.


12시 무렵 정원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야유회를 나온 듯 가볍게 차려입은 젊은이들과 모자까지 잘 갖춰 입은 노년층은 물론 다양한 나라의 관광객까지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며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할머니,할아버지 관객이 참 많다!
할머니,할아버지 관객이 참 많다!조미영
이윽고 쇼팽 기념비 옆 조그만 연단에 시선이 집중된다. 간단한 피아니스트 소개 후 바로 연주가 이어졌다. 둥근 분수대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장미정원의 손님들이 일제히 침묵하고 그를 응시한다.


시작 전에는 단 한 대의 피아노와 조그만 스피커가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이들의 소리는 수많은 청중의 눈과 귀를 잡아끌며 정원 구석구석으로 촉촉이 스며들었다.

뒤늦게 찾아온 한 무리의 관광객들은 감상에 폭 빠진 이들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침묵하며 조심조심 발자국을 디딘다. 나 역시 수동카메라의 육중한 셔터소리가 방해될까봐 결국 멋진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했다.

굳이 연주자의 실력이나 명성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이 작은 콘서트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다.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는 장미향에 섞여 솔솔 불어오고, 두 손 꼭 잡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평온한 얼굴과 눈을 살포시 감고 음악에 빠져든 사람들의 차분한 모습이 오감은 물론 마음까지 한껏 풍요롭게 해준다.

관객들의 박수~
관객들의 박수~조미영
연주자의 모습
연주자의 모습조미영
문득 요란한 무대와 성능 좋은 음향 시설이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방해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화려한 정원의 소박한 콘서트는 이렇게 1시간여 가량 진행된 후 끝났다. 일정이 바쁜 관광객이 먼저 빠져나가고,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들도 자리를 뜬다.

그러나 내 옆자리의 할머니께서는 쉬 자리를 뜨지 못한다. 아까의 평온함을 조금이나마 더 간직하시려는 듯 미동도 없이 앉아 계신다. 얼굴 가득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그대로 한참 계시다 조용히 발걸음을 내디디셨다.

그 모습이 하도 좋아 나 역시 그 분위기에 취해 한참 앉아 있었다. 할머니께서 남기고 간 미소가 나에게 묻어나듯 절로 웃음이 난다.

연주회가 끝났다.
연주회가 끝났다.조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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