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알고 있습니다. 버려졌다는 것을...

[태우의 뷰파인더 29]견디기 힘들더라도 반드시 아동보호시설과 상담하세요

등록 2004.06.04 01:01수정 2004.06.0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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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무라카미 류가 쓴 <코인 로커 베이비스(Coin locker babies)>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이 소설 속의 두 주인공은 역 구내에 있는 코인 로커(동전을 집어넣는 물품 보관함)에 버려진 아이들이다. 사방이 꽉 막힌 어둠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던 아기는 경찰관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울어댄다. 그들의 영혼에 ‘버려졌다’는 견디기 어려운 상처가 남고 그들은 숙명적으로 생에 대해 비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며 자란다.


아기들은 자궁 속에서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생명을 유지한다. 그래서 심장의 박동 소리와 비슷한 주파수의 소리를 제일 편안하게 느낀다. 아직 자의식이 생성되지 않은 아기라고 하더라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는 것이다.

버려지는 아기들도 마찬가지다. 버려진 아기들은 하루 중 그들이 부모에 의해 유기되었던 시각이 돌아오면 심리상태가 불안해져 울음을 터뜨린다. 비록 말하지 못하지만, 비록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가녀린 생명이지만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버려졌다’는 사실을.

버려진 아기들은 우울증과 실어증, 대인기피증 등의 증세를 보인다. 차라리 다른 아이들을 때리고, 기물을 부수는 아이들은 오히려 상태가 양호한 것이다. 순간적인 분노의 감정은 있지만 어쨌든 그런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수가 적고, 조용하면서도 우울증의 증세를 나타내는 아이들의 심리적 상처가 상대적으로 더욱 위험하다. 아직 행복한 꿈만 꾸어도 모자랄 아이들이 벌써부터 ‘세상의 비정함’으로 아파하면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문을 굳게 잠그는 것이다.

병원이나 보육원 앞에, 혹은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수단에, 심지어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 아기를 버리고 간다고 한다. 또한 부모의 가출로 집 안에 아이들이 방치되는 상황도 형편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엔 아기의 신원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아기를 보호하는 과정에 더 큰 애로사항이 따른다.


경기도 남부 아동일시보호소의 심양금 소장은 “아무리 나쁜 부모라고 해도 아기를 버리고 싶어서 버리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밥 세끼를 먹을 수 없는 '절대적 빈곤'에 의한 것이 아닌, '상대적 빈곤'을 느끼는 부모가 아이를 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고용 없는 성장’이 이야기 되고 있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아기들이 유기되고 있다. 경제적 불황은 가정이 해체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로 인해 아동 학대와 유기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심 소장은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일시보호소를 찾아와 상담을 꼭 하라”고 충고했다. 아울러 “IMF 이후, 관련 법안이 개정되어 고아가 아닌 극빈자의 자녀도 보호대상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태우
아기가 자란 후에도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심리적인 장애요인은 '정체성 문제', 즉 '뿌리에 대한 고민'이라고 한다. 경제적 빈곤으로 힘들어서, 너무나 힘들어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분들에게 꼭 상담받을 것을 권하고 싶다.

상담을 통해 양육문제에 대해 국가의 힘을 빌릴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완전한 단절과 학대의 방식'으로 버려져 정체성 문제로 혼돈을 느낄 필요 만큼은 적어도 줄어들 것이다. 아기들을 버리지 말기를, 힘들고 어렵지만 꼭 사회와 소통하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국가는 더욱 ‘선보호, 후조치’의 정신에 입각해 버려진 아이들을 무조건 돌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아기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다. 그러라고 사회가 있고, 국가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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